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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가문 소장 고문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98
한자 李廷植家門所藏古文書
영어의미역 Old Documents Collected by Yi Jeongsik Cla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손숙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관련인물 이정식
용도 경제 생활
소장처 이종읍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정의]

조선 후기 동래 지역에 거주한 이정식의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

[개념]

이정식 가문 소장 고문서李廷植家門所藏古文書)는 대체로 19세기 이후의 것이다. 이정식은 동래 지역에서 일어난 1868년(고종 5) 천주교 박해인 무진박해(戊辰迫害) 때 처형을 당한 인물이다. 그는 동래 지역 천주교 공동체의 회장이었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이 지역의 무임(武任)을 두루 역임하였다.

[제작 발급 경위]

조선 후기 개인들이 일상적인 사회 경제 생활에 필요한 문서를 주고받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형태]

필사본이며, 규격은 각 고문서의 양식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구성/내용]

고문서는 40여 점으로, 이를 형태별로 분류해 보면 호적류 25점, 교지(敎旨) 1점, 소지(所志) 2점, 전령(傳令) 2점, 차첩(差帖) 7점, 혼서(婚書) 2점, 잡록(雜錄) 1점 등이다. 이들 자료는 이정식과 그의 사촌인 이희식, 이희식의 아들인 이기춘, 이기문의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정식과 이희식은 사촌이었지만 이후 두 명 모두 백부인 이재한의 양자로 가서 형제가 되었다. 호구 단자를 통해 추측해 보면 이정식이 1868년 천주교 박해로 처형을 당한 이후 이희식이 이재한의 양자로 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정식의 처형 이후 동래의 무임 운영 조직인 세검당에 올린 청원서는 이정식의 양부인 이재한의 무임 역임 사실과 무임직 세습에 대한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청원서는 이재한이 장관을 역임한 사실을 특별히 거론하면서 이정식이 천주교와 관련하여 처형을 당했지만 그 화(禍)가 아버지에게는 미치지 않아 이정식을 이어 양자로 입적된 이희식에게 장관에 임명하는 첩지를 내려 달라고 올린 것이다. 이 청원서는 1881년(고종 18)과 1882년(고종 19)에 연이어 올렸는데, 이 시기는 이정식이 죽은 지 13년이 지난 후이다.

이희식은 1882년에 장관청 초관에 임명된다. 요컨대 이 청원서들은 무임 가문들의 무임 진출의 연고권을 비롯하여 이정식의 처형 이후의 영향, 그리고 이 지역 무임 집단의 운영 질서 등을 알려주는 매우 값진 자료이다. 또한 고문서들 중 동래 지역 군대 사령관이라 할 중군을 배출한 가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던 동래 무청의 각종 무임의 차첩이 포함되어 있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런 임명장은 동래 무청의 실체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의의와 평가]

이정식 가문 소장 고문서는 동래 지역 무임 가계의 고문서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을 고려할 때 무임 가계의 존재 형태와 무임 집단들의 운영 질서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동래 지역 천주교 수용과 박해에 대한 사실과 이울러 이에 대한 지역 사회의 대응 양상을 보여 주는 매우 값진 자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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