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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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사회 운동가. 본관은 진양(晉陽). 1905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났다. 호적상의 본명은 강대락(姜大洛)이나, 1925년 12월 『동아 일보』 김해지국 기자 시절부터 강대홍(姜大洪)으로 불렸다. 강대홍은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9월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갔다가 지진으로 되돌아왔다. 이후 고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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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언론인. 김명찬(金明贊)은 부인 배수옥[1913년생]과 결혼하여 7남 1녀를 두었다. 김명찬은 1907년 10월 5일 부산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1921년 부산공립보통학교[현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전보통신숙료(日本電報通信塾療) 통신특별과를 수료하였다. 1927년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언론사인 전보통신사에 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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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부산문화방송(주)을 설립하고 초대 사장을 지낸 언론인. 김상용(金相用)은 1906년 경상남도 마산[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어렵게 보내다가 부산 지역에 정착한 후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 자동차 학원과 운송업체 등에서 사업 경험을 쌓은 후 부산과 만주를 오가며 양조업과 운수업 등 자영업을 계속하였다.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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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문화방송 초대 취체역 회장을 지낸 인물. 김익기(金翼基)는 1916년 2월 19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큰아들 김도일(金度鎰)[1951~]을 비롯한 3남 3녀의 자녀를 두었다. 김도일은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익기는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안동주조주식회사 전문 취체역에 취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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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대중 신문』 발행인으로 활약한 언론인.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동산(東山). 입향조는 유헌(柳軒) 김영필(金永弼)이다. 김영필은 사육신 김문기(金文起)가 참형을 당하자 충청북도 영동에서 낙동강 하구의 유도(柳島)인 유두리 강변으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김형기(金炯璣)는 김영필의 13세손이다. 김형기는 1896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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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기업가. 호는 일경(一耕). 1910년 2월 15일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교사동 635번지에서 중농인 아버지 김석권과 어머니 해주 오씨의 큰아들로 출생하였다. 김형두(金炯斗)는 어린 시절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소학(小學)』, 『대학(大學)』 등 한학을 공부했고, 1922~1923년 향리의 사학인 철성의숙(鐵城義塾)에서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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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좌익 운동가. 노백용(盧百容)은 1885년 10월 16일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에서 태어났다. 아들 노재갑(盧在甲)은 해방 후 김해군 인민위원장을 지냈고, 딸 노남교(盧南橋)는 부녀동맹 경남도지부 간부를 지냈다. 노백용은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밀양공립보통학교[1908~1911], 김해공립보통학교[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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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방송 전무이사를 역임한 언론인. 노정팔(盧正八)은 1919년 함경남도 갑산에서 출생하여, 1944년 만주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있는 하얼빈농업대학을 졸업하였다. 1947년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을 수료하고, 1957년 미국 보스턴대학교 라디오, TV과를 수료하였다. 광복 이전 남한으로 넘어와 1945년 서울중앙방송국[현 한국방송] 프로그램 디렉터[약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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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교수·연극인. 아버지는 박재연(朴在淵)이고, 친아버지는 박재호(朴在鎬)이다. 사촌 형은 부산대학교 교수를 지낸 박인석이다. 박두석(朴斗錫)[1921년~?]은 경상남도 진양군 내동면 삼계리[현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에서 태어났다. 1934년 진주제일공립보통학교[중안초등학교]를 거쳐 1939년 경기공립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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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부산 일보』를 창간한 언론인. 해방 후 일문지(日文紙)였던 『부산 일보(釜山日報)』 사원들은 자치적인 운영 위원회를 구성하여 1945년 9월 20일부터 제호를 『민주 중보(民主衆報)』로 바꾸고 신문 발행을 계속하였다. 1946년 9월 미군정청 적산 관리 당국이 민주중보사를 적산으로 불하하자, 박수형(朴洙衡)이 실업가 하원준과 함께 적산 관리권을 따내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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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기업인. 