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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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每日新聞 |
영어의미역 | The Busan Maeil Sinmun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3가 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진 |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3가에서 발행되었던 일간 신문.
[창간 경위]
일제 강점기 『대구 일일 신문』 기자였던 이택국(李宅國)이 경상남도 출생의 기업인인 윤두해(尹斗海)의 재정 지원을 얻어 『경성 일보』 기자 출신의 배두훈(裵斗勳), 손연순(孫連淳)과 함께 중립과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중립지를 표방하며 1945년 11월 28일 『부산 매일 신문(釜山每日新聞)』을 창간하였다.
[형태]
타블로이드판[25.4×37.4㎝] 크기에 2면으로 발행되었다.
[구성/내용]
1면은 외신과 서울 뉴스, 2면은 지방 면으로 부산 뉴스를 실어 보도 기사 중심의 편집을 하였다.
[변천과 현황]
창간 당시 사옥은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 2가에 있었으나 2개월 뒤 중구 대청동 3가 8번지의 전 『대판 매일 신문』 부산 총국 건물을 인수해 이전하였다. 1948년 초에 해운업자인 정덕보(鄭悳寶)가 운영권을 인수하고 일본전보통신 기자였던 이덕준(李德準)이 편집국장을 맡으면서 제호를 『매일 신문(每日新聞)』으로 변경하였다.
중립지로서 상당한 독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0일 자진 폐간되었다. 『매일 신문』의 시설은 주간 잡지 『이북 통신』의 발행인이었던 이북(李北)에게 인수되어 1952년 6월 5일 『중앙 일보(中央日報)』가 창간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해방 이후 미군정기 시기에 부산에서 창간된 신문으로 중립지로서 상당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전시라는 비상 체제 하에서 만성적인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 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