항목 ID | GC04215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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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第-公立尋常小學校 |
영어의미역 | Busan Seventh Simsang Public Elementary School |
이칭/별칭 | 부산제7심상소학교 |
분야 | 문화·교육/교육,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1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영섭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있었던 공립 일본인 교육 기관.
[변천]
1876년에 부산이 개항됨에 따라 일본은 같은 해 9월 14일에 ‘태정대신 포고’ 제128호를 통해 일본의 일반 국민들이 부산으로 도항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부산으로 이주하였고, 이들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20년 9월 1일에 부산제7공립심상소학교가 개교하였다. 같은 해 12월 3일에 교육 칙어 등본을 하사받았다. 1922년 12월 23일에 교실 2개와 강당을 중축하였고, 1931년 4월에 부산부 제1특별경제로 이관되었다. 1932년 12월에는 교실 12개를 증축하였으며, 1946년 4월 7일에 동광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6년 3월 1일에 동광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98년 9월 1일에 남일초등학교와 동광초등학교가 통합되어 광일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일제 강점기 부산제7공립심상소학교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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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은 일산등일(日山登一)[1920~1923], 중산준지조(中山準之助)[1923~1930], 단마리지(但馬利之)[1923~1934], 대택상시(大宅常市)[1934년 4월 취임]이다. 훈도는 팔심태팔랑(八尋太八郞)[1920], 대곡원길(大谷源吉)[1920~1922], 약송진(若松進)[1920~1923], 정본순일(政本純一)[1920~1924], 산구독(山口篤)[1923~1925], 좌등매태랑(佐藤梅太郞)[1920], 시택충오랑(時澤忠五郞), 포중금팔(浦中金八)[1920~1922], 가등중조(加藤仲造)[1922~1923], 내야무길(內野武吉)[1922~1924], 삼전정계(森田政繼)[1920~1926]이다.
[교육 활동]
부산제7공립심상소학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아동의 초등 교육을 담당하였다.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 자제를 위한 초등 교육 기관의 설치는 부산이 일본과 근접한 지리적 요인으로 인하여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강요당하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황]
부산제7공립심상소학교는 2013년 현재 광일초등학교로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