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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675
한자 東區-文化遺産
영어의미역 Cultural Assets of Dongg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변광석

[정의]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부산광역시 동구의 주요한 문화유산.

[개설]

부산광역시 동구는 구봉산(龜峯山) 자락 아래 펼쳐져 열린 부산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사적·문화적으로 매우 유서가 깊다. 임진왜란 이후 장군 정발(鄭撥)의 충혼과 의열이 깃든 땅이며, 왜관과 청관 및 재부산일본국총영사관과 화교촌이 있는 곳으로, 일찍부터 외국 문물이 교류되어 온 부산항의 관문이다. 따라서 부산의 개방성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동구의 문화유산을 항목별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정 문화재]

1. 부산진성

동구 범일동 590-5번지에 위치하는 부산진성(釜山鎭城)은 1972년 6월 26일에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본성인 증산 왜성을 방어하기 위해 지성으로 쌓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 부자가 쌓았던 왜성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만세덕(萬世德)이 진주하여 주둔한 적이 있고, 그 공을 기리는 만세덕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 뒤 자성대를 중심으로 성을 쌓고 사대문을 지어 부산진 첨사영(釜山鎭僉使營)으로 사용하였다.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금루관(金壘關), 남문은 진남문(鎭南門), 북문은 구장루(龜藏樓)라 하였다. 성안에는 공진관(拱辰館)[객사], 검소루(劍嘯樓)[동헌], 제남루(濟南樓)[개문루] 등의 관청 건물이 있었다. 특히 서문 입구 양측에 남요인후(南邀咽喉)[남쪽 변방은 나라의 목구멍]와 서문쇄약(西門鎖鑰)[서문은 나라의 자물쇠]라는 큰 글씨가 쓰여 있는 돌기둥이 서 있다.

2. 정공단

동구 좌천동 473~474번지에 위치하는 정공단(鄭公壇)은 1972년 6월 26일에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임진왜란의 첫 접전지가 부산이었으며, 부산진성을 지키던 정발은 첫 접전지에서 전사하였다. 정발과 같은 충용의 장군이 열 사람만 되었어도 그렇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충장공 정발의 충령을 모신 사당이 바로 정공단이며, 해마다 부산진성이 함락된 음력 4월 14일에 정발의 충혼을 추모하는 제향을 올리고 있다.

3.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

동구 좌천동 768-1번지에 위치하는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釜山鎭日新女學校校舍)는 2003년 5월 2일에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1905년(고종 42)에 호주 선교사들이 건립하였는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비례와 균제미가 돋보이는 훌륭한 근대 건축물이다. 부산·경상남도 지역 최초의 신여성 교육 기관이며, 3·1 운동의 깃발을 처음으로 올렸던 독립 운동의 산실로서 역사적·교육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다. 동구청에서는 국비와 시비를 지원받아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지붕과 교실, 벽체, 담장, 석축 등의 보수 정비 사업을 실시하여 지역의 근대 문화유산 보존 전승에 기여하고 있다.

[비지정 문화재]

1. 영가대

영가대(永嘉臺)는 조선 후기에는 동구 범일동성남초등학교 서쪽 경부선 철로 변[당시 해안선]에 있었는데, 1905년에 경부선 개통으로 철거되어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옛터에 표지석만 세워져 있다. 조선 후기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행(通信使行)과 관련이 깊은 명소로, 1614년(광해군 6)에 경상도 순찰사 권반(權盼)부산진성 근처의 해안이 얕고 좁아 새로 선착장을 만들었는데, 이때 바다에서 퍼 올린 흙이 쌓여 작은 언덕이 생겼고 이곳에 나무를 심고 정자를 만든 것이 바로 영가대이다.

1617년(광해군 9)에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였던 오윤겸(吳允謙)영가대에서 일본으로 출발한 이후 통신사행은 줄곧 영가대에서 해신제를 올리고 일본으로 갔다. 1624년(인조 2)에 선위사 이민구(李敏求)가 일본 사절을 접대하기 위해 부산에 파견되었다가, 이 정자를 보고 권반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永嘉)를 따서 ‘영가대’라고 이름 지었다.

2. 구봉 봉수대

구봉 봉수대(龜峰烽燧臺)동구 초량동 29번지에 위치한다. 조선 시대 경상도의 직봉로(直烽路)로서 다대포 두송산에서 받아 황령산으로 전달하는 봉수였다. 속칭 봉화산이라고 불리는 해발 408m의 고지에 흔적뿐이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하였다. 조선 후기에 부산진(釜山鎭)에서 관할하였고 도별장(都別將) 1명, 별장(別將) 6명, 봉군(烽軍) 100명을 두었다.

3. 정발 장군 동상

정발은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 때 부산진 첨사로서 나라의 관문인 진성을 지키기 위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애국 충정의 장군이다. 부산시에서는 정발의 애국 충절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7년 동구 초량3동정발 장군 동상을 건립하였다.

4. 최영 장군 비각

고려 말에 유난히 왜구의 침입이 잦았는데, 최영(崔瑩)은 도순문사 양광직 휘하 시절부터 적의 침입을 많이 물리친 바 있다. 찬성사로 있을 때인 1376년(우왕 2) 홍산[지금의 부여]에 왜구가 침입하여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지역을 휩쓸고 약탈과 방화 살해를 자행하자 최영은 이 일대에서 왜구를 대패시켰다. 이후 최영은 가장 뛰어난 전술과 통솔력을 발휘하는 장군으로 알려졌다. 당시 왜구의 침입이 심할 때 부산을 중심으로 한 해안 일대는 그 피해가 커서 안정을 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왜적을 섬멸한 최영에 대한 고마움이 토속 신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부산 지역에는 자성대를 비롯해 남구 감만동, 수영구 수영동, 영도에 지역민이 건립한 최영의 사당이 있다. 외침(外侵)의 화를 면하게 하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자성대 공원 사당에서는 매년 음력 5월 5일에 자성대개발추진위원회가 추모 제사를 지내고 있다.

5. 부산진 매축 기념비

부산진 매축 기념비(釜山鎭埋築記念碑)는 동구 수정동 1-4번지에 위치한다. 1902년(고종 39)부터 1926년까지 부산진 앞바다 47만 6033.06㎡[14만 4000여 평]가 세 차례에 걸쳐 매축되었다. 1926년 10월에 부산진매축주식회사가 설립되어 동구 수정동범일동 해안 일대의 방대한 면적이 매립되었는데, 부산진 매축 기념비는 이 매립지의 완성과 함께 세워졌던 기념비로서 현재 부산동부경찰서 마당에 관리 보존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6.25 내용 수정 [지정문화재] 1. 부산진성 내용 수정
2021.05.27 수정 부산진지성->부산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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