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5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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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黨合黨 |
영어의미역 | Merge of the Three Parties |
이칭/별칭 | 3당 합당,3당 야합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안철현 |
[정의]
1990년 여야 합당을 통하여 부산 지역 정치 지형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사건.
[개설]
삼당 합당(三黨合黨)은 여당과 야당이 합당한 대한민국 정치사에 있었던 최초의 사건으로, 1990년 1월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이 야당 중의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여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한 사건이다.
[역사적 배경: 1988년~1989년의 정치 상황]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 1981년 1월 15일 창당]은 원내 제1당이 되었으나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여, 통일민주당[약칭 민주당, 1987년 5월 1일 창당], 평화민주당[약칭 평민당, 1987년 11월 12일 창당], 신민주공화당[약칭 공화당, 1987년 10월 30일 창당] 등, 야당들의 의석수가 여당의 의석수보다 많은 이른바 ‘여소 야대(與小野大)’ 정국이 형성되었다. 13대 ‘여소 야대’ 국회는 즉시 5공화국 비리에 대한 규명과 5·18 민주화 운동[당시는 광주 항쟁이라 불림]에 대한 진상 조사 등에 착수하였다.
[경과: 삼당 합당의 결행, 민주자유당의 창당]
1989년까지의 ‘여소 야대’에 의한 정국 불안정과 차기 대선 후보의 부재 등에 대한 우려를 느낀 노태우(盧泰愚) 정부와 민주정의당은, 통일민주당의 김영삼(金泳三),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金鐘泌)을 설득하여 1990년 1월 22일 민주자유당[약칭 민자당]이라는 신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민주자유당의 창당을 민주정의당과 김영삼이 이끈 통일민주당, 김종필이 이끈 신민주공화당의 합당에 의한 것으로 보아, 이른바 ‘삼당 합당’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삼당 합당에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삼당 야합’이라고도 한다.
삼당 합당에 의해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단숨에 총의석수 299석 중 218석을 차지하는 거대 여당의 출현을 몰고 왔고, 차기 대권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원한 김영삼과 내각제 개헌을 기대한 김종필 등, 야당 지도자가 개인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여당의 공동 대표로 탈바꿈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결과: 삼당 합당 이후의 정치 상황과 평가]
삼당 합당을 통해 ‘여대 야소’ 국회를 회복한 노태우 정부와 민주자유당은 1991년의 지방 의회 선거와 1992년의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였고, 김영삼은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삼당 합당은 김대중(金大中)[1924~2009]이 이끈 평화민주당을 고립시켜 ‘호남 대 비호남’의 구도를 낳게 되어 ‘지역주의 정치의 심화’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개발 독재 체제인 5공화국의 주체였던 민주정의당과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이었던 통일민주당이 합당함으로써, 이전까지 한국 정치를 규정했던 ‘민주와 반민주 구도’를 무의미하게 만든 정치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삼당 합당을 ‘정권욕에 의한 야합’으로 규정하기도 하였고, 비판과 함께 합당을 거부하고 통일민주당에 잔류했던 이기택(李基澤)·김정길(金正吉)·노무현(盧武鉉)[1946~2009] 등 이른바 ‘꼬마민주당’의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재조명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삼당 합당과 부산의 변화]
삼당 합당으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맞은 지역은 바로 부산이었다. 부산은 과거 개발 독재 체제 하의 각종 선거를 통해 ‘전통적인 야당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고, 1979년 10월의 부마 항쟁[부산과 마산에서 벌어진 유신 독재 반대 시위]과 1987년 6월 항쟁에 앞장서 ‘민주화의 선봉’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부산 지역을 정치적 고향으로 했던 ‘민주화 지도자’ 김영삼이 있었다. 즉, 부산의 야권 민주 세력은 김영삼을 중심으로 군부 독재 세력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삼당 합당으로 부산의 민주 세력 다수가 군부 독재 세력과 손을 잡았고, 이로 인해 부산 지역의 정체성은 모호해졌다. 그러한 변화는 민주자유당과 그 후신인 신한국당[1995년 창당], 한나라당[1997년 창당] 등으로 이어지면서, 민주화 이후 전개된 지역주의 정치 구조와 결합하여 부산 지역은 국회 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 선거에서 민주자유당과 그 후신들의 ‘텃밭’이라 불리는 ‘보수적 여당 도시’로 바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