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5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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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區-文化遺産 |
영어의미역 | Cultural Relics of Jung-g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남식 |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국가·부산광역시 지정 및 비지정 문화재.
[개설]
부산광역시 중구는 삼한 시대는 변한에 소속되었다가 거칠산군으로 편재되었다. 이후 대증현(大甑縣)이 설치되었다가 신라 때 동평현(東平縣)으로 개명되었다. 1021년(현종 12) 지방 제도의 개편으로 동평현은 양주군(梁州郡)[현 양산]에 속하였다. 조선 태종 대부터 부산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왜관이 설치되어 국가 간 교류의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1910년 종전의 동래부에서 부산부의 관할 지역으로 변경되면서 일본인 전관 거류지, 일본 조계지로 전환되었다. 1951년 구제(區制) 시행으로 중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57년 중구로 개칭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중구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 2점, 등록 문화재 1점,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 3점이 있다.
[지정 문화재]
1. 국가 지정 문화재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뤼순[旅順] 감옥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순국할 때까지 옥중에서 200여 점의 글씨를 남겼는데, 그중 25점이 보물 제569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는 그중 한 점으로 남화진이 소장하고 있다. 세로 39.8㎝, 가로 75.3㎝의 비단에 먹으로 ‘고막고어자시’ 6글자를 2글자씩 3줄로 썼다. 좌측에는 세로로 ‘경술 이월 어여순 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庚戌二月於旅順獄中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적혀 있고 손바닥이 찍혀 있다.
『예안 김씨 가전 계회도(禮安金氏家傳契會圖)』 일괄은 16~17세기 초반 제작된 예안 김씨 집안에 전해져 오는 계회도(契會圖) 3점이다. 추관(秋官)[형조의 별칭] 소속인 낭관(郎官)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추관 계회도(秋官契會圖)」, 기성(騎省)[병조의 별칭]에 입직한 관리들에게 왕이 직접 술을 하사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기성 입직 사주도(騎省入直賜酒圖)」, 금오(金吾)[의금부의 별칭]에 소속된 10명의 관원들이 계회를 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금오 계회도(金吾契會圖)」로 구성되어 있다. 신성수가 소장하고 있으며, 보물 제1616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등록 문화재
부산광역시 중구 샘길 10에 있는 부산 복병산 배수지(釜山伏兵山配水池)는 등록 문화재 제327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산에 설치된 본격적인 근대적 상수도 시설이라 볼 수 있다. 면적은 2,944.2㎡이며 1910년 2동을 건립하였고, 1973년 1동을 증축하였다.
3.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
중구에는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 3점이 있다.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104에 있는 부산 근대 역사관(釜山近代歷史觀)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9호이다. 부산 근대 역사관은 일제 강점기 때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면적 1,513.7㎡로 해방 후에는 미국 대사관 및 미국문화원으로 사용하다가 1999년 반환되어 2003년 부산 근대 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부산광역시 중구 복병산길 32번길 5-11에 있는 부산지방기상청(釜山地方氣象廳)[대청동 기상관측소] 건물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1호이다. 1904년 기상청의 전신인 측우소가 부산에 설치되어 1905년 현재의 부산기상청 자리로 이전하였다. 1934년 중구에 위치한 복병산에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을 준공하였는데, 그 건물이 현재의 부산기상청 건물이다. 1939년 조선총독부 기상대 부산측우소, 1945년 국립중앙기상대 부산측우소로 개칭되었다. 1992년 부산지방기상청으로 승격되어 부산·경상남도 지방과 남해안 일부의 기상 관측을 담당하고 있다. 2002년 부산지방기상청이 옛 동래세무서 자리로 이전하였으나 기상 관측 업무는 여전히 현재의 건물에서 하고 있다. 건물의 외관은 선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영도 대교(影島大橋)는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연결하는 다리로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6호이다. 영도 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連陸橋)로 길이 214.7m, 너비 18.3m, 높이 7.2m에 이른다. 영도 대교는 하루 총 6회씩 도개하였는데, 이것은 부산의 명물이 되어 영도 대교의 도개 모습을 보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영도 대교를 찾았다. 그러나 1966년 차량 통행이 증가하면서 도개 기능은 멈추게 되었다.
[비지정 문화재]
충무공 이순신 동상(忠武公李舜臣銅像)은 용두산 광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기단의 4면 동판에 거북선으로 해전(海戰)에 임하는 모습과 비상하는 여인상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이순신 장군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사월 민주 혁명 희생자 위령탑(四月民主革命犧牲者慰靈塔)은 용두산 공원 광장 서쪽 편에 있다. 1960년 자유당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거한 시민 의거로 희생된 부산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화강암 석조 구조물로 1961년 7월 국제신보에서 세웠으며,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이 탑기(塔記)를 썼다. 백산(白山) 안희제 흉상(安熙濟胸像)은 용두산 공원 광장 동쪽에 있으며 높이 2m의 화강암 좌대 위에 가로 90㎝, 세로 70㎝, 높이 114㎝ 규모이다.
대청동과 영주동 뒷산 중앙 공원에 자리 잡은 충혼탑(忠魂塔)은 9개의 열주(列柱) 아래 둥근 반원형[돔]으로 지어졌고 영안실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다. 높이 70m, 탑신부 39m, 상륜부 31m 규모이다. 대한 해협 전승비(大韓海峽戰勝碑)는 중앙 공원에서 150m 정도 남쪽에 조형물로 되어 있고, 그 아래 오석(烏石)으로 된 비가 전승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중앙동에 있는 40계단은 영선산 착평 공사로 오늘날의 영주동에서 옛 부산역과 국제 여객 부두를 왕래하는 편의를 위해 설치된 계단이다. 이 계단의 층수가 40개가 되어서 40계단으로 불렸다. 그러나 본래의 계단은 주택 등에 잠식되어 30m 정도 이동하여 새로 40계단을 정비하고 기념비를 세워 지난날 삶의 애환을 달래고 추억하는 장소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중구는 일제 강점기부터 1990년 이전까지 부산광역시청과 세관, 각종 은행 본점 등 행정 및 금융의 중심지였다. 또한 1876년 한·일 수호 조약에 의해 부산항이 개항지가 되면서 부산항을 품고 있는 중구는 대한민국의 근대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그 결과 중구에는 부산의 발전상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대변하는 수많은 기념비와 상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기념비와 상징물 또한 매우 중요한 문화 자산임에 틀림없다. 부산 시민의 꾸준한 관심과 행정 부처의 지원으로 앞으로도 지정 문화재와 더불어 소중하게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