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960
한자 朴時淵
영어음역 Bak Siy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교육자
성별
대표경력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
수학 시기/일시 1918년 3월 - 부산진일신여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 받음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연표보기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거주|이주지 부산부 원리 492
활동지 부산진일신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768-1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시연(朴時淵)은 1918년 3월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를 6회로 졸업하였다. 3·1 운동이 발생한 1919년에는 모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3·1 운동은 곧바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부산에서도 서울의 학생들이 부산 지역 학생들에게 만세 시위를 격려하면서 비밀리에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3월 10일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응수(金應守)가 전단을 발견하고 같은 학교의 교사인 주경애(朱敬愛)에게 건네주며 지도를 요청하였다. 전단을 본 주경애가 학생을 시켜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연락하는 한편 동료 교사들을 규합하자, 박시연은 적극 가담하여 함께 만세 시위 참가를 결의하였다.

박시연주경애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봉애(金奉愛)·김복선(金福善), 고등과 3학년 김응수, 고등과 2학년 김난줄(金蘭茁)·김신복(金新福), 고등과 1학년 이명시(李明施)·송명진(宋明進), 학년 미상 김순이(金順伊)·박정수(朴貞守) 등의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어 항쟁을 준비하였다. 이윽고 3월 11일 저녁 9시경 이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좌천동 일대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부산진일신여학교의 만세 시위는 부산 지역 3·1 운동의 효시이며, 일제의 조선 침략에서 교두보 역할을 하며 개발되었던 부산 지역이 동일한 이유로 민족 모순이 가장 첨예한 현장이 되었음을 드러내는 일대 사건이었다. 또한 그 때문에 박시연주경애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이라는 비교적 중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5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부산진일신여학교 7회 졸업생들은 1919년 3월로 예정된 졸업식을 박시연, 주경애 두 교사의 출옥 때까지 미루었다. 이에 이듬해인 1920년 봄에 8회 졸업생의 졸업식을 먼저 치른 뒤에 두 교사가 참석한 가운데 7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