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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포동 강선대 고문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570
한자 德浦洞降仙臺古文書
영어의미역 Old Documents of Gangseondae in Deokpodong
이칭/별칭 덕포동 상강선대 고문서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덕포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김동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관련인물 박득성|구복룡|박명득 등
용도 좌목|절목|등장|의송|권조문
발급자 등장: 사상면 덕포리 주민
수급자 등장: 동래부사|경상좌수사
작성 시기/일시 1823~1920년연표보기 - 작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3년 - 사상농업협동조합 이사 손현재가 자문을 구하면서 학계에 공개
소장처 상강선대 당집 - 부산광역시 북구 덕포동 579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덕포동에 있는 당산과 제당인 상강선대(上降仙臺)와 관련한 고문서.

[개설]

강선대덕포동에 있는 암대(巖臺)이다. 북구 덕포동 579번지의 상강선대와 덕포동 712번지의 하강선대 두 곳이 있다. 윗마을[상리] 사람들은 매년 연말 상강선대에, 아랫마을[하리] 사람들은 하강선대에 제사를 지냈다. 하강선대는 도시 개발에 따라 헐려 지금은 없어졌다. ‘덕포동 강선대 고문서(德浦洞降仙臺古文書)’는 1993년 사상농업협동조합 이사인 손현재(孫鉉在)가 상강선대 당집에 보관되어 온 고문서를 경성대학교 교수인 정경주에게 가져와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윗마을인 상린리(上隣里)[상리] 인회(隣會)의 집회, 진선(津船)의 개조나 선가, 진선계원의 처벌 규정 등에 관한 절차의 규범을 마련하기 위하여 절목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종 등장은 두 가지 경위에 따라 작성되었다. 하나는 강선대의 동제에 필요한 제수로 송아지를 사용하는데, 그것을 도살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동래 부사에게 소청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덕포리 주민들이 샛강 건너 낙동강 삼각주에 농사를 짓기 위해 운행하는 농선(農船)의 개조를 위하여 모금하고 목재를 마련하기 위하여 동래부와 경상 좌수영에 올린 소청이다.

[형태]

고문서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절목(節目)이나 좌목(座目)으로 서문, 절목, 완의(完議), 좌목 등을 갖춘 책자 형태이다. 다른 하나는 등장(等狀)으로 덕포리에 사는 주민들이 연명으로 올린 고문서 형태이다.

[구성/내용]

고문서는 상린리 절목책 3책, 진선 신조 권조문(津船新造勸助文) 1건, 등장 22건으로 모두 26건이다. 「정월 삼월일 상린리 절목책」은 절목 서문과 절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절목 내용은 인회의 집회, 진선의 선가(船價), 진선 관련 벌전(罰錢) 등에 관한 규정이다. 「계미 이월 초칠일 진선 개안 좌목책」은 1823년(순조 23)에 작정된 것으로 완의(完議)와 좌목으로 되어 있다. 완의는 진선 개조, 선가, 신참례(新參禮), 대립자, 가옥 조성(造成)시 부조, 처벌 등에 관한 완의 규정이다.

「기유 정월일 덕포동 상린리 개좌안」은 1847년(헌종 13)에 작성된 것으로, 개좌안(改座案) 서문과 절목으로 되어 있다. 절목은 인리(隣里) 양산(養山)에 대한 처벌, 진선 개조, 선가, 신참례, 대립(代立), 부조, 공의(公議) 등에 관한 규정이다. 이상 3권의 책자는 덕포동 진선계(津船契)의 약조와 그 참여 인물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절목을 보면 18세기 말에 이미 상린리와 하린리 두 마을로 구별되었고, 각각 별도로 자치 규약인 절목을 정하고 있었다. 이 절목은 진선계와 당제(堂祭)가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경신년 정월 진선 신조 권조문」은 1920년에 작성된 것으로, 진선을 새로 만들면서 축원하는 글이다. 등장은 사상면 덕포리에 사는 주민들이 1808년(순조 8)부터 1894년(고종 31)까지 올린 21건의 등장과, 덕포리에 사는 황사천(黃士千), 황은술(黃殷述) 등이 1887년(고종 24)에 올린 의송(議送) 1건이다.

[의의와 평가]

진선 건조와 관련한 13장의 등장 중에 무자년[1888]과 임진년[1892]의 등장은 일본인의 왜관[전관 거류지]에서 목재를 조달하는 것을 허용해 달라는 내용이다. 봉산(封山)의 목재를 벌채하여 사용하다가, 개항 이후 왜관에서 목재를 수입해 쓰겠다고 소청한 것이다. 덕포동 지역 경제가 개항 이후 얼마나 빠르게 대일 무역에 의존하고 있나를 잘 보여 주는 자료이다. 고문서는 강촌(江村) 자연 마을의 자생적인 동약(洞約)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낙동강 하류 연변에 위치한 강촌의 자치 규약과 그 운영 실태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면리(面里) 단위 부산 지역사의 구체적인 실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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