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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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寺下村 |
영어의미역 | Saha-ch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희원 |
[정의]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소설가 김정한이 1936년에 창작한 현대 소설.
[개설]
부산이 배출한 대표적 소설가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1908. 9. 26~1996. 11. 28]은 동래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에서 수학하였다. 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교원으로 취직해서는 조선인교원연맹을 조직하려 하였고, 유학 시절에는 사회주의 문학 운동 단체인 동지사(同志社)에 참여할 정도로 민족적·사회적 의식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의식은 작품에도 오롯이 반영되어 등단작 「사하촌」을 비롯하여 「옥심이」, 「항진기」, 「기로」, 「낙일홍」 등 여러 작품들에서 식민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저항 의식을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형상화하였다.
「사하촌」은 1936년 1월 9일부터 1월 23일까지 실렸던 『조선 일보』의 신춘문예 등단작으로, 1975년에 삼중당에서 출간한 『김정한 단편선(金廷漢短篇選)』에 수록되어 있다. 일제 시대에 부산의 범어사(梵魚寺) 아래 소작농들의 마을 성동리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고사하고 생존의 가능성마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비참한 현실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여, 강한 당대 비판의 의지를 드러낸 작품이라 하겠다.
[구성]
「사하촌」은 일제 시대 식민주의가 조선에 세운 반(半)봉건적 소작 제도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었는지를 첨예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작가가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오는 사회 비판 의식의 결과이다. 이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김정한은 작품의 구성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작품의 시점과 관련된다. 「사하촌」의 시점은 3인칭을 유지하는데, 그 시점이 한 인물에 고정되지 않는다. 즉 여러 마을 사람들의 시선으로 서술의 시점이 이동하면서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심정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술 시점의 이동은 각각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피카레스크식 플롯을 구성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특정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부각되지 않고 성동리 마을 전체 소작인 주민들의 집단적·계급적 구조가 강조되고, 사적 갈등이 아니라 사회 전체 식민지 농업 정책의 구조적 문제 지점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참여적·능동적 가치관과 연결되는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할 소설 구성의 특징은 인물과 관련된다. 「사하촌」에서 작가는 농민에 대해 대단히 높은 가치 평가를 하고 있다. 「사하촌」에 등장하는 농민은 이광수의 『흙』이나 심훈의 『상록수』에서 형상화되는 무지한 계몽 대상도 아니고, 김유정의 작품에서 형상화되는 해학적이고 어리석은 존재도 아니다. 여기에서의 농민들은 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가장 정확히 인식하고 비판하며, 여차하면 개혁적 실천을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다.
이는 곧 작가가 농민을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참여 의지를 가진 자들로서 현실 변혁의 주인공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작가 의식은 생동감 있는 현실 형상화 속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덧붙여 결말에서 암시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소작 쟁의나 방화와 같은 구체적인 행동은 위에서 제시한 구성적 특징을 통해 그 개연성이 확보되고 있으며,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기도 하다.
[내용]
8월 태양 아래 성동리에는 비가 안 내린 지 오래다. 소작농들의 탄원에 못 이겨 저수지 물이 조금 풀렸지만, 얼마 되지 않는 물을 자기 논에 대기 위해 사람들은 더 난리다. 보와 가까운 곳에 있는 땅을 농사짓는 사람들은 자기 논에 물을 가두려 하고, 보와 거리가 먼 곳에 있는 논 사람들은 가두어 둔 물이 자기 논 쪽으로 오도록 하기 위해 논둑을 트기에 바쁘다. 하지만 물의 양 자체가 얼마 안 되어 다들 허탈하다. 마을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에 보광사에 기우제를 크게 지내 줄 것을 호소하여 제를 올리지만 별 효험이 없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수업료를 못 내 학교에서 쫓겨나고, 추석도 추석다운 풍성함이 없이 싱겁게 끝난다. 이에 마을 여자들은 버섯을 따기에 여념이 없고, 남자들은 삯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절 근처 땅에서 밤을 줍던 아이들이 산지기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상한이라는 아이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기도 하지만, 이 일에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추수할 것도 없는 마당에 어김없이 땅 주인인 보광사에서는 간평을 나온다. 대부분 소작인인 마을 사람들은 설마 금년처럼 흉작인 상황에 간평이 과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간평원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세를 매기고 가 버린다. 한마디라도 잘못 말해 땅 주인에게 밉보이면 그나마 소작마저 떼일 수가 있기에 다들 입을 다물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맥이 풀린다. 이에 젊은 축들을 중심으로 야학당에 사람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 그리하여 어느 하루 사람들이 모여 빈 짚단과 콩대, 메밀대를 잡고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하기 위해 보광사로 향한다.
[특징]
「사하촌」의 특징은 첫째, 작품이 제기하고 있는 사회의 문제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는 1911년부터 1918년에 걸쳐 조선에서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고 조선의 쌀을 수탈하기 쉬운 제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자작농은 소작농으로, 소작농들은 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생존마저 불투명한 현실을 겪게 된다. 「사하촌」에서 김정한이 비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당대의 농촌 현실이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일제 세력과 결탁한 종교계와 그들의 허위의식이다. 김정한은 ‘양산경찰서 습격 사건’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남해공립학교 교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김정한은 농민의 삶을 직접 보면서 관심을 가졌고 이후에 농민 문학에 전념하게 되는데, 당시 절에서 소작인에게 휘두르는 횡포를 목도한 바 있다고 한다. 「사하촌」에 형상화되어 있는 절의 횡포도 이 시기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갈등을 만들어 가는 방식에서 자연 현상이 지속적으로 개입되면서 거두는 효과이다. 압도적인 자연의 재해로 「사하촌」에 등장하는 것은 가뭄이다. 이에 대해 인간이 손쓸 수 있는 해결의 방향은 실상 없다. 다만 그것을 겪으며 견딜 뿐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조리한 인간 사회의 구조에서는 누군가에게 가뭄의 책임을 부과하는데, 그 누군가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최하층민이다. 「사하촌」은 이러한 갈등의 층위를 복합적으로 구조화하여 사회 비판 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정한의 「사하촌」이 갖는 무엇보다 큰 의의는, 일제 시대 농촌 현실에 밀착된 인물과 사건을 형상화하여 어느 작가보다도 생동감 있게 그려 내었다는 점이다. 세밀하고 과감하게 소작농과 마름, 지주인 중들을 정확하고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묘사하고, 그들 사이에 있을 법한 사건을 밀도 있게 보여 주고 있다.
더불어 작가가 공간적 배경이 된 부산에서 개혁적 농민 주체를 만들어 내어, 그들의 삶을 통해 당대 역사적 실상을 폭로하였다는 점도 큰 의미를 가진다. 즉 단순히 현실을 제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농민의 저항 정신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향토애와 저항적 민족의식, 능동적 현실 참여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