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338
한자 南村面
영어의미역 Namchon-m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동표

[정의]

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남구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남촌면(南村面)은 조선 시대 지방 통치 체제의 정비를 통해 중앙 집권화가 추구되고, 면리제(面里制)를 통해 국가의 군현 하부 촌락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동래부 남촌면에 관한 대표적인 자료는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동래부지(東萊府誌)』의 각면 각리 원근 정도(各面各里遠近程道)조와 19세기 전반에 간행된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의 방리(坊里)조의 읍·면에 대한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

[내용]

남촌면은 조선 후기 동래부 산하 행정 구역의 하나이다.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동래부지』에 의하면 조선 후기 동래부의 행정 구획은 읍내면(邑內面), 동면(東面), 남촌면, 동평면(東平面), 사천면(沙川面), 서면(西面), 북면(北面) 등 7개 면과 각 면 아래 모두 22개 동 79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동래부의 면 명칭은 읍내면을 중심으로 동·서·남·북면으로 나누었으며, 동리(洞里) 명은 자연 마을이 아닌 행정동과 이(里)로 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 동래부 남촌면은 관문(官門)에서 9리 거리에 위치한 숭정리(崇亭里), 관문에서 10리 거리에 위치한 동부리(東部里)·서부리(西部里)·북문외리(北門外里)·남문외리(南門外理), 관문에서 12리 거리에 위치한 축산동(丑山洞)·감포리(甘浦里)·칠포리(漆浦里)·포이포리(包伊浦里), 관문에서 20리 거리에 위치한 남천리(南川里)·대연리(大淵里), 관문에서 27리 거리에 위치한 석포리(石浦里), 관문에서 28리 거리에 위치한 분포리(盆浦里), 관문에서 30리 거리에 위치한 용당리(龍堂里)·감만리(戡蠻里), 관문에서 35리 거리에 위치한 우암리(牛岩里) 등 1개 동 15개 리로 편제되어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동부리·서부리·북문외리·남문외리에는 경상 좌수영(慶尙左水營)이 자리 잡고 있어 둘레 약 2,758m[9,198척], 높이 약 4m[13척]의 성곽이 있었다. 축산동·감포리·칠포리·포이포리에는 각각 수군만호영(水軍萬戶營)이 있었다.

[변천]

남촌면은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동래부의 사회 경제적 사정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천을 거듭하였다. 남촌면은 대개 지금의 부산광역시 남구 전 지역이 해당하며, 조선 후기 당시의 위치를 보면 동쪽과 남쪽은 바다에 접하고, 서쪽은 동평면, 북쪽은 읍내면에 접해 있었다.

[의의와 평가]

남촌면은 조선 시대 방위면 설치 현황과 부산 지역 행정 제도를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