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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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It’s Gotten Dark with the Sun Having Been Sunken Down |
이칭/별칭 | 「이태백이 본처 노래」,「모심기 소리」,「모심기 노래」,「등지」,「모숭는 소리」,「모숭는 노래」,「저녁 소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북구|영도구|남구|동구|연제구 |
집필자 | 류경자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구, 영도구, 남구, 동구, 연제구 등지에서 모심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개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는 부산 지역에서 모를 못자리에서 논으로 옮겨 심는 과정에 주로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는 「이태백이 본처 노래」, 「모심기 소리」, 「모심기 노래」, 「등지」, 「모숭는 소리」, 「모숭는 노래」 등으로도 불린다. 특히 「해 다 지고 저문 날에」는 모심기의 전반에 걸쳐 불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모심기의 후반부인 저녁 무렵에 불린다고 하여 「저녁 소리」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승찬·박경수·황경숙 등이 집필하고 세종출판사에서 발행한 『부산 민요 집성』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93년 7월 16일 부산대학교 조사팀이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죽전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강두이[여, 72]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또한 류종목이 집필하고 민속원에서 간행한 『현장에서 조사한 구비 전승 민요』-부산편에도 실려 있다. 이는 1999년 7월 17일 동아대학교 조사팀이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대리 마을 주민 손서운[여, 83], 1999년 10월 2일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주민 이점선[여, 77], 1999년 10월 9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주민 최계연[여, 77], 1999년 10월 15일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주민 조두이[여, 76], 1999년 10월 30일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주민 안효진[여, 83], 1999년 10월 31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두송 마을 주민 박금춘[여, 74]·박재임[여, 81] 등으로부터 각각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해 다 지고 저문 날에」는 일반적으로 남녀 교환창으로 불린다. 교환창은 두 팀으로 나뉘어 부르는데, 의미가 있는 앞 사설을 한 팀이 부르고 나면, 다른 한 팀이 받아서 의미가 있는 뒤 사설을 부른다. 모심기 소리는 모를 심는 동작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이므로 비교적 늘어지는 느린 가락으로 부른다. 이러한 영남 지역의 모심기 소리 가락은 ‘정자 소리’라고 하는 메나리 토리에 해당하는데, 이 모심기 소리 가락을 부산 지역에서는 ‘등지’라는 명칭으로 일컫는다.
[내용]
「해 다 지고 저문 날에」는 집을 떠났던 남편이 주검이 되어 상여에 실려 돌아온다는 애절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제보자에 따라 노래 사설의 어휘 사용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사설은 다음과 같다.
해다지고 저무신날에 어떤행상이 떠나가노/ 이태백이 본댁죽고 이별행상이 떠나간다[동삼동 안효진의 노래].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모심기는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논에 옮겨 심는 일을 말하는데, 모내기라고도 한다. 모심기를 할 때는 먼저 논을 가로질러 못줄을 하나나 두 개 치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따라 늘어선다. 다음에 못줄에 맞춰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어 나간다. 일단 모심기를 시작하면 일정한 속도에 맞춰서 동시에 모를 심어야 한다. 따라서 모심기를 할 때에 「해 다 지고 저문 날에」를 불러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의 손을 맞추었다.
[현황]
사람들의 손에 의지하여 모심기를 하던 시절 「해 다 지고 저문 날에」는 대부분 남녀 교환창으로 불렸다. 그러나 오늘날은 노동의 현장을 벗어나 작위적 공간에서 채록을 하다 보니 교환창으로 불리기보다는 독창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
[의의와 평가]
「해 다 지고 저문 날에」는 「해 다 졌네 해 다 졌네」와 같이 영남 지역뿐만 아니라 부산 지역에서도 역시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모심기가 끝나갈 저녁 무렵에 애창되고 있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는 부산 지역의 사투리가 그대로 녹아 있어 지역성이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