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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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正臣 |
영어음역 | Yi Jeongsin |
이칭/별칭 | 방언(邦彦),송벽당(松蘗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지현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방언(邦彦), 호는 송벽당(松蘗堂). 고조 할아버지는 조선 중엽 한문 사대가의 한 사람인 이정구(李廷龜)[1564~1635]이고, 아버지는 군수 이봉조(李鳳朝)[1644~1701]이다.
[활동 사항]
이정신(李正臣)[1660~1727]은 음직으로 강릉 참봉에 있으면서 1699년(숙종 25)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 정언, 홍문관 수찬과 응교, 사헌부 장령, 사간원 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711년(숙종 37) 동래 부사에 임명되어 동래부 동헌을 ‘충신당(忠信堂)’으로 이름 짓고 현판을 걸어 지금까지 전한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이정신은 1711년 4월 동래 부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11월 병으로 그만두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의하면, 1711년 통신사행 때 일본 측이 국서(國書)에 대군(大君) 대신 국왕이라는 호칭을 써 달라고 요청해 왔으나 이정신은 이를 거절하고, 후에 그 사실을 조정에 몰래 아뢴 일이 있다. 1712년 쓰시마[對馬] 도주와 범죄에 대한 약조를 체결하였다. 1713년(숙종 39)에는 판결사로서 금정산성을 정비할 것을 상소하여 윤허를 받았으며 1716년(숙종 42) 병조 참의를 지냈다.
1720년 경종(景宗) 즉위 직후 이정신은 같은 소론인 조태구(趙泰耉) 등과 함께 신임사화를 일으켜 정적인 노론 세력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1721년(경종 1) 호조 참판이 되었고,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중국 연경에 다녀온 후 병조 참판, 경기도 관찰사, 함경도 관찰사를 지냈다. 1724년(경종 4) 영조(英祖) 즉위 후 신임사화의 주동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파직, 경상북도 봉화로 낙향하여 여생을 마쳤다.
[묘소]
이정신의 묘는 경기도 화성시 장전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