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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777
한자 金蘭茁
영어음역 Gim Nanju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부산여자청년회 위생부원
수학 시기/일시 1921년 3월 -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으로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징역 5월형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22년 6월 - 부산여자청년회 위생부 활동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연표보기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학교|수학지 부산진일신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 768-1지도보기
활동지 부산진일신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768-1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난줄(金蘭茁)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시작된 직후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고무하였다.

김난줄은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복선(金福善)·김봉애(金奉愛), 고등과 3학년 김응수(金應守), 고등과 2학년 김신복(金新福), 고등과 1학년 이명시(李明施)·송명진(宋明進), 학년 미상 김순이(金順伊)·박정수(朴貞守) 등과 더불어 시위 항쟁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1일을 시위 일자로 정하고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들어 준비하였다.

3월 11일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좌천동 일대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출감 후 복학하여 1921년 3월에 부산진일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22년 6월 부산진일신여학교 선배[고등과 1회 졸업생]이자 독립운동가인 박덕술(朴德述)부산여자청년회의 회장으로 선임되자, 같은 학교 졸업생인 이명시·박정수와 함께 위생부에 속하여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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