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194
한자 梁鎬奎
영어음역 Yang Hogyu
이칭/별칭 양호떡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산성로 88[화명동 512] 도시 화명 그린 아파트 107동 206호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미술 교사
성별
본관 남원(南原)
대표경력 가마골미술인협의회 대표|대동고등학교 교사
출생 시기/일시 1957년 음 11월15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70년 - 밀주초등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73년 - 밀양중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76년 - 세종고등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80년 -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81년 - 대동중학교 교사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84년 - ‘인간’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85년 - 계성여자중학교 교사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85년 - ‘지금은 우리’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86년 - ‘젊은 세대 신선한 발언’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88년 - 계성여자중학교교사협의회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89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89년 - 제1회 개인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89년 - ‘더불어 사는 삶’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90년 - 미술 동인 그룹 ‘해빙’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90년 - ‘해빙-그 열림’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90년 - 대동중학교 교사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91년 - ‘땀 흘리는 사람들’전에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91년 - ‘교육 현장’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91년 - ‘자갈치에서 산복 도로까지’ 해빙 순회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91년 - ‘통일’전에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92년 - ‘해빙-겨울 민들레’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95년 - 광성공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95년 - 가마골미술인협의회 창립
활동 시기/일시 1995년 - 가마골미술인협의회 창립 기념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96년 - 대동고등학교 교사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98년 - ‘작은 그림’전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98년 - ‘전통과 현실의 지평에서’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99년 - 가마골미술인협의회 대표 선임
몰년 시기/일시 2000년 6월 21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0년 11월 4일~10일 - ‘민족 미술인 양호규 회고’전 개최
출생지 양호규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
거주|이주지 양호규 이주지 - 경상남도 밀양시
거주|이주지 양호규 이주지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거주|이주지 양호규 이주지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거주|이주지 양호규 이주지 - 부산광역시 북구 학장동
거주|이주지 양호규 거주지 -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512 도시 화명 그린 아파트 107동 206호
학교|수학지 밀주초등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학교|수학지 밀양중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학교|수학지 세종고등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학교|수학지 계명대학교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2139
활동지 대동중학교 - 부산광역시 사하구 신평동 41-10지도보기
활동지 계성여자중학교 - 부산광역시
활동지 광성공업고등학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426-7지도보기
활동지 대동고등학교 - 부산광역시 사하구 신평동 569-72지도보기
활동지 해빙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활동지 가마골미술인협의회 - 부산광역시
묘소 양호규 묘소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정의]

현대 부산에서 미술가이자 교육 운동가로 활동한 미술 교사.

[활동 사항]

1. 교사로 개인전 개최

양호규(梁鎬奎)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며, 양호떡이란 별칭으로도 불렸다. 1957년 11월 15일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에서 태어났다. 1970년 밀주초등학교, 1973년 밀양중학교, 1976년 세종고등학교, 1980년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1981년 부산으로 이주하여 대동중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후 1985년 계성여자중학교, 1990년 다시 대동중학교, 1995년 광성공업고등학교[현 경성전자고등학교], 1996년 대동고등학교에 부임하여 재직하였다.

양호규는 1984년 ‘인간’전[대구 중앙 미술관]을 시작으로, 1985년 ‘지금은 우리’전[대구 수화랑], 1986년 ‘젊은 세대 신선한 발언’전[서울 그림 마당 민]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1989년 부산의 사인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2. 미술 운동

또한 이 무렵 미술계에 대두된 사회적 요구를 받아들여 미술 운동을 전개하였다. 1990년 양호규는 리얼리즘 미술 동인 그룹 ‘해빙’의 창립을 주도하였는데, 이는 예술성에 바탕을 둔 부산 지역 민족 미술인의 개별적 작업을 한자리에 모아 미술 운동적 차원의 구심점을 마련한 것이었다. 창립 이후 양호규는 열성적으로 모임을 이끌었으며, 1990년의 ‘해빙-그 열림’전[부산 다다 갤러리] 이래 1991년의 ‘자갈치에서 산복 도로까지’[서울·대구·부산 순회전], 1992년 ‘해빙-겨울 민들레’[부산 갤러리 누보], 1994년 ‘자유의 숲’[오름 갤러리] 등 해소되기까지 거의 매년 개최된 정기 회원전에 참여하였다. 이 외에도 1991년에는 ‘땀 흘리는 사람들’전, ‘교육 현장’전, ‘통일’전 등의 단체전에 출품하였다.

1995년 양호규는 ‘해빙’, ‘새물결’, ‘부산지역청년미술인회’ 등 부산 지역의 주요 미술 단체와 민족 미술인 50여 명이 참여하여 가마골미술인협의회[약칭 ‘가미협’]를 창립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99년에는 ‘가마골미술인협의회’의 대표를 맡아 활동하였다. 1995년 가마골미술인협의회가 개최한 ‘창립 기념전-해방 50년, 바람 부는 들녘’[눌원 갤러리], 1996년과 1998년 개최한 ‘작은 그림전’[갤러리 누보]과 1999년 ‘전통과 현실의 지평에서’[부산 스페이스 월드] 등에도 참여하였다.

3. 교육 민주화 활동

미술가로서의 활동과 동시에 양호규는 교사로서 교육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1988년 계성여자중학교교사협의회의 결성과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의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학교 현장에서 촌지 거부 운동을 비롯하여 학교 예산 및 결산의 공개 추진, 학생 인권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 교사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를 지원하기 위해 개최된 ‘더불어 사는 삶’전[부산 타워 갤러리]이나 각종 기금 마련 전에 적극 참여하였고, 이 때문에 부산시교육청의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2000년 6월 21일 양호규는 지병인 폐질환으로 동아대학교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양호규의 작품으로는 200여 점으로 추산되는 회화가 있다.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도시 서민의 일상, 문명에 훼손되는 자연, 그 속에 피폐되어 가는 1980~1990년대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같은 시기 활동한 후배 화가 김성룡은 “그가 보여 준 그림들은 그와 이웃한 서민들의 땀투성이 고난의 흔적이었다. 기법상 수많은 선들로 응집된 인물들은 삶의 깊은 곳에서 서로 호흡을 나누는 쓸쓸하면서도 정다운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의 선산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2000년 11월 4일~10일 부산민족미술인협회와 부산민주공원이 주최하고, 양호규회고전준비위원회가 주관하는 ‘민족 미술인 양호규 회고’전이 민주 공원에서 열렸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6.07 내용 수정 개성여자중학교 → 계성여자중학교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