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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736
한자 弁韓
영어의미역 Byeonhan
이칭/별칭 변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6[복천동 50]|온천천로 319번길 60[낙민동 100-18]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백승충

[정의]

고대 부산 및 경상남도 일대에 존재한 정치 집단.

[개설]

변한(弁韓)은 마한·진한과 함께 삼한을 구성한 정치 집단이었다. 변한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는 사료는 중국 사서인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의 도입 부분이다. 그러나 변한·진한 24 소국(小國)의 명칭을 함께 열거할 때는 일일이 변진 모모국(弁辰某某國)이라 하여 진한의 소국과 구별하고 있어 주목되는데, 이때의 변진이 곧 변한이다.

변한의 존속 시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견해가 있어 왔지만, 일반적으로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로 본다. 변한의 위치에 대해서도 이설이 있지만, 조선 후기 한백겸(韓百謙)이 ‘경상 서남(慶尙西南)’으로 비정한 이후 현재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따르고 있다.

마한이 백제, 진한이 신라로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변한은 4세기부터는 가야로 발전하였다. 가야의 초기 중심지는 지금의 김해인 가락국(駕洛國), 즉 삼한 시대의 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이었으며, 부산 동래[혹은 거제]로 비정되는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은 인접한 구야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변한 소국과 위치 비정]

변한을 이루고 있는 12 소국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 나타나는데,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 ②변진접도국(弁辰接塗國) ③변진고자미동국(弁辰古資彌凍國) ④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 ⑤변진반로국(弁辰半路國) ⑥변낙노국(弁樂奴國) ⑦변진미오야마국(弁辰彌烏邪馬國) ⑧변진감로국(弁辰甘路國) ⑨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 ⑩변진주조마국(弁辰走漕馬國) ⑪변진안야국(弁辰安邪國) ⑫변진독로국.

여기서 현재 그 위치를 비정하는 데 대체로 학계의 이견이 없는 소국은 ①변진미리미동국[현 경상남도 밀양시] ③변진고자미동국[현 고성군] ⑨변진구야국[현 김해시], ⑪변진안야국[현 함안군] 정도이다. 나머지는 연구자 간의 비정 지역 고증이 일치하지 않거나 비정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변한의 대외 교류]

변한의 대외 교류는 원거리 교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삼국지』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변한은 철 생산이 왕성하였으며, 생산된 철을 인접 지역뿐만 아니라 낙랑·대방 등 중국의 군현 및 왜 등 먼 지역에도 공급하였다. 변한의 원거리 교역은 연안 항해와 같은 해양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변한인의 탁월한 해양 활동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조(倭人條)에 보이는 바와 같이 대방군에서 변한의 한 소국인 ‘구야한국’을 거쳐 왜인 땅에까지 이르는 경로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고고 자료(考古資料) 측면에서도 경상남도 남해안 지역 및 일본 열도 각지에서 산견(散見)되는 ‘화천(貨泉)[엽전]’이라든지, ‘판 모양 쇠도끼[板狀鐵斧]’ 등의 분포는 왜인조의 기사에 나타나는 경로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와 같은 철 생산과 해양 활동을 통한 변한인의 활발한 대외 교류는 변한이 이후 가야로 발전하는 데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변한인의 생활]

『삼국지』는 변한인의 기본적인 삶의 바탕이 되는 의식주(衣食住) 생활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이를 차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생활이다. 변한인은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꾸기를 알아 비단과 베를 짤 줄 알았다고 하는데, 생산된 비단과 베는 변한인이 입는 옷의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둘째, 식생활이다. 변한은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과 벼를 심기에 적당하다고 하였는데, 이때 생산된 곡물은 변한인의 주식이 되었을 것이다. 셋째, 주생활이다.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魏略)’은 변한인의 주택을 묘사하고 있는데, 집을 지을 때 나무를 가로로 쌓기 때문에 마치 감옥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이는 속칭 ‘귀틀집’을 의미한다.

[변한과 진한·마한의 관계]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의 서술 체계의 특이성과 관련되지만, 변한의 풍속은 진한·마한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한과 진한 및 마한의 관계에서 세부적인 차이점이 드러나는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삼국지』는 변한인이 진한인과 뒤섞여 살며, 변한인의 의복과 주택은 진한인과 같다고 하였다. 다만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방식만은 다르다고 하였는데, 문의 서쪽에 조신(竈神)[부엌의 신인 조왕신]을 모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변한인과 진한인은 사용하는 언어와 법속 또한 서로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진한인의 언어가 마한인과 달랐다고 하므로, 변한인이 사용하는 언어 역시 마한인과 달랐음은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마한인의 경우, 소나 말을 탈 줄 몰라 모두 장례용으로 사용한다고 한 데 반해, 변한인은 소와 말을 탈 줄 안다고 하였다. 이것은 부산·경상남도 지역에서 발굴된 마구 등에서 반영되어 있는 바와 같이, 변한에서는 소나 말이 전쟁에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삼한의 풍속에 보이는 이상과 같은 차이점과 지리적 구분에 따라 『삼국지』 동이전을 편찬한 중국인은 ‘한조’라 하여 일괄 기록하면서도 세부적으로 ‘마한’, ‘진한’, ‘변한’으로 구별하여 기술하였던 것이다.

[독로국]

삼한 시대 부산과 관련 맺을 수 있는 변한 소국은 독로국(瀆盧國)이다. 그러나 독로국의 위치 비정 문제의 경우, 아직까지 확정적이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지금의 경상남도 거제도에 비정하는 학자들이 존재하였고, 지금도 이에 동조하는 견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정약용(丁若鏞)은 ‘독로국(瀆盧國)’을 ‘두로국’으로 읽고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거제군조에 보이는 거제의 옛 이름 ‘상군(裳郡)[상=두루기]’과 동일시하여 거제도에 비정하였다. 이후 신채호(申采浩)·정인보(鄭寅普) 등의 지지가 있었고, 최근에는 심봉근(沈奉謹)이 이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 학자 요시다 도고[吉田東伍]가 지금의 부산인 ‘동래’로 비정한 이후 이병도(李丙燾), 정중환, 천관우 등 대부분의 학자가 이에 따르고 있다.

특히 음의 유사함[音相似]을 가지고 위치 비정을 시도할 경우, ‘독로→ 동노→ 동내→ 동래’가 ‘두로국=두루기’보다는 이치에 합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거제도에는 독로국이 존재하였을 것임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자료가 전무한 형편인 데 반해, 부산 동래에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釜山福泉洞古墳群) 및 그 이전의 부산 동래 패총(釜山東萊貝塚) 등 삼한 시대 유적이 존재하므로 독로국은 부산 동래에 비정됨이 합리적이라는 설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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