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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962
한자 文尙宇
영어음역 Mun Sangu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대영로239번길 20[초량동 60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차철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업가
성별
대표경력 경남은행 지배인
출생 시기/일시 1882년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8년 - 동경고등상업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12년 - 경남은행 지배인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경남은행 전무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해동은행 이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조흥은행 이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1월 - 기미육영회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2월 - 부산예월회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22년 - 부산여자고등보통학교설립기성회 회원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민립 대학 발기인
몰년 시기/일시 1954년 7월 9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좌천동
학교|수학지 육영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좌천동 437, 474
활동지 경남은행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604지도보기
활동지 박간본점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지도보기
활동지 부산상업회의소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 8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금융가.

[가계]

문상우(文尙宇)는 1882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좌천동에서 문세화(文世化)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문상우는 어려서 부산진에 위치한 육영재(育英齊)에서 한학을 배웠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부산의 대표적인 일본인 부자였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의 점원으로 생활하였다. 문상우가 박간상점(迫間商店)에 입사할 때 조선인 정기두(鄭箕斗)도 점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그 인연으로 정기두의 누이와 혼인하였다. 그 후 하자마 후사타로정기두의 후원으로 1908년 일본 동경고등상업학교(東京高等商業學校)로 유학하였는데, 한흥교(韓興敎)·김국태(金局泰) 등과 함께 부산의 초기 유학생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일본 유학 시절 문상우는 일본조선유학생회를 조직하여 『학지광(學之光)』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였고, 조선의 상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잡지 『상업계(商業界)』[1908년]를 내놓는 등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학회에 참여하여 조선인 유학생들의 역할과 조선 근대화를 위한 계몽 활동에 힘을 기울였다.

1910년 무렵 귀국하여 한일은행 본점에서 근무하였는데, 1912년 윤상은(尹相殷)구포저축주식회사를 구포은행으로 전환하면서 문상우를 지배인으로 초빙하였다. 1923년 송태관이 경남은행 경영에 실패하여 두취직에서 쫓겨나자 윤상은의 뒤를 이어 경영을 담당하였으며, 특히 1924년부터 1927년까지는 전무로 활동하였다. 이후 경남은행의 경영 사정이 악화되면서 물러나, 1927년 8월부터 1938년 1월까지 해동은행 이사로 근무하였다. 해방 후에는 조흥은행의 이사로 참여하였으나, 1949년 반민족자 처벌을 위한 특별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사퇴하였다. 6·25 전쟁 때 부산으로 잠시 피난 왔다가 서울로 돌아간 뒤, 1954년 7월 9일 사망하였다.

문상우는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경남은행의 경영자라는 지위 덕분에 부산상업회의소 평의원[1920~1922년]과 부회두[1922~1927년]를 지냈다. 정치적으로는 1923년 부산부협의회 의원, 경상남도 평의회 평의원을 지냈고, 1927년에는 부산의 일본인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 카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郞]와 더불어 경상남도 관선 도의원에 당선되었다.

문상우는 부산의 문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 운동 후 부산지역 부르주아 층이 조직한 문화 운동 단체였던 기미육영회[1919년 11월]와 부산예월회[1919년 12월]에 참가하였으며, 1920년 초에는 부산청년회에 참여하여 각종 문화 행사나 공회당 설립을 위한 모금 행사에 기부금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여자 고등 보통학교 설립 기성회나 민립 대학 발기인으로도 적극 참여하였다. 사회 운동에도 관심을 가져, 1926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부산을 방문했을 때 조선인 도항 저지 해제와 부산부청의 조선인 이사관 설치를 건의하는 등 조선인 권리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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