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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28
한자 萊山錄
영어의미역 Naesanro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시|7언 율시|5언 율시|5언 고시
작가 신정(申晸)[1628~1687]
저자 생년 시기/일시 1628년연표보기 - 신정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87년연표보기 - 신정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70년연표보기 - 창작
배경 지역 부산광역시

[정의]

1670년에 신정이 접위관으로 동래에 파견되었을 때 지은 한시.

[개설]

왜관(倭館) 이설 문제로 일본 측의 왜차(倭差) 평성상(平成尙)이 접위관(接慰官)을 청함에 따라 1670년(현종 11) 2월에 신정(申晸)[1628~1687]이 부산에 파견되었다. 신정이 한양을 떠나 부산에 도착해서 부산에 머무르다 한양으로 귀환할 때까지 지은 한시들을 「내산록(萊山錄)」이라 칭하고, 이를 신정의 문집 『분애 유고(汾厓遺稿)』에 실었다. 총 151수로 되어 있으며, 부산 지역의 명승과 누관(樓館)에 대한 제영 외에 부산 왕래 도중, 그리고 부산 체류 시에 보고 느낀 여러 일들에 대한 감상 및 동래 부사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과 주고받은 시 등 다양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산록」신정의 『분애 유고』에 실려 있는 것 외에도, 같은 제명으로 된 것이 1607년(선조 40)에 동래 부사로 부임한 이안눌(李安訥)[1571~1637]의 『동악집(東岳集)』과 1657년(효종 8)에 동래 부사로 부임한 홍위(洪葳)[1620~1660]의 『청계집(靑溪集)』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구성]

「내산록」은 4수로 된 「내산감고(萊山感古)」와 9수로 된 「내주곡(萊州曲)」을 포함하여 총 152제 213수로 되어 있다. 시의 형식은 5언 절구와 5언 율시, 7언 절구, 7언 율시, 5언 배율, 7언 배율, 5언 고시 등으로 다양하다. 시를 지은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제재에 따른 양식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7언 절구와 7언 율시가 압도적으로 많고, 특히 명승과 누관에 대한 제영(題詠)의 경우에는 7언 율시로 지어진 경우가 많다. 「내산록」에는 ‘인빈헌(寅賓軒)’, ‘장산(萇山)’, ‘태종대(太宗臺)’, ‘봉래관(蓬萊館)’, ‘부산포(釜山浦)’, ‘왜관(倭館)’, ‘진남루(鎭南樓)’, ‘수영(水營)’, ‘해운대(海雲臺)’, ‘고운 고적(孤雲古蹟)’, ‘충렬사(忠烈祠)’, ‘소하정(蘇蝦亭)’ 등에 대한 제영시가 포함되어 있다.

[내용]

「내산록」은 부산으로 떠나면서 친구들과 송별연을 벌이면서 지은 시로 시작해서 동래 부사와 증별(贈別)하는 시로 끝맺는다. 한양을 떠나 동래의 인빈헌에 이르기까지 도중에 지은 8수의 시는 조령(鳥嶺)과 상산관(商山館), 송림사(松林寺), 영남루(嶺南樓) 등처럼 경유한 명승에 대한 감흥을 읊은 것이다. 부산에 도착한 후에 지은 시에는 ‘인빈헌’, ‘장산’, ‘태종대’, ‘봉래관’, ‘부산포’, ‘왜관’, ‘진남루’, ‘수영’, ‘해운대’, ‘고운 고적’, ‘충렬사’, ‘소하정’ 등처럼 부산의 명승이나 누관에 대한 것도 있고, 동래 부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수령들이 지은 시에 대해 화답하거나 그들이 선물한 물건을 받고 사례하는 것도 있다.

옛 시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지은 시에 차운한 시도 있고 가족 친지에게 보내는 시도 있다. 고향집을 생각하는 시도 있으며, 한양에서의 생활을 추억하면서 지은 시도 있고, 왜국(倭菊)과 석류, 고검(古劍) 가야금 소리, 피리 소리, 파도 소리, 빗소리, 기러기 소리 등을 접하면서 느낀 감상을 읊은 시도 있다. 이 밖에 절후에 따라 느끼는 객수(客愁)를 읊은 시도 있고, 지역 인사의 초당에 제(題)한 시도 있다.

