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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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像 |
영어의미역 | Buddhist Statu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 |
집필자 | 이희정 |
[정의]
통일 신라 시대~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불교 교리에 입각하여 예배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조형물.
[개설]
불상(佛像)이란 불교의 성상(聖像)으로, 불교 교리에 입각하여 조성된 예배 대상을 모두 의미한다. 불타(佛陀)를 포함하여 보살, 천부상, 명왕(明王), 나한(羅漢) 등 모두가 포함된다. 불상은 원래 인도의 태자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어 이를 전파하고 열반에 든 석가모니를 조형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것에서 출발하였다. 소승 불교에서는 오직 석가상에만 제한되어 있었으나, 우리나라와 같은 대승 불교권에서는 아미타불, 약사불, 미륵불, 비로자나불 등을 비롯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과 같은 많은 불보살이 제작되었다.
불상은 인간의 형상을 빌리지만 불타가 상징하는 초월적인 신체적 특징을 드러낸다. 즉 32길상 80종호를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여 인간과 구별한다. 머리에는 혹처럼 솟은 육계가 있고, 머리카락은 고동처럼 말린 나발형이며, 이마 중앙에는 백호(白毫)라는 긴 털이 있어 과거, 현재, 미래까지 비춰 볼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을 보여 준다. 손의 모습인 수인(手印)은 여래의 불성을 구별 짓는 중요한 특징으로, 시무외 여원인(施無畏與願印)·선정인·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지권인(智拳印) 등이 있다.
이외에 다양한 보살과 천부 등 여러 상들은 외모적으로 그 교리에 맞는 제각기의 특징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보살은 보관과 영락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고 다양한 지물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천왕상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므로 갑옷을 입은 무장형으로 칼 등을 들고, 나한상은 수행하는 승려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들 불상들은 얼굴, 법의, 신체 비례 등 시대에 따라 다른 조형적인 특징을 보여 이것이 불상의 시기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부산 지역의 불상]
부산 지역의 불교 미술품은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동 보살 입상(金銅菩薩立像)[국보 제200호]과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의령 보리사지 금동 여래 입상(宜寧菩提寺址金銅如來立像)[보물 제731호] 등 전세품(傳世品)[옛날부터 소중히 다루어 전래된 물건]이 대부분이다. 부산 지역의 불상은 유명 사찰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데, 부산에 위치한 사찰과 그 속에 봉안된 불상은 예배 대상으로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며, 모든 사람의 의지처로서 지역민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 통일 신라 시대
금정구 청룡동에 위치한 범어사(梵魚寺)는 화엄 십찰(華嚴十刹) 중의 하나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678년(문무왕 18)에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해당하는 유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통일 신라 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남아 있다. 범어사 미륵전(梵魚寺彌勒殿)의 불상 대좌는 상·중·하대석으로 구성된 통일 신라 시대의 것이다. 팔각의 하대석은 각 면에 능화형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 복판 복엽의 연화문(蓮花紋)이 장식되어 있다. 그 위에 팔각의 중대석이 있다. 상대석은 목조인데, 대좌에 군데군데 불에 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화재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좌의 특징으로 보면 범어사 석등(梵魚寺石燈)[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6호], 부산 범어사 삼층 석탑(釜山梵魚寺三層石塔)[보물 제250호]과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보인다.
2. 고려 시대
고려 시대에도 불전과 불상의 조성은 지속되었다. 북구 만덕동에 위치한 만덕사지(萬德寺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는 『고려사(高麗史)』 및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공민왕이 충혜왕의 서자 석기(釋器)의 머리를 깎아 만덕사(萬德寺)에 유폐시킨 기록이 있다. 만덕사지 발굴 조사에서 와당·무문전(無文塼) 등과 불상 대좌로 추정되는 팔각의 석조 대좌 등이 발견되었다.
