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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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邑內面 |
영어의미역 | Eupnae-m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동표 |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읍내면(邑內面)은 조선 후기 동래부 산하 행정 구역의 하나이다.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의하면 조선 후기 동래부의 행정 구획은 읍내면, 동면(東面), 남촌면(南村面), 동평면(東平面), 사천면(沙川面), 서면(西面), 북면(北面) 등 7개의 면과 각 면 아래 모두 22개 동 79개 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래부의 면명(面名)은 읍내면을 중심으로 동면·서면·남면·북면으로 나누었으며, 리·동명(里洞名)은 자연 마을이 아닌 행정동과 리명으로 되어 있었다.
[관련 기록]
동래부 읍내면에 관한 대표적인 자료는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동래부지』의 각면 각리 원근 정도(各面各里遠近程道)조와 19세기 전반에 간행된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 방리(坊里)조의 읍·면에 대한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
[내용]
조선 후기 읍내면은 동쪽은 동면, 서쪽은 서면, 남쪽은 남촌면, 북쪽은 북면에 각각 접해 있었으며, 크게는 동부와 서부로 나뉘었다. 읍내면의 동부는 호현리(狐峴里), 충렬사리(忠烈祠里), 안락리(安樂里), 염창동(廉倉洞), 구향교동(舊鄕校洞), 합지동(蛤旨洞), 역동(驛洞), 휴산동(休山洞), 당하동(堂下洞), 지동(池洞), 수문동(水門洞), 신향교동(新鄕校洞), 남문 동변동(東邊洞) 등 10개 동 3개 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부는 남문 서변리(西邊里), 북문 노상리(路上里), 노하리(路下里), 당동(堂洞), 옥미정동(玉味井洞), 대정동(大井洞), 서문외동(西門外洞), 범어동(凡魚洞), 야정동(野井洞), 객달동(客達洞) 등 7개 동 5개 리로 되어 있었다.
읍내면은 동부와 서부를 합하면 모두 17개 동 8개 리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휴산동·당하동·지동·수문동·신향교동·남문 동변동·남문 서변리·서문 노상리·노하리·북문 노상리·노하리·당동·옥미정동·대정동 등은 성내(城內)라 하여 둘레 약 5,239.7m[1만 7291척], 높이 약 5.15m[17척]의 읍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내에는 부사가 집무하는 동래부 동헌 충신당과 객사 봉래관을 비롯하여 많은 관청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 한 부(府)의 치소로서 손색이 없었으며, 또 읍성에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성문이 있고 각 성문에는 문장(門將)과 문직(門直)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성문을 여닫고 통행인을 검문하였다.
[변천]
조선 후기의 읍내면은 대개 현재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읍내면을 통해 조선 시대 부산 지역의 지방 제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