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31
한자 東萊府誌題詠雜著
영어의미역 Record of Dongnae-bu, Jeyeong, Jpcheo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영 시문|문학 작품
작가 박사창(朴師昌)[1687~1741]
저자 생년 시기/일시 1687년연표보기 - 박사창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41년연표보기 - 박사창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740년 12월연표보기 - 『동래부지』에 수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39년연표보기 - 박사창 동래 부사로 부임
배경 지역 부산광역시

[정의]

1740년 박사창이 동래 부사 재임 시절에 지은 문학 작품.

[개설]

「동래부지 제영 잡저(東萊府誌題詠雜著)」박사창(朴師昌)[1687~1741]이 편찬한 『동래부지(東萊府誌)』의 일부로, 부산 지역의 명승고적을 읊은 시문들이 많이 실려 있다. 『동래부지』는 1679년(숙종 5)에 동래 부사로 도임한 이서우(李瑞雨)가 펴낸 『장산후지(萇山後誌)』와 『동래승람서후지(東萊勝覽書後誌)』를 참고하여 박사창이 편찬한 것이며, 『동래부지』의 57개 항목 가운데 56번째가 ‘제영 잡저’이다.

『장산후지』와 『동래승람서후지』에 앞서 1611년(광해군 3)에 동래에 도임(到任)한 성진선(成晋善)『동래지(東萊誌)』를 지은 바 있었으나, 『동래지』박사창『동래부지』를 편찬할 당시에도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박사창『동래부지』 외에 간사자(刊寫者) 불명의 『동래부지』가 있고, 1937년에 문기주(文錡周)에 의해 편찬된 『동래군지(東萊郡誌)』가 있으나, 제영(題詠) 부분만을 놓고 볼 때 박사창『동래부지』에 실려 있는 ‘제영 잡저’가 내용이 가장 충실하고 방대하다.

「동래부지 제영 잡저」에는 ‘장산국(萇山國)’ 항목으로부터 ‘부산 자성(釜山子城)’에 이르기까지 43곳의 명승과 누정, 성곽 등을 대상으로 한 시와 기(記), 서(序), 제문(祭文) 등 총 290여 편의 시문이 실려 있다.

[구성]

박사창『동래부지』를 편찬하면서 대부분의 읍지와 마찬가지로 ‘산천(山川)’, ‘고적(古跡)’, ‘관사(官舍)’, ‘누정(樓亭)’, ‘청사(廳舍)’, ‘성곽(城郭)’ 등의 항목을 설정하고, 혹 이들 장소와 관련되는 시문이 있을 경우에는 ‘〇견하(〇見下)’ 또는 ‘유〇(有〇)’ 등의 방식으로 이를 밝혔다. 박사창이 말한 ‘〇견하’의 ‘하(下)’가 곧 ‘제영 잡저’이다. 43종의 제영 항목은 시작되는 행의 첫 글자를 한 자 올려 구분하였고, 각 시문은 행을 달리하여 구분하였다.

「동래부지 제영 잡저」는 동래부(東萊府) 전체에 해당될 수 있는 장산국과 ‘산천’에 속하는 ‘범어천(梵魚川)’, ‘온정(溫井)’, ‘대마도(對馬島)’, 그리고 고적(古跡)에 속하는 ‘해운대(海雲臺)’와 ‘몰운대(沒雲臺)’, ‘영가대(永嘉臺)’, ‘태종대(太宗臺)’, ‘동대(東臺)’, ‘의상대(義湘臺)’, 관사(官舍)에 속하는 ‘충신당(忠信堂)’, ‘완대헌(緩帶軒)’, ‘연심당(燕深堂)’, ‘관주헌(貫籌軒)’, ‘봉래관(蓬萊館)’ 등과 ‘정원루(靖遠樓)’와 ‘소하정(蘇蝦亭)’, ‘과정(瓜亭)’ 등을 포함하는 누정 등에 대한 각종 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동래부지 제영 잡저」에 실려 있는 제영 시문은 총 291편이다. 시가 254수로 가장 많고, 그 외에 기문(記文) 20편과 서 2편, 설(說) 1편, 비문(碑文) 4편, 전(傳) 1편, 장계(狀啓) 2편, 제문 5편, 상량문(上樑文) 2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54수의 시 가운데 인빈헌(寅賓軒)에 대한 것이 66수로 가장 많고, 정원루 24수, 해운대 19수, 영가대 17수 등 이들 몇 곳에 대한 제영 시문이 압도적으로 많다.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을 기리는 충렬사(忠烈祠) 조에는 10수의 시 외에 5편의 제문과 3편의 기문, 전 1편, 장계 1편 등 다양한 양식의 시문이 실려 있다.