「해운대(海雲臺)」

신라학사최해운(新羅學士崔海雲)

해상축대릉자분(海上築臺凌紫氛)

표륜일거기천재(飆輪一去幾千載)

화락석단공석훈(花落石壇空夕曛)

봉산표묘백은궐(蓬山縹緲白銀闕)

기수파사창학군(琪樹婆娑蒼鶴群)

빙허람고의초홀(憑虛覽古意超忽)

월하봉취여상문(月下鳳吹如相聞)

[특징]

신정「내산록」은 「빈왜일록(儐倭日錄)」에 담긴 자신의 한양~부산의 왕복 일정과 부산 체류 일정 및 감상을 한시로 표현한 것이다. 신정은 접위관으로 임명될 때부터 부산에 체류하다 귀환할 때까지의 전 과정을 「빈왜일록」에 기록으로 남겼다. 왕래에 소요된 40일과 부산 지역에 머무른 200일을 합하여 도합 240일 동안의 여정을 「빈왜일록」에 실은 것이다. 따라서 「내산록」은 「빈왜일록」이라는 서사 기록에 상응하는 서정시 및 제영시라고 할 수 있다.

신정이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던 이안눌홍위와는 달리 한양에서 파견되어 온 접위관이었던 때문인지, 「내산록」에는 동래 부사와 주고받은 시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의이가우문강남인가새신지작(擬李嘉祐聞江南人家賽神之作)」에는 ‘동래의 풍속은 귀신을 믿고 굿을 좋아한다’는 구절이 있어 주목된다.

「내산록」과 자매편이라 할 수 있는 「빈왜일록」의 1670년[경술년] 5월 12일조에는 연청(宴廳)에서 차왜(差倭)와 읍례(揖禮)를 행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나이가 겨우 13~14세 되는 소동(小童)이 화장을 하고 아름다운 여인처럼 차왜의 앞에 앉아 있었는데 이를 ‘와가씨(臥佳氏)’라고 부른다는 왜관의 독특한 풍속이 기록되어 있어 주목된다.

[의의와 평가]

신정「내산록」두모포(豆毛浦)에 있던 왜관을 초량으로 이설하는 문제로 부산에 급파된 접위관의 눈에 비친 부산 지역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17세기 후반 부산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내산록」에 상응하는 산문 기록인 「빈왜일록」이 신정의 『분애 유고』에 남아 있어, 「내산록」과 「빈왜일록」을 비교 검토해 보면 17세기 후반에 접위관이나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던 이들의 행차 경로와 동정을 파악할 수 있다.

「내산록」에는 4수로 된 「내산감고」와 9수로 된 「내주곡」이 있는데, 「내산감고」는 ‘장산국(萇山國)’, ‘정과정(鄭瓜亭)’, ‘해운대’, ‘소하대(蘇嘏臺)’ 4곳을, 「내주곡」은 ‘부포(釜浦)[釜山浦]’, ‘진남루’, ‘수영’, ‘영가대(永嘉臺)’, ‘충신사(忠臣祠)[충렬사]’, ‘소하정’, ‘부성(釜城)’ 등과 새신(賽神)[굿이나 푸닥거리를 하는 일]의 풍속 등을 읊고 있다.

신정은 「내주곡」의 서문에서 유우석(劉禹錫)이 건안(建安)에 있으면서 그 고을의 풍속을 취하여 「죽지사」 9수를 지은 것처럼 자신도 9편의 절구를 지어 유우석의 「건안 죽지사」를 본뜬다고 밝혔다. 「내주곡」이 지방의 풍속을 소재로 하여 연작한 시 형식을 취하는 「죽지사」를 본뜬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산록」은 제명으로 볼 때, 분명 동래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기는 하나 밀양의 영남루는 물론 조령(鳥嶺)과 청교(靑郊), 함창(咸昌), 상산관(商山館), 송림사(松林寺) 등에 대한 제영시도 있다. 이는 「내산록」이 한양을 출발하면서부터 동래에 이르기까지 경유한 곳들을 순차적으로 읊은 데에 기인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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