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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30
한자 萊州錄
영어의미역 Record of Naeju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시|시문|7언 율시
작가 이정신(李正臣)[1660~1727]
저자 생년 시기/일시 1660년연표보기 - 이정신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27년연표보기 - 이정신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711년연표보기 - 창작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11년 - 신묘 사행
배경 지역 정원루 - 부산광역시

[정의]

1711년에 동래 부사 이정신이 부산에 머무르면서 지은 시문.

[개설]

‘내주록(萊州錄)’이라는 말은 동래 부사 재임 시의 기록이라는 의미이다. 「내주록」이정신(李正臣)[1660~1727]이 동래 부사 재임 시에 지은 시문으로, 16제 26수의 시와 3편의 지도에 대한 서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16제 26수의 시가 거의 모두 차운하거나 증답한 시들이다. 이들 시 가운데 이정제(李廷濟)의 제영시에 차운한 「차이학사정제정원루운(次李學士廷濟靖遠樓韻)」은 8수에 모두 각각 「영도조일(影島朝日)」, 「황령석봉(荒嶺夕烽)」, 「대리촌연(大里村烟)」, 「주부죽취(珠阜竹翠)」, 「부해노도(釜海怒濤)」, 「금수열첩(金峀列堞)」, 「내산유묘(萊山遺廟)」, 「범천고사(梵川古寺)」 등의 부제(副題)를 달고 있어 「내주록」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내주록」이정신이 내주, 즉 동래에 부사로 있으면서 지은 작품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정신의 동래 부사 재임 시인 1711년(숙종 37)에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통신 정사(通信正使) 조태억과 통신 부사(通信副使) 임수간, 종사관(從事官) 이방언 등에게 주는 시가 2, 3편씩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영남 지도(嶺南地圖)」 등 3종의 지도에 대한 서문도 있다.

[구성]

「내주록」은 기존의 제영시에 차운한 시와, 1711년 신묘 사행의 정사와 부사, 종사관 등에게 주는 시, 상주 목사 정경숙 등에게 주는 시 등 16제 26수와 3편의 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시의 경우, 5언 율시와 잡체시가 1수씩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7언 절구와 7언 율시이다. 그런데 이정신이 이정제(李廷濟)의 「정원루(靖遠樓)」 제영에 차운한 「차이학사정제정원루운」은 시의 제명(題名)과는 달리 「정원루」에 대한 제영이 아니라 8수로 된 7언 절구의 연작 한시이다. 「차이학사정제정원루운」은 「동래부지 제영 잡저(東萊府誌題詠雜著)」에 「봉래 팔영시(蓬萊八詠詩)」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죽지사류의 서경시이다.

「내주록」이정신의 문집인 『역옹 유고(櫟翁遺稿)』 권1의 일부인데, 권1에는 「내주록」 외에도 이정신이 안동 부사로 있을 때에 지은 시들을 모은 「화산록(花山錄)」[화산은 안동의 옛 이름]과 강원 감사로 있으면서 지은 시들을 모은 「동관록(東館錄)」, 그리고 연행사의 부사(副使)로 북경에 다녀오면서 지은 시들을 모은 「연행록(燕行錄)」 등이 실려 있다.

「내주록」에 「영남 지도」와 「영남 해방지도(嶺南海防之圖)」, 「내산 지도(萊山地圖)」 등 3편의 지도에 대한 서문이 실려 있는 것은, 이정신이 동래 부사로 있으면서 이들 지도를 모사(模寫)시키거나 화공을 시켜 그리게 하고는 이들 지도책에 대한 서문을 썼기 때문이다.

[내용]

「내주록」이정신이 접위관을 지낸 바 있는 이세근(李世瑾)과 이정제(李廷濟)의 「정원루」에 차운한 시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정제가 「정원루」에 제(題)한 시는 「동래부지 제영 잡저」에 「봉래 팔영시」라고 되어 있고, 이들 8수는 각각 「영도조일」, 「황령석봉」, 「대리촌연」, 「주부죽취」, 「부해노도」, 「금수열첩」, 「내산유묘」, 「범천고사」 등의 부제가 달려 있다.

