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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신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359
한자 産業新聞
영어의미역 Industrial News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76-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보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신문
관련인물 김지태|박순조|김형두|이용희|윤임술|박영조|김을룡|한영근
창간인 김형두
발행인 김형두
판형 타블로이드판[39.3×54.5㎝]|배대판
창간 시기/일시 1947년 9월 1일연표보기 - 창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7년 12월 - 주식회사 체제로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8월 19일연표보기 - 『산업 신문』에서 『국제 신보』로 제호 변경
소장처 국제신문사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76-2지도보기
제작|간행처 『산업 신문』 간행처 - 부산 동광동 21가 216
제작|간행처 『산업 신문』 간행처 - 부산 동광동 3가 17지도보기

[정의]

해방 후 부산에서 창간하여 발행한 경제지로 현 『국제 신문』의 전신.

[창간 경위]

『산업 신문(産業新聞)』은 해방 2년 뒤인 1947년 9월 1일 김형두(金炯斗)의 주도로 창간되었다. 김형두는 1947년 5월 주간지 『수산 신문(水産新聞)』을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동아 산업 시보(東亞産業時報)』를 발행하고 있던 이용희(李容熙)와 합작하여 두 주간지를 통합, 일간 『산업 신문』을 창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경상남도 공보과장이 『수산 신문』과, 『동아 산업 시보』, 『바다 신문』까지 통합하여 경제 전문지를 창간하자는 안을 제안하고 중재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바다 신문』은 빠지고 두 신문만 통합하게 되었다. 당시 종합 일간지로 가지 않고 경제지로 가게 된 것은 종합 일간지 허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형태]

초기에 판형은 타블로이드판[가로 39.3㎝, 세로 54.5㎝]이며 발행 면수는 두 면으로 발행하다가, 법인체 발족 후 활기를 띠어 1949년 2월부터 배대판(倍大版)으로 지면을 확대하고 백색 갱지를 사용하였다.

[구성/내용]

『산업 신문』은 제호를 보아도 그렇지만 창간 초기 경제지적인 성격의 신문이었다. 업계 전문지인 『동아 산업 시보』와 『수산 신문』이 통합되어 창간된 점에서도 이러한 성격을 추정할 수 있다. 실제 창간 초기 지면에서 산업 관련 기사나 경제 현안 등에 주력하는 편집 특성을 보여 주었다.

[변천과 현황]

『산업 신문』동광동 21가 216번지에서 창간하였으며 인쇄는 『부산 매일 신문』 또는 『부산 일보』 공장에서 하였다. 이후 사옥을 동광동 3가 17번지의 전 일본인 소유 보래인쇄소로 이전하면서 1948년부터 자체 인쇄를 하였다.

1947년 12월에 경영체를 주식회사로 개편하였다. 총 자본금 150만 원 중 1차 불입금 25만 원의 주식 모집이 달성되었는데, 출자의 70%는 수산업자들이 맡고 30%는 부산 상공인들이 맡았다. 이에 따라 사장 김지태, 부사장 박순조(朴淳祚), 전무 겸 편집국장 김형두, 상무 겸 영업국장 이용희의 진용이 구성되었다. 이때의 현업 간부들은 편집부장 윤임술(尹壬述), 사회부장 박영조(朴榮祖), 공부국장 김을룡, 영업부장 한영근 등이었다.

법인체를 출범한 후 지면은 의욕적인 활기를 띠었으나 후속 주금 불입이 여의치 못해 어려움이 생기고 있을 때, 실업가 이연재(李年宰)가 3회, 4회 주식 불입금 500만 원을 인수해 1949년 9월 1일, 제2대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어 다음 해 6·25 전쟁을 맞으면서 1950년 8월 19일 제호를 『국제 신보(國際新報)』로 바꾸었으며 10월 『대중 신문(大衆新聞)』을 흡수하였다. 이후 『국제 신보』는 발행 부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 1953년 2월 15일에 단행된 긴급 통화 개혁 때는 특종 보도로 가판 부수가 일시 3만 부에 이를 정도로 늘어나 발행 부수가 근 10만 부에 이르는 기록을 세웠다.

1957년 9월에 김형두가 제3대 사장에 취임하여 지면이 더욱 활기를 띠는 변화를 보였으나, 방계 세계통신(世界通信)의 분립과, 『국제 신보』 서울 발행 추진에 따른 경비 등으로 재정 악화가 나타나 압박을 받다가 1964년 5월 경영권이 럭키 재벌계로 넘어가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산업 신문』은 어려운 경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신문 체제의 혁신을 시도하였다. 타블로이드판에다 용지도 선화지를 사용하던 것을 판형을 배대판으로 확대하면서 용지도 갱지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혁신은 1949년 2월 1일부터 실현하게 되었는데, 부산의 다른 신문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6·25 전쟁 중 『국제 신보』로 제호를 바꾼 후, 피난 온 중앙의 저명 언론인을 영입하여 진용을 강화하는 등 적극성을 띠어, 임시 수도 하에서 정계와 사회 여론을 이끄는 5대지[『동아 일보』, 『경향 신문』, 『한국 매인 신보』, 『국제 신보』, 『민주 신보』]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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