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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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點述 |
영어음역 | O Jeomsul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나철회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오점술(吳點述)은 190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1919년 2월 하순경 한용운(韓龍雲)이 부산 범어사(梵魚寺)에 와서 3·1 운동에 불교계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에 범어사에서는 김법린(金法麟)·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 등 7명을 서울로 보내어 3·1 운동에 참여하게 하였다. 3월 4일 이들이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범어사의 3·1 운동이 계획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오점술은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 등 불교계 인사들이 주도한 동래 장터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 주동자들이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투옥되었지만 나이 탓인지 오점술의 구속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3·1 운동 이후 문록선(文錄善)과 함께 중앙불교전문학원[현 동국대학교]을 졸업하였다. 1940년 범어사의 말사인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장유암(長遊庵)에 기거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범어사와 관련된 활동을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