이는 이정신이 이정제의 「봉래 팔영시」에 차운한 「차이학사정제정원루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를 통해 이정신이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을 당시 이정제의 「봉래 팔영시」가 정원루에 걸려 있었고, 이정신이 이들 시에 차운한 시가 「차이학사정제정원루운」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중 1수를 예로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차이학사정제정원루운」-「영황령석봉(咏荒嶺夕烽)」

압해고봉호시황(壓海孤峯號是荒)

낭연일점조창창(狼烟一點照蒼蒼)

종남매보평안신(終南每報平安信)

첨각현도옥촉광(添却玄都玉燭光)

「내주록」에는 이세근의 「정원루」 시에 차운한 시와 이정제의 「봉래 팔영시」 외에 안찰사 홍만조(洪萬朝)가 객사에 제한 시에 이정신이 차운한 시, 충신당(忠信堂)의 제영시에 차운한 시 등이 있다. 그리고 접위사로 동래에 온 박재중과 함께 부산관(釜山館)과 영가대(永嘉臺)를 둘러보고 박재중에게 준 시도 있다. 부산의 승경과 누정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영도(影島)황령산(荒嶺山), 충렬사(忠烈祠), 범어사(梵魚寺), 정원루, 동래 객사(東萊客舍), 충신당(忠信堂), 부산관, 영가대 등을 두루 읊고 있는 것이다.

「내주록」의 16제 26수에는 이들 제영시 외에 1711년 신묘 사행의 정사(正使) 조태억 등에게 주는 시가 6수, 이정신이 자신의 지인에게 주는 시가 5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내주록」에는 부산 지역의 제영 시문에서는 보기 드물게 「영남 지도」와 「영남 해방지도」, 「내산 지도」 등 3종의 지도에 대한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

[특징]

「내주록」의 16제 26수 가운데 기존의 시에 차운한 4제 11수가 모두 부산 지역의 승경에 대한 제영시이다. 그리고 서발문들을 묶어 별도로 편제하는 일반적인 문집 체제와 달리, 「영남 지도」와 「영남 해방지도」, 「내산 지도」 등 3종의 지도에 대한 서문이 동래 지역 관련 시들과 함께 묶여서 「내주록」에 포함되어 있다.

「영도조일」, 「황령석봉」, 「대리촌연」, 「주부죽취」, 「부해노도」, 「금수열첩」, 「내산유묘」, 「범천고사」 등의 부제가 달려 있는 죽지사류의 7언 절구 8수를 ‘봉래 팔영’ 또는 ‘내주 팔영’이라 하지 않고 이정제의 「정원루」 시에 차운하였다는 식으로 「차이학사정제정원루운」이라 한 점도 「내주록」의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내주록」의 첫 부분에 실려 있는 「차이학사정제정원루운」은 정원루에 대한 제영이 아니라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명승 여덟 곳을 노래한 죽지사 계통의 서경시이다. 이정신이 차운한 이정제의 「정원루」 시는 「동래부지 제영 잡저」에 「봉래 팔영시」라고 되어 있지만, 「봉래 팔영시」라는 제명은 「동래부지 제영 잡저」 이외에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게 볼 때, 시제(詩題)상으로는 이정제의 시에 차운한 것처럼 되었지만, 「내주록」에 포함되어 있는 이정신의 「차이학사정제정원루운」은 ‘부산 팔경’을 동일한 시제로 읊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내주록」에 실려 있는 「영남 지도서(嶺南地圖序)」와 「영남 해방지도서(嶺南海防之圖序)」, 「내산 지도서(萊山地圖序)」 등 3편의 서문은 이정신이 동래 부사로 있으면서 모사시키거나 화공을 시켜 그리게 한 3종의 지도에 대한 것으로, 이들 3종의 지도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내산 지도」는 이정신이 기존의 지도를 참고하여 고증과 교정 과정을 거쳐 화공을 시켜 그리게 한 것이므로, 부산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고지도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향토 지리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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