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6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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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孫氏-古文書 |
영어의미역 | Old document for Milyang Son cl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광석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지방에서 살아온 밀양 손씨 집안에서 전해 오는 고문서.
[개설]
조선 후기 동래 지방의 향리 사회는 남평 문씨, 추계 추씨, 밀양 박씨, 밀양 손씨, 연안 이씨 등이 대표적이며, 이러한 가문이 향리직인 이임(吏任)을 맡아 왔다. 그 중의 하나로 밀양 손씨 집안에서 내려오는 ‘밀양 손씨 집안 고문서(密陽孫氏집안古文書)’는 18~19세기에 걸쳐 교첩(敎牒), 교지(敎旨), 차첩(差帖) 및 준호구(準戶口), 『손씨 기묘록(孫氏忌墓錄)』 등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형태]
고문서 중에서 차첩 4점은 형태가 특이하다. 차첩의 양식을 목판으로 찍은 후에, 연대·임명 내용·대상자를 필사하는 양식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밀양 손씨 고문서 자료는 교지 16점, 차첩 4점, 교첩 1점, 준호구 3점, 『손씨 기묘록』1권 등으로 되어 있다. 고문서 중에서는 교지가 가장 많다. 시대별로 보면 첫째, 교첩은 1745년(영조 21)에 손순도(孫順度)를 동래부의 호장으로 올려 주는 내용이다. 둘째, 1753년(영조 29)부터 1773년(영조 49)까지의 교지도 손순도에게 내려 준 것이다.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경복궁가위장(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景福宮假衛將)과 가의대부(嘉義大夫) 등이다. 동반과 서반의 품계를 함께 받고 있다.
셋째, 1773년부터 1872년(고종 9)까지는 손순도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부모에게 추증하는 교지와 부인·아들에게 내리는 교지로서 아들도 손순도와 같은 서반직 부호군을 받고 있다. 넷째, 1834년(순조 34)부터 1855년(철종 6) 사이의 차첩 4점은 손순도의 후손들을 섭호장·정조호장으로 임명하는 내용이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1765년(영조 41) 손순도를 함경도 온성 미전진 첨사로 임명하는 내용의 교지이다. 손순도는 유언으로 남긴 「유자손서(遺子孫書)」에서도 향리 신분이면서도 이 관직에 임명된 은혜를 입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로 인해 그의 4대조까지 벼슬이 추증되고 임금이 내린 글씨까지 받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는 것이다.
『손씨 기묘록』은 1809년(순조 9) 9월 손순도의 손자 손의집(孫義緝)의 아들 손면대(孫勉大)가 10대조 손석산에서 그 아버지 손의집까지의 직계, 자신의 형제, 종현조(從玄祖)인 손평로(孫平老)와 손안로(孫安老), 조의 6형제, 부의 4형제, 5촌숙, 4촌 형제, 6촌 형제, 5촌 질, 생질 손만엽(孫萬燁)까지의 생몰 일자, 묘소 위치, 직역 등을 기록한 책이다. 구체적인 직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손순도는 첨사, 손순민·손순흥은 학생, 손순정은 호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손순도의 네 아들 중 손내집은 학생, 손성집·손덕집·손의집은 호장으로 되어 있으며, 손순정의 두 아들도 호장인 점이 주목된다.
『부청 선생안(府廳先生案)』에 기록된 손씨 14명 가운데 손순도·손덕집·손의집·손성호는 이임직뿐 아니라 무임직 경력도 가지고 있었고, 손순도계는 부청 선생직뿐 아니라 무임직도 독점하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밀양 손씨 집안 고문서는 18세기 중엽부터 동래에서 이 집안이 호장직[향리]을 영위해 온 내력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