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03
한자 新聞
영어의미역 Newspapers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진

[정의]

부산광역시 지역 주민에게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정기 간행물.

[개설]

2010년 2월 1일 시행된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신문(新聞)을 “정치·경제·사회·문화·산업·과학·종교·교육·체육 등 전체 분야 또는 특정 분야에 관한 보도·논평·여론 및 정보 등을 전파하기 위하여 같은 명칭으로 월 2회 이상 발행하는 간행물”로 정의하고 있다. 발행 주기에 따라 매일 발행하는 간행물을 일간 신문이라 하고, 매주 1회[주 2회 또는 월 2회 이상 발행 포함] 발행하는 간행물을 주간 신문이라 하며, 내용에 따라 일반지와 구별하여 전문지·특수지·기관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개화기]

부산은 한국 역사상 근대 신문이 가장 먼저 출현한 지역으로,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부산항을 개항하면서 이주 일본인들에 의해 1881년 12월 『조선 신보』가 창간되었다. 『조선 신보』는 부산 지역에 진출한 일본 상인들의 단체인 일본인부산상법회의소에서 상업적 이익을 보호 확대하기 위해 만든 신문이었다.

이후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부정기 신문인 『부산 상황』[『조선 시보』의 전신, 1892년 7월 11일 인가]이 경제 정보를 보도할 목적으로 창간되었다. 청일 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고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 수가 증가하면서 일본인이 발행하는 신문 수가 늘어났으며, 부산 지역에는 『부산 일보』[1907년 10월 1일 인가]와 같은 일본어 신문이 발행되었다.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당시 기관지를 제외한 한국인 신문은 일제에 의해 폐간되었으나, 1919년 3·1 운동 이후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1920년 「신문지법」에 의해 『조선 일보』·『동아 일보』·『시사 신문』 등 3개 일간지[민간지] 창간이 허용되었다. 그러면서 민간지들이 부산 지역에 지국을 설치하여 신문을 보급하였다. 『동아 일보』는 1920년 4월부터 부산 지국을 운영한 뒤 지국 산하에 분국을 확대해 나갔고, 『조선 일보』는 1920년 6월 부산 지국을 설치 운영하였다. 설립 시기가 명확하지 않으나 『시대 일보』, 『중외 일보』, 『조선 중앙 일보』의 부산 지국이 있었다.

일본인 언론으로 1939년에 3개의 신문이 있었다. 『조선 시보』『부산 일보』는 국권 강탈 이전부터 발행되어 오던 신문으로 종합 일간지였으며, 『조선 수산 신문』[1925년 12월 3일 인가]은 수산업계 전문지이며 순간(旬刊)으로 발행되었다.

[미 군정기]

해방 직후 새로운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의해 정치적, 이념적 지향이 다른 정당과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다양한 신문[정론지]이 창간되었다. 부산 지역 언론에도 다양한 이념 성향을 표방하는 신문이 있었다. 좌익과 우익이 대립하고 1945년 말 신탁 통치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었다.

1945년 9월부터 우리말 신문인 『중보』[9월 20일부터 『민주 중보』로 제호 변경, 『민주 신보』의 전신]가 발행되었다. 뒤이어 『부산 정보』『조선 일일 신문』, 1945년 10월 『항도 일보』, 『인민 해방보』가 등장하였으며, 1945년 11월 『신한 민보』, 『부산 매일 신문』, 1945년 12월 『대중 신문』 등이 창간되었다. 이어 1946년에는 『자유 민보』, 『부산 신문』이 창간되었다.

미 군정청은 부산 지역 신문 중 『조선 일일 신문』, 『부산 정보』를 중도 성향으로 파악하고 『인민 해방보』, 『자유 민보』, 『민주 중보』, 『부산 매일 신문』, 『부산 신문』은 극좌로 파악하였다. 이는 정책 수행이라는 목표에 따른 것으로 미 군정의 평가는 좌로 편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간 신문 또한 속출하여 1946년 8월까지 『수산 신문』, 『애국 문예 신문』, 『부산 인민보』, 『동아 산업 시보』, 『경남 상공 신문』, 『자유 연합』 등이 창간되었다. 이러한 신문 중 기본적인 인쇄 시설이나 운영금 등의 준비가 부족하여 자금난과 운영난을 이겨 내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아 폐간한 신문이 적지 않았다.

1946년 9월 10일 일제 강점기 당시 『부산 일보』의 사옥과 시설을 불하받아 『부산 일보』가 창간되었다. 『국제 신문』의 전신인 『산업 신문』은 1947년 9월 1일 창간되었다.

미 군정의 언론 정책은 좌익 언론을 탄압하고 우익 언론을 비호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1946년 4월 부산 지역의 좌익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검거가 있었으며 『대중 신문』, 『인민 해방보』, 『신한 일보』 등의 신문사를 습격하여 서류와 장부를 압수하였다. 1947년 11월 『민주 중보』, 『대중 신문』, 『산업 신문』에 대한 수색을 하고 사원 20명을 검거하였다.

