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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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明洞古墳群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s of Hwamyeong-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산300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홍보식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고분군.
[위치]
화명동 고분군은 해발 약 50m의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과 동쪽 및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북구 화명동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고분군은 사라졌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72년 12월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구덩식 돌덧널무덤 7기를 확인하였다.
[형태]
조사 당시 이미 유구가 많이 파괴되었고 유물도 대부분 도굴된 상태였다. 고분군의 배치 상태는 정상부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1열로 배치되어 있었다. 석곽들이 능선을 가로질러 설치되었기 때문에 벽면의 일부가 지상에 노출되어 있거나 낮은 쪽의 벽면은 결실된 것이 많았다. 석곽은 모두 막돌과 깬 돌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석곽의 네 벽면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동시에 축조하였고 벽면의 모서리 부분을 둥글게 쌓았다. 바닥에는 작은 막 돌을 한 겹 깔아 관대(棺臺)를 만들었다. 석곽을 덮은 뚜껑돌은 확인되지 않았다.
석곽의 규모는 각기 차이가 있는데, 가장 큰 5호 석곽은 길이 348㎝, 너비 140㎝, 깊이 158㎝인데, 너비에 비해 길이가 짧고, 깊이가 깊다. 석곽의 평면 형태가 장방형이고, 네 모서리의 모를 죽여 둥글게 처리한 점 등은 부산·김해 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4세기 후반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특히 석곽의 뚜껑으로 돌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덮어 뚜껑으로 한 점도 특징이다.
[출토 유물]
석곽 내부에서 출토된 것과 채집된 것을 합하여 토기 33점, 철기 28점, 청동제 교구(鉸具) 1점이다. 토기는 둥근 밑 항아리[원저 단경호(圓底短頸壺)]가 가장 많았는데, 11점은 문양이 없고 4점만이 승석문(繩蓆文)이 있다. 철기는 철모와 쇠화살촉 등의 무기류와 철제 도구이자 무기[철부(鐵斧)]·쇠로 된 손칼[철도자(鐵刀子)]·쇠낫 등의 농기구 및 공구류가 출토되었다. 토기는 4세기 후반의 부산·김해 지역의 특징적 토기인 외절 구연 고배(外折口緣高杯)를 포함해서 발형 기대(鉢形器臺)·유개 대부 파수부 직구 호(有蓋臺附把手附直口壺)·광구 소호(廣口小壺) 등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부산·김해 지역의 전형적인 토기의 모습을 보인다.
[의의와 평가]
화명동 고분군은 김해 칠산동 고분군과 더불어 영남 지방에서 가장 이른 단계에 속하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야의 보편적인 묘제로 이해되고 있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계보와 원류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화명동 고분군은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나 김해 대성동 고분군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형임에도 이들 대형 고분군보다도 이른 시기에 구덩식 돌덧널무덤을 채용한 것은 고대 사회에서 새로운 문물의 수용 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고분군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