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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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順伊 |
영어음역 | Gim Sun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경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순이(金順伊)는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3·1 운동이 일어난 뒤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알리고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였으며 시위를 벌일 것을 종용하였다. 김순이는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 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같은 학교 학생인 김응수(金應守)·송명진(宋明進)·김난줄(金蘭茁)·김반수(金班守)·김봉애(金奉愛)·김복선(金福善)·박정수(朴貞守)·이명시(李明施) 등과 함께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들어 시위 항쟁을 계획하였다.
3월 11일 김순이는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과 더불어 좌천동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하고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부산진일신여학교의 만세 시위는 부산 지역 3·1 운동의 효시를 이루는 것으로, 일제 조선 침략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 개발되었던 부산 지역이 동일한 이유로 민족 모순이 가장 첨예한 현장이 되었음을 드러내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김순이는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