박정관(朴正寬)은 1913년 1월 3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나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민주 신보』 사장, 한미상사(주) 사장, 한미석유 사장[1949], 제일흥업주식회사[제일 극장] 회장, 한흥석유 회장을 지냈다. 1946년에 경남석유연합회 전무이사, 1947년에는 대한석유협회 이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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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 변노섭(卞魯燮)은 1930년 3월 3일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 313번지에서 태어났다. 1952년 경상대학 농학과를 중퇴한 후 1955년 건국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1955년부터 1957년까지 마산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1959년 언론계에 투신하여 1961년까지 『국제 신보』 논설위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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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 서유준(徐有駿)의 생몰 기간과 출생지, 수학지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931년 1월부터 5월 초까지 동아일보 서면분국의 총무 겸 기자로 근무하였다. 1932년 10월경 서유준의 주도하에 문영준(文榮準)이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보건 조선』이라는 건강 관련 전문 잡지를 부산에서 창간하였다. 『보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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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으로 1960~1970년대 자유 언론 투쟁을 주도한 언론인. 안종필(安鍾木+必)은 1937년 5월 5일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인 1963년 부산일보사에 입사하여 언론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듬해 서울로 올라온 안종필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고, 1965년에는 동아일보사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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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방송국 방송국장을 역임한 언론인. 윤길구(尹吉九)는 1916년 10월 3일 황해도 해주시에서 태어나 1940년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전신] 불교과를 졸업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3년 윤길구는 서울중앙방송국에서 5명을 뽑는 아나운서 공채 시험에 합격하면서 방송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그리고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모든 방송 권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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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의 MBC 부산문화방송 이사를 지낸 언론이이자 의사. 본관은 해평(海平). 조선 선조 때 정승을 지낸 윤두수(尹斗壽), 윤근수(尹根壽) 형제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윤영렬과 종조할아버지 윤웅렬 형제가 무관으로 중앙에 진출하여 가세를 일으켰고, 당숙 윤치호(尹致昊)는 대한 제국 말기의 교육가·정치가로 활약하였다. 1896년 10월 5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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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며 『민주 중보』를 발행한 언론인. 이갑기(李甲基)는 일제 강점기 말 부산·경상남도 지역의 유일한 신문이던 일문지 『부산 일보』에 재직하다가, 해방 후 이를 접수하여 1945년 9월 1일 우리말 『부산 일보』를 발행하였다. 『부산 일보』는 해방 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등장한 우리말 신문으로, 1945년 9월 20일부터 『민주 중보』로 제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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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중앙 일보』를 창간한 언론인. 이북(李北)은 북한 출신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월남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도쿄에서 아세아민족연구소라는 친일 단체를 운영했으며, 해방 후 공산주의 타도 동지회 회장, 반공교육신문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고, 1949년 월남 문화인 단체인 대한문화인협회 준비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이북은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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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 이창우(李昌雨)는 1935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아버지 이종석과 어머니 최소구의 6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적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이다. 형제는 이항우, 이홍우, 이원우, 이창우, 이서도, 이은우, 이경우이다. 이창우의 아버지는 경북고등학교와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를 거쳐 자유당 시절 검사로서 활동하였고,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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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매일 신문』의 주간 겸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언론인 이택국(李宅國)은 일제 강점기 일어 신문인 『대구 일일 신문』 기자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인 1945년 11월 28일 윤해두의 재정 지원을 받아 『경성 일보』 기자였던 배두훈·손연순과 함께 중구 대청동에 있던 대판매일신문 부산지국 사옥을 인수하여 『부산 매일 신문』을 창간하였다. 이후 이택국은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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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방송(주) 초대 취체역을 역임한 언론인. 