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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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區-文化遺産 |
영어의미역 | Cultural Heritages in Buk-g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
시대 | 선사/선사,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 |
집필자 | 박재혁 |
[정의]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 부산광역시 북구의 주요한 문화유산.
[개설]
부산광역시 북구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 1점,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 4점 등 모두 5점의 지정 문화재가 있으며, 이 밖에 비지정 문화재로 조개무지, 고분군, 석탑과 유물들, 그리고 많은 비석과 누대, 재실이 존재한다.
[지정 문화재]
1. 국가 지정 문화재
국가 지정 문화재로는 천연기념물 제309호인 부산 구포동 당숲이 있다. 부산 구포동 당숲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날 마을 주민들이 제주(祭主)를 뽑아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를 지내기 보름 전 풍물놀이에서 제주가 될 만한 사람들이 대나무를 잡아 흔들림이 많은 사람을 제주로 뽑아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부산 구포동 당숲에는 수령 약 5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노거수인 팽나무가 있는데, 크기는 높이가 약 18.2m, 둘레가 약 5.74m 정도이다. 우리나라에 많이 분포하는 나무로서 부산 지방에 있는 노거수 중에서 생장이 가장 왕성하며, 줄기 아래쪽에 기이하게 나온 돌기와 여러 갈래로 발달한 가지가 웅장함을 보이고 있다. 부산 구포동 당숲은 포구가 있던 이곳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숲으로 신성시되고 있으며, 당숲의 형태가 잘 유지되어 있고 당제(堂祭)도 남아 있어 팽나무와 함께 소나무, 당집을 포함한 당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2.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
북구의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로는 만덕사지 당간지주(萬德寺址幢竿支株)[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4호]와 불화장(佛畵匠)[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5호], 만덕사지(萬德寺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 구포왜성(龜浦倭城)[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호] 등 4점이 있다.
1)만덕사지 당간지주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4호인 만덕사지 당간지주는 북구 만덕동 방향에서 제1 만덕 터널로 들어가는 진입로 아래에 위치하며, 2기의 석주(石柱)[돌기둥] 중 1기만 남아 있다. 가로 40㎝, 세로 60㎝, 높이 3.5m 규모로 만덕사(萬德寺)의 창건과 함께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며, 주변의 만덕사 국장생표(國長生標)와 더불어 만덕사지의 경계를 알려 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범어사 당간지주(梵魚寺幢竿支柱)[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5호]에 비하여 치석(治石)[돌을 다듬는 것]이 훨씬 잘된 편이며, 장식 수법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2)불화장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5호인 불화장은 불교 교리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하는, 예배용·교화용 탱화(幀畵) 제작을 주로 하는 전통 불화 제작 분야이다. 보유자인 권영관은, 20세기 초반의 대불모(大佛母)이자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 많은 불화를 남긴 완호(玩虎) 양낙현(梁洛現)에게 불화 제작 기능을 전수받아 전국적으로 뛰어난 불화·불상 조각 등을 제작하여 남긴 부친 권정두(權廷斗)에게서 전통 불화 제작 기능을 전수받은 부산의 대표적인 불모이다.
3)만덕사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인 만덕사지는 동래에서 구포로 넘어가는 만덕 고개의 서쪽 산 중턱[제1 만덕 터널 출구부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이다. 중앙부에 금당(金堂) 터로 추정되는 장방형의 축대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고, 이 축대를 중심으로 뒤편과 동북 및 서북쪽으로 200m 정도 내려간 시냇가에 당간지주가 있어 만덕사가 규모가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 만덕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전국에 다섯 군데 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볼 때 만덕사지는 충혜왕(忠惠王)의 서자 석기(釋器)가 유폐된 절로 추정되나, 북구 만덕동의 절터가 고려사에 기록한 만덕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4)구포왜성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호인 구포왜성은 임진왜란 때 조선·명나라 연합군의 반격으로 후퇴하던 왜군이 해안에 성을 쌓고 장기전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1593년(선조 26) 7월에서 9월 사이에 왜장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와 다치바나[立花宗茂] 등이 쌓은 일본식 성이다. 북쪽인 양산 방면으로의 진출과 낙동강의 수상 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또한 서쪽으로는 서부 경상남도의 진출 거점인 김해죽도왜성(金海竹島倭城)[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7호, 강서구 봉림동]과의 연락 분기점이며, 병력과 물자 수송의 중계 기지로서 전략 요충지에 해당한다. 1595년(선조 28) 8월경 철수할 때까지 약 5,000명의 왜군이 주둔하였다고 한다.
현재 성의 중심부인 주곽부는 동서 약 15m, 남북 약 60m 규모로 해발 75.7m의 소구릉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호(壕)를 설치하여 금정산 쪽의 능선을 차단하여 방어하였다. 능선을 따라 5개의 연접된 성벽이 잘 남아 있으며, 양호한 곳은 성벽의 높이가 8m 정도이다.