[6·25 전쟁기]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8월 18일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면서 부산 지역 지방지들이 중앙지의 성격을 갖게 되었고, 『민주 신보』·『국제 신보』·『부산 일보』·『자유 민보』 등이 전시 언론의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부산 지역 지방지들은 중앙 언론인들을 흡수하여 지면의 쇄신을 꾀하고 발행 부수가 증가함에 따라 경영면에서도 비약하게 되었다. 새로운 지방 신문들도 등장하여 『상공 신문』, 『해양 시보』, 『한일 신문』 등이 발행되었다.

[휴전 이후]

휴전 이후 서울 언론의 중앙 복귀로 중앙지로서의 성격이 퇴색되고 지면이나 발행 부수에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부산 지역에 남은 신문은 『민주 신보』, 『부산 일보』, 『국제 신보』, 『자유 민보』 등 4개의 신문이었다. 한편으로 1953년 11월 중구 영주동, 중앙동, 동광동, 대청동 일대를 휩쓴 부산 역전 대화재가 발생하여 『부산 일보』, 『민주 신보』, 『자유 민보』의 사옥과 시설이 소실되는 등 부산 지역 신문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1958년을 전후하여 『국제 신보』와 『부산 일보』는 참신하고 예리한 논조를 유지하며 시설 면이나 지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에 들어선 반면, 『자유 민보』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960년 6월 창간 14년 만에 자진 폐간하였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부산 일보』는 1962년 5·16 장학회로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정권에 대한 비판과 견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민주 신보』는 군사 정부가 언론 정책으로 제시한 시설 기준 등에 이르지 못해 1962년 8월 자진 폐간하였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계엄 검열 상황에 있던 한국 언론계는 신문협회와 방송협회의 언론 구조 개편에 대한 자율 결의에 따라 1980년 12월 1일을 기해 『국제 신문』[『국제 신보』의 후신]이 『부산 일보』에 흡수 통합되었다. 이 같은 언론 통폐합으로 『부산 일보』는 부산 지역 신문 시장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언론에 대한 정치적 규제가 완화되면서 1989년 1월 『항도 일보』가 창간되었고, 1989년 2월 『국제 신문』이 복간되었다. 1998년 11월 『항도 일보』의 후신인 『부산 매일』이 휴간된 이후로 『부산 일보』『국제 신문』의 양대 신문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현황]

2009년 기준으로 부산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특수 주간 신문 17종, 인터넷 신문 12종, 일간지 2종이 있으며 일간지는 『부산 일보』『국제 신문』 두 종만 발행된다.

특수 주간 신문으로는 『부산 복지 & 장애인 신문』, 『한국 사회 복지 신문』, 『교회 복음 신문』, 『국제 기독 신문』, 『e 뉴스 한국』, 『건축사 신문』, 『인포 케어 경매 신문』, 『제일 부동산 경제 신문』, 『주간 인물』, 『녹색 환경 신문』, 『한국 요양 복지 신문』, 『매일 환경 신문』, 『낙동강 환경 신문』, 『크리스챤 타임』, 『부산 트래블 저널』, 『주택 경제 신문』, 『주간 한국 기독 신문』이 있다.

인터넷 신문으로는 『한국 디지털 뉴스』, 『웰피아 뉴스』, 『금정 신문』, 『한톨 식품 안전 신문』, 『부산 경제 일보 닷컴』, 『굿데이』, 『매일 환경 뉴스』, 『동래 평생 문화 신문』, 『로컬 투데이』, 『부산 북부 평생 문화 신문』, 『의보 신문』, 『투데이 코리아 부산』이 있다.

부산광역시의 일간지 소유 구조는 『부산 일보』의 경우 정수장학회에서 20만 주[지분율 100%]를 소유하고 있으며, 『국제 신문』은 종교 재단인 능인선원 대표 이정섭 80만 5000주[72.9%], 국제장학재단 12만 5000주[11.3%], 국제장학문화재단 12만 5000주[11.3%], 법연원 5만 주[4.5%]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일간지별 종사자는 2007년 기준 『부산 일보』 337명, 『국제 신문』 238명이며, 2005년 기준 지역지 총 매출액 중 『부산 일보』『국제 신문』의 비율은 각각 22.7%, 8.8%로 총 31.5%를 차지한다. 『부산 일보』『국제 신문』 모두 지역신문발전위원회[위원장 최창섭]가 선정하는 지역 신문 발전 기금 우선 지원 대상으로 2005년부터 8년 연속 선정되었다.

[의의]

부산은 국내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일찍 매스미디어의 시대로 들어선 지역이며, 언론 발전에 선도적인 구실을 하였다. 하지만 해방 이후 중앙 집중화 현상과 정부의 언론 정책에 의해 부산 지역 언론이 위축되었다. 최근 언론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부산광역시의 신문들도 정보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문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부산 지역의 잠재력을 활용한다면 신문과 지역 사회 제반 부문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