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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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文書 |
영어의미역 | Old Document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부산 지역의 문화재로 지정된 고문서와 동래 지역 관련 고문서의 현황.
[개설]
고문서는 옛 문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옛 문서라고 했을 때, 언제까지를 하한으로 정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이것은 학자에 따라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관제(官制)가 개혁되고, 문서도 신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910년까지 옛 문서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고문서의 하한을 1910년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문서는 ‘일제 강점기 문서’, 1945년 이후의 문서는 ‘현대 문서’라고 부를 수 있다.
고문서는 문서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로 그 형태를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고문서를 교령(敎令), 소차 계장(疏箚啓狀), 첩관 통보(牒關通報), 증빙(證憑), 명문 문기(明文文記), 서간 통고(書簡通告), 치부 기록(置簿記錄), 시문(詩文), 서화류(書畵類)로 대분류하고, 소차 계장류는 다시 전문 상소(箋文上疏), 계정사(啓呈辭), 단자(單子), 소지류(所紙類), 호적류, 품목 품고류(稟目稟告類)로 중분류하고, 호적류는 다시 호구 단자(戶口單子), 준호구, 호적 등으로 소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도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연구자에 따라 기준을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고문서에 대한 보다 통일된 분류 체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고문서]
현재 부산 지역에 남아 있는 고문서 가운데는 그 자료적 가치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있다. 이 가운데는 부산에서 직접 생산되거나 내용이 부산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단지 부산 지역에 소장된 때문인 것도 있다.
문화재로 등록된 대표적인 고문서로는 「심지백 개국 원종공신 녹권(沈之伯開國原從功臣錄券)」[1397년, 국보 제69호,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조숭 고신 왕지(趙崇告身王旨)」[1396년, 보물 제953호, 개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위탁 보관], 「조서경 무과 홍패(趙瑞卿武科紅牌)」[1435년, 보물 제954호, 개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위탁 보관], 동래부 동하면 고문서(東萊府東下面古文書)[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24호,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류성룡 필 「진시무차」 초고(柳成龍筆陳時務箚草稿)[1592년,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11호,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각종 그림, 지도 등이 보물,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문화재 자료 등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소장처로는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대학 박물관 등 각종 박물관, 대학 도서관 등 각종 도서관, 동래기영회와 충렬사 등 각종 단체, 삼절사 등 사우(祠宇), 범어사 등 사찰, 문중, 개인 등에 많은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다.
[동래 지역 관련 고문서]
1. 무임 조직 관련 고문서
동래 지역에서 생산된 고문서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대부분 17세기 이후의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고문서로 무임 조직과 관련된 『동래 무임 선생안(東萊武任先生案)』이 있다. 조선 시대 국방의 요충지인 동래에는 다양한 형태의 무청(武廳)이 존재하였다. 무청이 생긴 이후 각 무청의 무임을 지낸 자를 기록한 선생안(先生案)을 작성하는 전통이 유지되어 왔다. 무청의 무임 선생안은 현재 충렬사와 동래기영회에 소장되어 있다. 이들 선생안은 자료집으로 영인 출간되었으며, 최근에는 데이터베이스 작업도 이루어졌다. 이 무임 선생안은 동래 지역의 향반, 무임, 향리 집안 등 유력 가문은 물론 동래 상인, 화원(畫員), 기영회 등 다양한 인간 집단을 연구하는 기초 자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2. 이서 조직 관련 고문서
이서(吏胥) 조직과 관련된 고문서로는 『부청 선생안(府廳先生案)』이 있다. 부산 지역의 조선 시대 고문서 연구는 『부청 선생안』의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부청 선생안』은 동래 지역의 향리 사회를 주도한 상층부 구성원의 명단으로, 637명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1962년 간행된 『항도 부산』 1호에 수록되어 있다. 1962년 당시 동래군청에 소장되어 있던 원본은 현재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분실된 이 자료의 원본을 찾는 작업이 부산 지역 고문서 발굴의 과제로 남아 있다.
3. 면리 단위 관련 고문서
1990년대 발굴된 고문서 가운데는 동래부 소속의 면리(面里) 단위 실태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동래부 동하면(東下面), 남촌면(南村面), 사천면(沙川面), 사상면 덕포동(德浦洞) 관련 고문서가 그것이다. 18세기 이후 면리제가 발달하면서 절목(節目), 완의(完議) 등 면리 단위의 고문서 생산도 증가하였다. 이들 고문서는 동래부 관하 면의 분화 양상이나, 면의 기능과 성격 등 면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아직 이들 자료를 이용한 면리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 가문 관련 고문서
동래 지역에서 활동했던 향반, 무임, 이서 집안과 관련된 가문 관련 고문서의 발굴과 이를 통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석대동 영양 천씨, 동하면 못골 동래 정씨, 거벌리 남원 양씨, 오륜리 밀양 박씨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강릉 김씨, 광주 김씨(廣州金氏), 월성 박씨, 죽산 박씨, 여산 송씨, 은진 송씨, 남원 양씨, 청주 한씨, 경주 최씨 등 향반 가문, 영산 신씨(靈山辛氏), 경주 이씨, 동래 정씨, 밀양 손씨, 함종 어씨, 청주 한씨 등 무임이나 이서 가문 소장 고문서가 발굴되었다. 최근에는 기장 지역의 웅천 남평 문씨, 백길 우봉 김씨 가문 소장의 고문서가 발굴되었다. 활발한 조사가 이루어지면 앞으로도 가문 소장 고문서는 발굴될 가능성이 크다.
5. 호적 관련 고문서
호적류의 고문서로 호구 단자나 준호구는 많이 발굴되었으나, 동래 지역의 호적 대장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호적 대장이 발굴되기 어려운 사정의 하나는 그것을 불태워 영보단(永報壇) 아래에 묻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함안 조씨 사상(沙上) 문중이 소장하고 있던 『사상면 호적중초(沙上面戶籍中草)』의 발굴은 그 자체의 사료적 가치뿐 아니라 앞으로 호적 발굴의 가능성을 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신 호적으로는 면리 단위로 『동하면 호적 대장』[1908년]과 남하면 대일리(大一里)의 『경상남도 동래부 무신조 장적』[1908년]이 발굴되었다. 남하면 대일리의 호적은 19명밖에 되지 않지만, 동하면의 호적은 면 전체의 호구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특히 동래부 동하면 고문서는 호적 대장을 포함하여 모두 30책으로 1901년 이전 문서가 383면, 이후 문서가 87면 합계 470면으로, 그 자료적 가치가 인정되어 1993년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6. 기타 고문서
이 외에도 동래 상인, 통신사, 관왕묘, 향청, 향교, 향약, 향안, 천주교 신자, 삼절사, 범어사, 동래부, 부산진, 다대진, 절영도진 관련 각종 문서들이 발굴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1895년 전후 작성된 동래부 관청의 각종 공문서의 발굴[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이다. 이 동래부 관청 문서는 1895년 5월 지방 제도 개정 칙령에 따라 조사한 성과를 수록한 것과 관청에서 일상적으로 작성한 문서들이다. 지방 행정 제도의 개혁에 따른 행정 실무 직제의 개편, 독진(獨鎭) 폐지에 따른 무청의 해체와 무임 집단의 반향, 군사 기지의 폐쇄와 정리를 위한 조사, 인구·호구·결세 조사, 종이의 출급과 통제 등에 관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과제]
부산 지역 관련 고문서는 부산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관련 기관이나 가문에도 많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는 현재 그 소재조차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부산 관련 고문서에 관한 면밀한 조사·발굴과 함께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