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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708
한자 金相用
영어음역 Gim Sangyong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해관로 58[중앙동 4가 29-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보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업인|언론인
성별
대표경력 부산문화방송(주) 초대 사장
출생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9년 4월 15일 - 부산문화방송(주) 초대 사장에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59년 9월 23일 - 부산문화방송(주) 취체역 회장에 취임
몰년 시기/일시 1978년 1월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창원시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활동지 MBC 부산문화방송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 29-3지도보기

[정의]

부산 지역에서 부산문화방송(주)을 설립하고 초대 사장을 지낸 언론인.

[활동 사항]

김상용(金相用)은 1906년 경상남도 마산[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어렵게 보내다가 부산 지역에 정착한 후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 자동차 학원과 운송업체 등에서 사업 경험을 쌓은 후 부산과 만주를 오가며 양조업과 운수업 등 자영업을 계속하였다.

6·25 전쟁이 끝난 1950년 중반에 김상용대청동에서 백화당 예식장(百化堂禮式場)을 경영하여 큰 성공을 거두는 등 남다른 사업가 기질을 발휘하여 재력을 쌓았다. 이후 김상용은 기존의 사업 성공과 함께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사업을 시작할 꿈을 갖고, 감만동에 아연판 제조 공장이란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면서 유선 방송국을 개국할 복안도 갖고 있었다. 이때 전파 산업의 장래와 방송 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한 정환옥(鄭煥玉)이 김상용을 만나 부산에 민간사업 방송을 만들 것을 적극 권유하였고, 평소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며 보다 문화적이고 생산적인 사업에 도전하고자 했던 김상용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1957년 8월 김상용은 개인 명의로 체신부에 방송국 설립을 위한 시설 허가원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예상외로 같은 해 12월 체신부는 ‘시설 및 구비 조건 미비’라는 이유를 들어 이를 반려하였다. 민간 방송 설립의 첫째 관문에서 난관에 봉착한 김상용은 다시 김익기(金翼基) 등을 중심으로 ‘부산문화방송국창립발기인회’를 조직하여, 1958년 1월 재차 설립 허가원을 체신부에 제출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상업 라디오 방송국인 ‘부산문화방송(주)[현 MBC 부산문화방송]’이 1959년 4월 15일 역사적인 개국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경제 상황으로 민영 방송은 시작부터 경영난을 겪게 된다. 창사 이후 주금 불입이 순조롭지 못한데다 시설 투자만 일방적으로 계속되고, 인기가 높은 주요 프로그램을 서울에서 제작해 오는 데서 생기는 제작비의 과다한 부담 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경영난의 애로가 상상 외로 심각하게 장기화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회사를 창립한 인물이나 의도 등과 상관없이 새로운 운영자를 맞아들이자는 안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사회적 지위나 역량 및 방송 사업에 대한 경영 식견 등에서 적격한 인물을 찾던 중, 당시 부산일보사와 조선견직주식회사를 경영하던 김지태(金智泰)에게 ‘부산문화방송(주)’의 운영권을 양수하도록 교섭하였다. 김지태가 이를 수락, 인수함으로써, 1959년 9월 23일의 임시 주주 총회에서 안성수를 2대 사장으로 선임하고 초대 사장인 김상용은 취체역 회장으로 제2선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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