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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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洞八十六番地 |
영어의미역 | Eungyeong-dong 86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필남 |
[정의]
1990년에 간행된 『다시 시작하는 끝』에 수록되어 있는, 부산 출신의 소설가 조갑상의 단편 소설.
[개설]
조갑상[1949. 10. 24~]은 부산이 배출한 대표적인 소설가로, 중앙대학교 문예 창작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0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에 「혼자 웃기」로 문단에 나온 이래, 창작 및 경성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조갑상은 엄격히 짜인 구조와 건조한 문체로 소시민의 일상적 삶과 그 삶에 깃든 허무 의식 혹은 존재론적 고독을 그려 내는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소설 이외에도 조갑상의 작품에는 부산 지역과 관련한 애정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소설로 읽는 부산』과 『이야기를 걷다-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를 통해서 잘 나타난다. 이들 평론집은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담고 있는 부산이라는 지역을 소설과 함께 탐구하고 있다.
조갑상은 1997년에 부산 소설 문학상을, 2004년에 요산 문학상을, 2010년에 부산시 문화상[문학 부문]을, 2011년에 향파 문학상을, 2013년 11월에 만해 문학상을 받았다. 「은경동 86번지」는 1990년 4월 13일에 세계일보사에서 출간한 『다시 시작하는 끝』에 수록되어 있는 16편의 단편 소설 중 한 편이다.
[구성]
「은경동 86번지」는 ‘은경동 86번지’라는 가상의 공간을 작품 속에 배경으로 설정하였으며, 단 작품상에서는 특별한 구성 형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끝』에 수록되어 있는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와 연작 소설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은경동 86번지」와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를 함께 읽을 때 부산 지역인 ‘은경동’이라는 가난한 동네의 구체적인 이름을 얻을 수 있다.
[내용]
소설의 내용은 어린 시절을 부산 은경동에서 보냈던 남자가 형사가 되어 서울에서 내려오면서부터 시작한다. 남자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은경동이 몇 십 년이 지나도 전혀 변하지 않고 가난에 찌든 못사는 동네임에 놀라워하고, 몇 십 년 만에 찾은 고향을 둘러본다. 범인을 찾기 위해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는 등 부산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곧 자신이 찾는 범인이 친구의 동생임을 알게 된다. 남자가 찾으러 온 범인은 평등하지 못한 사회 구조에 대해 평소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청년인 이원재인데, 이원재는 순간적인 충동이 빚은 무모함으로 죄를 짓게 된 것이다.
[특징]
「은경동 86번지」에서는 부산의 ‘은경동’이라는 공간 문제를 주목해 볼 만하다. 은경동은 부산에 없는 상상 속의 공간이지만, 초량동이나 좌천동 쪽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은경동이 동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바다가 보이는 가파른 계단과 골목,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집, 아버지들의 거칠고 단순한 삶으로 얼룩진 곳이며, 게딱지같이 더러운 빈민가”라고 칭하고 있으므로 은경동이 부산의 산복 도로, 바다가 보이는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1980년대 후반 부산 지역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언뜻 읽기에 조갑상의 소설은 건조해 보일 수 있다. 독자를 꼬드기는 의뭉함도, 흥미진진한 기발함도, 아쉬운 결말도 없다. 단도직입적인 시작과, 사건의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서술의 진행, 그리고 사소한 풍경에 대한 긴 묘사와 어두운 삶의 모습들, 지극히 정직한 마무리가 보일 뿐이다.
아마도 이렇게 엄격히 짜인 진지함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무거운 읽기로 인해, 1980년대 벽두부터의 화려한 출발과 오랜 필력에도 불구하고 조갑상의 소설들은 독자들에게 널리 익숙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년에 걸친 조갑상의 첫 창작집 『다시 시작하는 끝』을 읽으면, 조갑상이 어둡고 혼란하였던 지난 1980년대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소설 기법을 힘겹게 획득해 온 작가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다시 시작하는 끝』에 실린 16편이 대개 사회적 모순이 야기하는 부당한 측면들에 대해 다루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인물들이 겪는 재수 없는 날들의 이야기처럼 축소 의미로 읽히도록 고안된 변죽 울리기식의 고발 수법을 들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