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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168
한자 金廷漢文學碑
영어의미역 Literary Memorial for Gim Jeongha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9[청룡동 산2-5]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손남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문학비
양식 비|문학비
관련인물 비|문학비
재질 비|문학비
크기 비|문학비
소유자 비|문학비
관리자 비|문학비
건립 시기/일시 1994년 4월연표보기 -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908년 9월 26일연표보기 - 김정한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96년 11월 28일연표보기 - 김정한 사망
현 소재지 범어사 문화의 거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9[청룡동]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문화의 거리에 있는 소설가 김정한의 문학비.

[개설]

김정한 문학비(金廷漢文學碑)는 요산 김정한의 문학 세계를 기념하기 위하여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세웠다. 좌대에는

“요산 김정한 선생은 1908년 음력 9월 26일 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663의 2번지에서 태어나셨다. 향리에서 한학을 배우다 범어사 부설 사립 명정학교를 거쳐 동래고보를 나와 일본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고등학교 문과를 다셨다. 남해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가졌던 농민 문학에 대한 선생의 관심은 「사하촌」 이후 민족 문학으로 확장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항일 의지를 광복 후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 의지로 승화됐으니 요산 선생은 글과 행동이 다르지 아니하셨다.

언론인으로 또 교수를 겸하면서 선생은 작가로서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으니 「모래톱 이야기」, 「수라도」, 「사밧재」 등 대표작들은 한결같이 우리 고장을 이야기하면서 민족 문학의 우뚝한 봉우리로 자리하고 있다. 선생이 태어나신 이곳에 작은 돌 하나를 세움은 인간 사랑과 나라 사랑을 지나가는 길손 모두가 한번쯤 되새기게 하기 위해서이다. 1994년 4월 유정규 짓고 조영조 쓰다 금정구청장 세움”

이라고 되어 있다. 비신에 새겨진 글귀는 김정한의 소설 「인간 단지」의 한 부분이다.

[건립 경위]

부산광역시 금정구청의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으로 범어사를 따라 내려오는 길 오른편에 차례대로 김정한 문학비, 이주홍 문학비, 고두동 문학비, 김대륜 그림비, 김종식 그림비를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매년 1기씩 세웠다. 김정한 문학비는 1994년 4월 조성되었다.

[위치]

김정한 문학비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문화의 거리의 하행로에 있다.

[형태]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오석(烏石)의 좌대가 있고, 그 위에 자연석으로 된 비신(碑身)이 얹어 있다. 글이 새겨진 부분은 전체적으로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으며, 글자는 가로쓰기로 새겨져 있다. 높이 159㎝, 너비 210㎝, 두께 50㎝이다.

[금석문]

“어딜 가도 산이 있고 그리고 인간이 살았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으례 나뭇가리가 있고 그 곁에는 코흘리게들이 놀곤 하였다. 조국이란 것이 점점 가슴에 느껴졌다.”

[현황]

김정한 문학비범어사를 찾는 시민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청에서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정한은 부산 소설사를 개척한, ‘장래 할 부산 문학에 대한 정초의 구실’[『부산 문학사 50년사』, 157쪽]이 되는 작가이다. 김정한의 작품은 철저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부조리한 권력과 폭압에 저항하는 행동주의 문학의 전형을 보여 준다.

1960년대 이후 김정한의 작품에서 낙동강 주변 사람들의 고난과 저항의 서사가 두드러지는 것도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금정구 남산동 요산 문학관 입구에 씌어 있는 ‘사람답게 살아라’는 표어는 김정한의 문학적 전 생애를 압축한 말이라 할 수 있다. 부산 어린이 대공원에도 1978년 10월 27일 김정한의 소설 「산거족」의 한 구절을 새긴 문학비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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