[비지정 문화재]
북구의 비지정 문화재로는 가야 시대의 화명동 고분군(華明洞古墳群), 덕천동 고분군(德川洞古墳群), 만덕사 삼층 석탑, 만덕사지 유물들과 많은 비석과 누대, 재실이 있다.
1. 화명동 고분군
가야 시대 화명동 고분군은 북구 화명동 수정 마을 앞산에 있는 유적지로, 1972년에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7기의 무덤 중에서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1기에 불과하였으며, 출토 유물도 3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화명동 고분군은 고고학적 연구 자료로 매우 귀중한 것임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화명동 고분군 5호가 우리나라 최고의 수혈식 돌방무덤[석실묘]이라는 점이다. 무덤의 연대는 4세기 중엽의 어느 시점으로 보고 있다. 화명동 고분군 5호의 특징은 첫째 구덩이의 폭이 길이에 비해 넓고 깊은 점, 둘째 구덩이의 깊이 때문에 돌방[석실] 자체는 지상에 노출되지 않는 지하식이라는 점이다.
2. 덕천동 고분군
북구 화명동 대장골의 북쪽 끝 언덕 위에서는 화명동 고분군이, 남쪽 끝 구릉 지대에서는 덕천동 고분군이 발굴되었다. 덕천동 고분군은 가야 말기에서 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이후인 6세기경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1981년에 횡구식 돌방무덤 64기와 횡혈식 돌방무덤 3기 등이 완전 형태로 발굴되었다. 대부분 고분이 6세기경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합장묘로서 추장 또는 가족장으로 밝혀졌는데, 집단 고분에서 발견되기는 이곳이 처음이었다.
묘의 방향은 동서향과 남북향이 있는데 수평 곡선의 방향과 일치하고, 횡구식 돌방무덤은 깬돌로 세 벽을 만든 뒤 뚜껑돌을 덮고 한쪽을 입구로 이용한 후 최종적으로 막은 것이다. 묘의 바닥은 깬돌로 한 겹, 안은 여러 겹을 깐 것, 중앙에만 깐 것, 한쪽에 치우쳐 깐 것 등 여러 가지 시설을 하였다. 무덤의 주위에 원형으로 돌을 돌린 것도 있었다.
3. 만덕사 삼층 석탑
1979년에 만덕사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석조 유물을 부산박물관에서 수습하여, 그중에서 삼층 석탑 1기를 완전 복원하여 박물관 정원에 재건하였다. 만덕사 삼층 석탑은 하층 기단을 생략한 단층 기단의 신라 일반형 삼층 석탑인데, 기단 지대석 1개, 기단 면석 2개, 이층 옥신석, 삼층 옥신석 및 옥개석, 노반을 보충하여 3.35m로 복원 건립하였다. 만덕사 삼층 석탑의 제작 연대는 신라 말~고려 초[10세기]로 보고 있다.
4. 만덕사지 유물들
1971년에 지표 조사로 습득된 만덕사지 유물은 청동제 인왕 보살상[11㎝], 연자방아 한 짝, 기와 토기 편과 고려 시대 회청색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 편, 순청자 편, 청자 음각문 편, 분청사기 인화문 편 등이다. 1990년의 발굴 조사로 발견된 유물은 대형의 팔각 좌대석과 연화문 하대석, 기비사 명문 기와, 대형 치미이다. 이외에 국장생표 석주 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5. 비석과 누대, 재실
북구에는 많은 비석들이 존재한다. 일단 이름만 나열하면, 이유하 축은제비(李游夏築恩堤碑), 심능섭 수덕 불망비(沈能燮樹德不忘碑), 손상일 휼민 선정비(孫相馹恤民善政碑), 천승호·경주 이씨 정려비(千乘昊·慶州李氏旌閭碑), 구포 부설비, 어윤중 영세 불망비, 이능화 애민 선정비, 이계필 청덕 휼민비(李啓弼淸德恤民碑), 훈련원첨정관주김공지묘, 구포동 화재 의연 기념비(龜浦洞火災義捐紀念碑), 장우석 기념비(張禹錫紀念碑), 오명구 기념비(吳命九紀念碑), 이춘길 순직비, 만덕 고개 도로 개통비, 권상덕 공덕비, 대천 마을 연혁비, 구포 장터 3·1 운동 기념비[龜浦場址三·一運動記念碑], 수정 마을 내력비 등이 북구의 대표적인 비석들이다. 그리고 누대와 재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조대(釣臺), 학사대(學士臺), 삼칠루(三七樓), 송우정(送友亭)과 모분재(慕盆齋), 척수정(滌水亭), 망향정(望鄕亭), 임천재(臨川齋), 양사재(養士齋), 금호재(金湖齋), 덕산재(德山齋)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