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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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昌雨 |
영어음역 | Yi Changwoo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365[수정동 1-1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혁표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
[가계]
이창우(李昌雨)는 1935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아버지 이종석과 어머니 최소구의 6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적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이다. 형제는 이항우, 이홍우, 이원우, 이창우, 이서도, 이은우, 이경우이다. 이창우의 아버지는 경북고등학교와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를 거쳐 자유당 시절 검사로서 활동하였고, 어머니는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활동 사항]
이창우는 출생지인 경상남도 통영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마산중학교와 마산고등학교를 거쳐 아버지의 전근으로 경남고등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이어서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3년여 동안 사법 고시를 준비하다 그만 접고 부산일보사에 기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간부로 승진하기 전이나 그 후에도 줄곧 대외 기간 출입 기자로서는 근무하지 않고 편집국에서 내근만 하였다. 차장과 부장으로 승진한 후 짧은 기간 동안 정경부장을 맡은 바 있으며, 편집국장으로 승진하여 2년여 근무하다 논설위원과 사업국장, 이사 대우 수석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연이어 이사로 승진하고 나중에는 전무이사로 승진하여 근무하다가 1995년에 퇴임하였다.
그는 퇴임을 1년여 앞둔 1994년 10월 부산의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열린 마음과 깨어 있는 의식’을 모토로, 포럼신사고를 창립하고 공동 대표에 취임하였다. 1년에 3~4차례 개최하는 세미나와 포럼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한 시민 정신과 공동체 윤리를 추구하고, 지방의 활성화를 위한 합리적 공론을 이끌어내며 대안을 제시하는 데 앞장섰다. 이어서 국가 기간 뉴스 통신사인 연합뉴스의 경영 관리 감독, 뉴스 통신의 발전과 향상을 연구하고 아울러 학술 사업을 하는 등을 사업 내용으로 1995년 설립된 뉴스통신진흥회의 이사장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하였다. 이후 부산을 가꾸는 모임 공동 대표로서 부산 지역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각급 동문회 등의 모임에 참여하였다. 2010년 10월 1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10년 근속상[부산일보사]을 수상하였고, 1987년 20년 근속상[부산일보사]을 수상하였다. 1990년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