상당수의 시문은 작품 말미에 세주쌍행(細注雙行) 형식으로 출전이나 지어진 시기 등을 부기(附記)해 두고 있는데, ‘인빈헌래주잡영(寅賓軒萊州雜詠)’과 ‘정원루래주잡영(靖遠樓萊州雜詠)’이라는 세주가 가장 많다. 이는 인빈헌과 정원루에 걸려 있는 편액의 시문을 취하였음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빈헌은 동래부의 객사인 봉래관 동쪽에 있는 부속 건물이고, 정원루는 객사의 북쪽에 있는 누각이므로 편자인 박사창이 접하기에 용이하였던 때문이다.

동래부 관할 지역의 대표적인 명승인 해운대에 대한 제영시에는 ‘인빈헌래주잡영’과 ‘정원루래주잡영’이라는 세주 외에 ‘수영영파당(水營寧波堂)’이라는 세주가 달려 있는데, 이는 해운대가 경상 좌수영에 인접한 때문일 것이다. 몰운대에 대한 제영시에 ‘다대진남정(多大鎭南亭)’이라는 세주가 달려 있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영가대에 대한 17수의 시와 4편의 기는 대부분 통신사들이 지은 것인데, 이는 일본으로 떠나는 통신사가 이곳에서 출발하고 이곳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다음은 「동래부지 제영 잡저」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윤훤(尹喧)[1573~1627]의 「장산국」이라는 시이다.

「장산국」

고국황량불기시(故國荒凉不記時)

강남증판일구자(江南曾辦一龜玆)

직방소재무징처(職方所載無徵處)

유유종년조작비(惟有終年鳥雀悲)

[특징]

「동래부지 제영 잡저」는 현전하는 동래부 읍지 가운데 가장 다양하고 많은 제영 시문을 수록하고 있다. ‘대마도(對馬島)’ 조에 윤훤이춘원(李春元)의 7언 절구가 실려 있는 것도 「동래부지 제영 잡저」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춘원의 작품은 윤훤의 시에 차운한 것이며, 이춘원의 이 작품은 그의 「차래주잡영(次萊州雜詠)」 17수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동래부지 제영 잡저」의 ‘성신당(誠信堂)’ 조에는 일본의 우삼방주(雨森芳洲)가 지은 기문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처럼 우리나라의 누정에 대해 일본인이 기문을 적은 것은 좀처럼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동래부지 제영 잡저」에는 20편의 기문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이 지금은 없어진 건물에 대한 것들이다. 기문에는 해당 건물이 지어진 시기와 건축 과정, 규모와 주변 경관이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동래부지 제영 잡저」에 실려 있는 이들 기문을 잘 분석하면 부산 지역 문화재의 옛 모습을 파악하고 복원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문뿐 아니라 제영시 역시 주변 경관과 이에 대한 소회를 읊는 경우가 많으므로, 부산 지역 명승고적의 옛 모습을 이해함에 있어 주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동래부지 제영 잡저」의 ‘산천’ 조에는 윤훤이춘원이 지은 시도 포함이 되어 있어, 윤훤이춘원이 이들 작품을 지은 17세기 초반은 물론 『동래부지』에 이들 작품을 수록한 18세기 후반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마도를 동래부에 딸린 부속 도서처럼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윤훤은 ‘본래 신라의 땅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인데, 어느 시대부터 개나 양 같은 무리들이 모여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本是鷄林輿地誌 不知何代犬羊藂]’고 탄식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