3. 조선 시대
조선 시대의 불상은 삼국 시대나 통일 신라 시대, 고려 시대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작품이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도 여전히 범어사는 불교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부산 범어사 대웅전(釜山梵魚寺大雄殿)[보물 제434호]과 범어사 비로전(梵魚寺毘盧殿), 범어사 미륵전 등이 중창되었고, 예배의 주체인 불상들이 빠르게 제작되어 봉안되기 시작하였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부산 범어사 목조 석가여래 삼존불 좌상(釜山梵魚寺木造釋迦如來三尊佛坐像)[보물 제1526호]은 몸속에서 발견된 조상 발원문을 통해 1661년(현종 2) 작으로 밝혀졌는데, 균형과 비례의 짜임이 좋고 환미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외에 범어사 비로전이나 범어사 미륵전, 범어사 관음전(梵魚寺觀音殿)의 불상도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조성된 것들이며, 머리가 큰 신체 비례나 착의법, 수인 등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가지면서도 부산 범어사 대웅전 불상과는 다른 개성이 드러나 있다.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의 장안사(長安寺)는 원효 대사(元曉大師)에 의해 673년(문무왕 13)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범어사와 비슷하게 이와 관련된 유물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장안사 대웅전(長安寺大雄殿)[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771호]을 비롯해 장안사 응진전(長安寺應眞殿)[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07호]과 장안사 명부전(長安寺冥府殿)[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06호] 건물과 불상들은 17세기 중·후반의 작품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중창된 것들이다.
이 중 기장 장안사 대웅전 석조 삼세불 좌상[보물 제1824호]는 불석[zeolite]제 불상으로, 이 석재로 만든 불상이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100여 구 이상이 남아 있으며, 지역적 특징이 강한 재료로서 주로 응진전이나 명부전의 불상 조성에 사용되었다. 장안사 대웅전(長安寺大雄殿)의 불상과 같이 규모가 크고 주불전 봉안된 사례가 많지 않다. 시기적으로도 빠른 편인데 명문이 남아 있는 석조 불상 가운데 1648년 양산 원효암 석조 약사 여래 좌상[나흔(懶欽), 1655년 칠곡 송림사 석조 아미타 삼존불 좌상[도우(道祐), 보물 1606호]에 이어 세 번째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따라서 이 같은 불상들은 통해 불석제 불상 조각승의 계보와 유파, 활동 지역, 제작 기법 등 조선 후기 불교 조각과 지역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조선 후기 불상이 현존해 주목되는 또 하나의 사찰로는 사상구 모라동의 운수사(雲水寺)가 있다. 운수사에 남아 있는 중수 목판기(重修木板記)를 통해 17세기에 중창된 건물임을 알 수 있으며, 불상도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불상 재료와 착의법, 보살상의 독특한 수인 및 삼존불의 개성적인 얼굴 등에서 조선 후기 조각승의 개인 양식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지역성이 잘 드러나 있다.
4.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후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요소들을 가미한 불상이 조성되었다. 제작의 중심이 된 곳은 범어사 불화소이다. 범어사의 불화소에서 작업한 인물 가운데에서는 양완호(梁玩虎)가 대표적인데, 양완호가 조성한 불상이 현재 영도구 신성동의 복천사(福泉寺)에 봉안되어 있다. ‘근대 불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양완호의 불상과 불화의 양식적 특징은 근현대 불교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징]
부산 지역의 불교 조각은 대부분 17세기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 후기 불상이 대부분이다. 북구의 만덕사지와 인근에서 출토되는 소형불 금동불의 존재는 부산 지역에 크고 작은 사찰이 존재하였음을 간접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 불상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이전의 것들이 소실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일본과 가까운 부산의 지정학적 위치는 전쟁의 초입지 그리고 퇴로지로서, 부산은 그 어느 지역에 비해 큰 피해를 입었다. 부산의 대표적 사찰인 범어사나 장안사, 운수사 등의 전각과 불상들이 대부분 이때에 전소되어 전쟁 후 중창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산 지역에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전각과 불상들이 많은 이유도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