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5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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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實業夜學校 |
영어의미역 | Busan Practical Night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중구로 74[대청동 4가 9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영섭 |
[정의]
개항기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있었던 사립 일본인 교육 기관.
[변천]
부산실업야학교는 생업 활동으로 일정한 정규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 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설립되었다. 1907년(순종 1) 5월 1일에 부산교육회 평의원회의 결의로 홍도관에서 시업식을 거행하고 부산제1공립심상소학교 내에서 수업하였다. 이후 1915년 8월에 사립 학교 규칙이 공포되면서 당시 재학 중이던 생도의 졸업을 기다렸다가 1916년 9월에 폐쇄되었으며, 1919년 5월에 향추원태랑(香椎源太郞)과 복영정치랑(福永政治郞)이 계승하여 부산상업야학교가 되었다. 교장은 개교 이래 폐쇄될 때까지 판전문길(坂田文吉)[1906~1916]이었으며, 당시 입학생과 졸업생 수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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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활동]
부산실업야학교는 일제의 실업 교육의 필요성과 식민 정책의 이식에 필요한 자들을 배출하기 위하여 설립된 대표적인 교육 기관이다. 주간 수학(晝間修學)의 여가가 없는 상가 점원 등 정규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야간에 실업상 필요한 학과를 교수하였다. 조선어·국어[일본어]·영어·한문·상업·부기·산술·습자·작문 등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경비는 부산교육회와 부산거류민단의 보조 또는 특지가(特志家)의 의손금(義損金) 등으로 충당하였다. 생도의 다수는 점원, 용고원(傭雇員), 급사, 시간 등의 사정으로 상업 학교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 못한 청소년이었다. 교사는 각 학교에서 적임자를 위촉하여 선정하였다. 생도의 실력에 따라 초등과·중등과·고등과의 3학기로 나누고, 1기를 6개월로 하여 1년 6개월에 전 과목을 이수하여 졸업하는 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