본관은 풍양(豊壤). 호는 청사(晴史). 191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내 서방미(徐芳美)[1917년 6월 6일]와의 사이에 큰아들 조성진(趙誠辰), 둘째 아들 조성규(趙誠圭), 큰딸 조성미(趙誠美), 둘째 딸 조성(趙誠)을 두었다. 조풍연(趙豊衍)은 교동보통학교와 제이고등보통학교(第二高等普通學校)를 거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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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정치인. 편용호(片鎔浩)는 1928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상대학을 졸업하고, 1951년부터 국제신보, 부산일보, 세계통신 기자로 활동하였다. 1955년 연합신문 정치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65년 한국일보 편집부국장을 거친 후, 1967년 정치에 입문하여 신민당 소속으로 제7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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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창간된 『자유 민보』 주필로 활동한 언론인이자 철학자, 아나키스트. [활동 사항 하기락(河岐洛)은 1912년 1월 26일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학생 운동 시위에서 주동자로 찍혀 퇴학을 당하였다. 1년 후 중앙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1933년 졸업하였다. 1935년부터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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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부산 일보』 사장과 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 황용주(黃龍珠)는 1919년 1월 3일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1933년 대구사범학교 2기생으로 입교하였으나, 1934년 학내 ‘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여 1944년 졸업하였다. 해방 후 귀국한 황용주는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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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언론계 유력자. 가와시마 기이[川島喜彙]는 1880년 8월 일본 이바라키 현 자성군 천근촌 자하토사[日本 茨城縣 東茨城郡 川根村 字下土師]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천도사토[川島サト]이며, 아내는 천도사다[川島サダ]이다. 가와시마 기이는 1898년 4월 도쿄금성중학교[東京錦城中學校]를 졸업하고, 같은 해 호치신문사(報知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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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발행된 『조선 시보(朝鮮時報)』의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 다카키 스에쿠마[高木末熊]는 일본 구마모토 현[熊本縣] 출신으로 구마모토세세코(熊本濟濟黌)[현 구마모토 현립세세코고등학교[熊本県立濟濟黌高等學校]]를 졸업한 후 신문 기자가 되었다. 청일 전쟁 당시 『규슈 일보(九州日報)』 기자로서 만한(滿韓) 지방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취재 활동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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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조선 시보』를 창간한 인물. 호는 한성(漢城). 아다치 겐죠[安達謙藏, 1864~1948]는 일본 구마모토 현[熊本縣] 출신의 대륙 낭인으로, 삿사 도모후사[佐佐友房]가 설립한 구마모토세세코[熊本濟濟黌][현 구마모토현립세세코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894년 조선으로 건너와 부산에서 일본어 신문 『조선 시보(朝鮮時報)』를 창간하였다. 원래 『조선 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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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부산일보사의 경영과 주필을 맡은 언론인. 호는 번연(蕃淵). 아버지는 아쿠타가와 사나이[芥川左內]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 아쿠타가와 토요와의 사이에 아들 1명을 두었다. 사후 부산일보사 사장직을 물려받은 아쿠타가와 히로시[芥川浩]는 조카이자 양자이다. 아쿠타가와 타다시[芥川正]는 1865년 5월 27일 구마모토 현[熊本縣] 구마모토 시[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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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일보사 사장을 역임한 군인이자 언론인. 아버지는 개천충장(芥川忠藏)이다. 원래 부산일보사 전임 사장 아쿠타가와 타다시[芥川正]의 조카였으나 양자가 되었다. 부인 구자(絇子)와의 사이에 장남 개천화남(芥川和男), 2남 개천호구(芥川浩久)를 두었다. 의학 박사인 형은 일본 사법성 위생관에 봉직하였다. 아쿠타가와 히로시[芥川浩, 1893~?]는 1907년 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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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발간된 『조선 시보』의 대표를 역임한 언론인이자 관료. 이마가와 히로키치[今川廣吉]는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縣]에서 태어났다. 1910년 조선총독부 평양감옥의 간수장을 시작으로, 1911~1913년에는 조선총독부 광주감옥 전주분감 간수장, 1914년에는 조선총독부 서대문감옥 간수장, 1915~1916년에는 조선총독부 평양감옥 신의주분감 간수장,...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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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 출신의 출판인.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혜전(惠田). 본명은 송석문(宋錫文)이다. 부인은 오화순(吳華淳)이며,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송성문(宋成文)[1931~2011]은 1931년 12월 1일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출생하였다. 본적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122-173번지이다. 정주조일국민학교, 1947년 정주중학교를 졸업하였고 19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