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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 김씨 가전 계회도 일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434
한자 禮安金氏家傳契會圖一括
영어의미역 Picture of Literary Writers’ Gathering for Entertainment Handed down by Yean Gim Clan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분포로 111[용호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성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계회도
서체/기법 안견파 화풍
소유자 신성수
관리자 신성수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작 시기/일시 1546년연표보기 - 「추관 계회도」 제작
제작 시기/일시 1581년연표보기 - 「기성 입직 사주도」 제작
제작 시기/일시 1606년연표보기 - 「금오 계회도」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4월 22일연표보기 - 예안 김씨 가전 계회도 일괄 보물 제161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예안 김씨 가전 계회도 일괄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장처 신성수 - 부산광역시 남구 분포로 111[용호동]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의 개인이 소장한 3점의 조선 시대 계회도.

[개설]

예안 김씨 가전 계회도(禮安金氏家傳契會圖) 일괄은 예안 김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온 「추관계회도(秋官契會圖)」, 「기성입직사주도(騎省入直賜酒圖)」, 「금오계회도(金吾契會圖)」의 3점으로,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사는 신성수가 소장하고 있다. 2009년 4월 22일 보물 제161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3점의 계회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추관계회도」는 1546년 추관(秋官)[형조의 별칭] 소속 낭관(郎官) 8명이 참여한 모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계회도이다. 「기성입직사주도」는 1581년 기성(騎省)[병조의 별칭]에 입직한 관리들에게 왕이 술을 하사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된 계회도이다. 「금오계회도」는 1606년 금오(金吾)[의금부의 별칭]에 소속된 관원들이 계회를 열고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계회도이다.

세 작품은 모두 조선 중기 계회도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화면 상단에 계회의 표제가 적혀 있고, 중단에는 산수를 배경으로 각 계회의 장면이 묘사되었으며, 하단에는 계회 참석자들의 인적 사항을 적은 좌목(座目)이 적혀 있다. 다만 「추관계회도」와 「금오계회도」에는 화면 중단 계회 장면을 묘사한 그림 옆에 정사룡(鄭士龍)[1491~1570]과 유근(柳根)[1549~1627]이 각각 쓴 찬문(撰文)이 적혀 있으며, 「기성입직사주도」에는 찬문은 없으나 하단의 좌목 좌우에 대나무와 매화가 각각 그려져 있어 앞선 두 계회도와 구분된다.

[특징]

「추관계회도」를 보면 사선으로 배치된 강변, ‘S’자형으로 전개된 원경의 산, 원형의 구도 속에 나열된 여러 경물들이 특징적이다. 여기에 효과적으로 구사된 수묵의 농담 및 인물 및 수지 표현에 보이는 섬세하고 꼼꼼한 필치는 「추관계회도」가 조선 중기 계회도 중 상당히 우수한 예임을 시사한다. 「기성입직사주도」는 「추관계회도」보다 산수·인물과 주변 경물(景物)의 표현이 더욱 간략해졌다. 특히 안개 표현으로 산과 건축물들을 매우 소략하게 표현한 것이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기성입직사주도」는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탄 경복궁의 주요 전각이 표현된 점에서 역사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금오계회도」는 계회 장면 위주로 표현된 계회도가 본격적으로 제작되던 17세기에 그려진 그림이면서도 산수 위주로 표현된 16세기 중반 계회도의 형식을 충실히 따른 작품으로서 주목된다. 그러나 산수는 물론 인물 묘사가 매우 소략하고, 근경·중경·원경에 위치한 각 경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점에서 계회도의 정형화·형식화가 상당히 진행된 시기의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예안 김씨 가전 계회도 일괄은 예안 김씨 문중 사람들이 세대를 달리하며 각 계회에 참석하여 제작한 계회도라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다. 즉, 1546년 추관의 계회에는 김사문(金士文)이, 1581년에 있었던 기성의 계회에는 김륵(金玏)이, 그리고 1606년의 금오의 계회에는 김지선(金止善)이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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