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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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新聞 |
영어의미역 | The Busan Sinmun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보영 |
[정의]
해방 후 부산에서 창간하여 발행한 중도계 신문.
[창간 경위]
일제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자 한국 사회는 식민지의 모순을 청산하고 새로운 독립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과제를 둘러싸고 정치적·이념적 지향을 달리하는 여러 정당과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각종 주의·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각종 매체를 동원하여 목소리를 담아냈다. 먼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좌익계 언론들이었고, 이에 맞서 우익계 언론들도 신문을 발행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익도 우익도 아닌 중립을 신문의 기조로 삼은 신문들이 등장하는데, 부산에서 대표적인 중립 신문이 바로 『부산 신문(釜山新聞)』이었다. 『부산 신문』은 1946년 5월 3일 충무동 3가 102번지에서 변호사 김준원(金俊源)과 박상봉, 김세호, 남상억, 박경장 등에 의해 창간되었다.
[형태]
판형은 타블로이드판[가로 39.3㎝, 세로 54.5㎝]이며 발행 면수는 두 면이다.
[구성/내용]
1면에는 서울발 합동통신의 정치 기사를 싣고, 2면에는 지방 기사를 실었다.
[변천과 현황]
창간 당시의 발행인은 김준원, 주필은 이희보(李熙輔), 편집국장은 『민주 중보(民主衆報)』 창간에 참여하였던 석광수(石光守)였으며, 충무동 일대에서 창간하였다. 창간 이듬해인 1947년 5월에 자본금 1,000만 원의 부산신문사를 주식회사로 설립하고 회사 운영에 전기를 도모하였다. 이때의 주식회사 발기인에는 당시 부산 지역 언론계에서 활약하던 주요 인사들 다수가 포함되었다. 그해 7월 16일에 주식회사 창립총회를 열어 재출범을 선언하였으며 8월 10일에는 취체역(取締役) 회의를 통해 임원 및 간부를 확정하였다. 이후 운영난을 겪으면서 1948년 7월 『신한 일보』를 발행하였던 김억조(金億兆)를 새 경영자로 영입하였으나, 독자층을 확보하지 못하고 운영난이 지속되어 1950년 3월 폐간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 신문』은 창간 당시 중립지임을 표방하였지만,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초기에는 좌익 성향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1948년 경상남도 지역으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2월 1일부터 통영판, 2월 8일부터 마산판을 발행하여 영향력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