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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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靖遠樓 |
영어의미역 | Jeongwon-ru Pavil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시장길 27[복천동 229-7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광석 |
[정의]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 객관 내에 있던 누각.
[개설]
현재 정원루(靖遠樓) 터에는 송공단(宋公壇)이 설치되어 있어 송상현(宋象賢)을 비롯한 동래성에서 순절한 선열들을 배향하고 있다. 정원루는 동래부의 옛 누각으로 비록 소실되었지만 과거 동래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며, 특히 임진왜란 당시 동래 읍성을 수호하기 위해 순절한 송상현 부사 등 여러 선열들의 충혼을 느끼게 하는 유적이다. 정원루의 이러한 역사적 전통과 정신이 지금의 송공단으로 유지되고 있다.
[명칭 유래]
정원루의 ‘정원(靖遠)’이란 원인(遠人)[일본인]을 바로잡아 다스린다는 뜻으로, 동래 읍성 내에 있던 누각이다.
[형성 및 변천]
1446년 동래 현령 김시로(金時露)가 건립하였으며, 1592년 4월 15일 왜군에게 동래 읍성이 함락되어 문루와 관아가 모두 불타면서 정원루도 함께 소실되었다. 동래 부사 송상현이 이곳에서 순절하였다 한다.
그 후 동래 부사 한배하(韓配夏)가 부임하여 1708년(숙종 34)에 누각을 다시 짓고 이를 기념하며 「부사 한배하기(府使韓配夏記)」라는 기록을 남겼고, 그의 아들 한사맹(韓師孟)도 건물 복원을 기념하는 글을 썼다. 그 외 부사 박내정(朴乃貞)이나 통신사 관리들도 잠시 머물면서 건물의 웅장함을 찬미한 시를 짓는 등 여러 사람이 글을 남겼다. 하지만 복원한 자리는 정원루의 옛터가 아니라 약간 떨어진 곳[현 동래부 동헌 서쪽, 옛 수안동사무소 인근]이었다.
이어 1742년(영조 18) 동래 부사 김석일(金錫一)이 부임하여 정원루의 옛터에 제단(祭壇)을 설치하였는데, 그것이 송공단이다. 한편 임진왜란 후 한배하 동래 부사가 복원한 정원루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소멸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옛 정원루 자리는 동래부 동헌의 서쪽이며, 객사[현 시장과 상가 일대]의 남쪽 방향이다. 현재 동래 시장 종합 상가 건물의 뒤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