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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3956
한자 地域主義
영어의미역 Regionalism
이칭/별칭 지역주의 투표성향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경태

[정의]

부산 지역에서 선거 시에 나타나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편중 현상.

[개설]

정치학에서 사용되는 지역주의(regionalism)라는 개념은 국가[전체]와 국가 내 특정 지역들 간에 발생하는 경쟁과 대립에 대한 설명에서 문화적·인종적·정치적 또는 경제적 중앙 집중화 경향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화의 이념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되는 지역주의는 중앙과 지역으로 한정되지 않고 특정 지역 간에 발생하는 경쟁과 대립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지역주의는 선거 과정에서 가장 잘 표출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지역주의에 입각하여 투표하는 ‘지역주의 투표 성향[regional voting pattern]’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우리나라의 선거 결과는 종종 지역주의 투표 성향에 의해 지역 분할 구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 선거에서 지역주의 투표 성향의 시작]

학자와 연구자 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한국 정치에서의 지역주의와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1987년의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이어 집권한 전두환(全斗煥) 정권이 한국 권위주의의 역사를 연장시켰고, 40여 년에 걸친 장기적인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분출된 1987년의 ‘6월 민주 항쟁’은 집권 세력의 헌법 개정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국민의 노력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였기에, 1987년 12월에 예정된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선거보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었고, 가장 큰 관심은 이미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로 정해진 노태우(盧泰愚)에 대항할 야당의 대통령후보 결정에 모아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야당은 수차례에 걸쳐 후보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주요 당사자 간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단일 후보 결정에 실패하였다. 결국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노태우,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김종필(金鍾泌)의 4파전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각 후보들은 절대적 우위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 자신의 연고 지역에서 최대한 많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대구·경북에서 노태우, 부산·경남에서 김영삼, 광주·전라에서 김대중, 충청에서 김종필이 각기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하게 되면서 한국 정치에 심각한 지역적 분할 구도를 가져오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 선거에서의 지역주의 투표 성향의 기원은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찾을 수 있다.

[부산 지역의 지역주의 투표 성향]

1987년의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까지 부산은 대표적인 야당 성향의 도시였다. 1978년 12월 12일 치러진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5개 선거구 모두 야당인 신민당이 당선되었고, 전두환의 쿠데타 이후 정치 공세에 의해 1981년 3월 25일 치러진 제11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4개 선거구를 여당인 민주정의당에 내주었다.

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던 1985년 2월 12일 치러진 제1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신한민주당 3석[중구·동구·영도구, 서구·사하구, 남구·해운대구], 한국국민당 1석[부산진구 갑·을], 민주한국당 1석[동래구 갑·을], 민주정의당 1석[북구]으로 다시 야당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나타내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후인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도 야당인 통일민주당 후보가 14개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압승[여당은 금정구 1개 선거구에서 당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산의 야당 성향은 1990년 1월 23일 민주자유당이 창당된 이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부산·경남의 맹주라고도 불리었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 삼당 합당의 정치적 사건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후 부산에서는 김영삼에 대한 지지가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등에 대한 지지로 이어져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맹렬히 발현되었고, 1991년의 지방 의회 선거와 1992년의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51.8%], 제14대 대통령 선거[73.3%]에서 부산 지역의 유권자들은 김영삼의 민주자유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였다.

1992년 12월 11일,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20여 일 앞두고 부산의 어느 음식점에 부산 유지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조장한 ‘초원 복국집 사건’과 그 파장은 부산 지역의 지역주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부산이 정치적 고향이었던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문민정부’ 시기에도 민주자유당의 후신인 신한국당에 대한 지지는 계속되었다. 신한국당은 1995년의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압승했고, 1996년의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21개 전 지역구를 석권[55.8%지지]하였다.

대통령 임기 만료로 김영삼이 정계에서 은퇴하자 부산 지역의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또 다시 변화하게 되었다. 지방 선거에서의 우위와 압승은 차치하고서라도, 1997년의 제15대 대통령 선거[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53.3% 지지], 2000년의 제16대 국회 의원 선거[한나라당 60.3% 지지], 2002년의 제16대 대통령 선거[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66.8% 지지], 2004년의 제17대 국회 의원 선거[한나라당 52.5% 지지], 2007년의 제17대 대통령 선거[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 57.9% 지지], 2008년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한나라당 47.3% 지지]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산 지역의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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