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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396
한자 權福海
영어음역 Gwon Bokhae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차성로299번길[동부리 19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송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조선부녀동맹 경상남도 총지부 부위원장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 기장면 3·1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1년 9월 - 기장여자청년회 설립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8년 5월 19일 - 근우회 동래지회 설립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진주부녀동맹 위원장으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46년 2월 23일 - 조선부녀동맹 경상남도 총지부 부위원장으로 선출
출생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194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진주시
학교|수학지 명정의숙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활동지 기장여자청년회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320지도보기
활동지 근우회 동래지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2-2
활동지 진주부녀동맹 - 경상남도 진주시
활동지 조선부녀동맹 경상남도 총지부 - 부산광역시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여성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가계]

아버지는 권상중(權商重)이고, 어머니는 강처일이다. 아버지 권상중은 기장의 첫 사립 학교인 보명학교와 명정의숙을 설립하였다. 할아버지 권인후는 기장 지역에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던 현감을 쫓아냈다. 독립운동가 권은해(權銀海)가 친언니이고, 권동수(權東洙)와 이수형[권은해의 아들]은 친정 조카들이다. 기장을 대표하는 민족 운동가 김약수(金若水)는 외오촌 당숙이고, 사회주의자 박용선(朴容善)은 육촌이며, 김도엽(金度燁)·김규엽 형제는 사돈이다.

[활동 사항]

권복해(權福海)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194번지에서 1남 2녀 가운데 둘째 딸로 태어났다. 태어난 해는 명확하지 않으나, 언니인 권은해의 출생이 1903년이므로 권복해의 출생은 1903년 이후이다. 조부에서 부친으로 민족의식이 강렬하게 이어지는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여 어려서부터 투철한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권복해는 아버지 권상중이 설립한 명정의숙에 다녔다. 여학교인 명정의숙은 남학교인 보명학교와 한 건물에 있었다. 인척 관계에 있던 김두봉(金枓奉)·박용선·김도엽 등이 보명학교에 다녔다. 이런 권복해가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19년 기장면 3·1 운동에 참여한 후 7월에 언니인 권은해권은해의 동창생 등과 더불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공부하러 갔지만 여의치 않아 별 성과 없이 고향에 돌아왔다.

권은해는 3·1 운동의 경험 등을 계기로 사회 의식을 갖게 되어 1921년 9월 기장여자청년회 설립에 참여하였다. 기장여자청년회기장면 3·1 운동에 참여하였던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단체로, 여자 야학을 운영하여 여성에게 교육을 보급하고 계몽 활동을 펼쳤다. 야학의 설립과 활동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권복해 역시 야학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0년대 초반 동래의 부자 김용조와 결혼하면서 동래로 이주하였다. 동래 이주 이후 한동안 권복해의 활동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1928년 5월 19일 근우회 동래지회가 설립될 때 준비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근우회 동래지회는 주로 사회주의 계열에 의해 주도되었다. 근우회 동래지회에서 1929년에 서무를 담당하였고, 1930년에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교양부를 담당하는 핵심 인사가 되었다. 근우회 동래지회의 해체 이후 몇 년 동안 권복해의 행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1945년 8·15 광복 후 진주부녀동맹 위원장이 되어, 12월에 있었던 부산부녀동맹 결성식에 권은해와 함께 참석하였다. 권복해는 이 자리에서 당시 수감 중이었던 양산의 저명한 항일 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이며 양산군 인민위원장인 전혁의 옥중 서신을 낭독하기도 하였다. 1946년 2월 23일 조선부녀동맹 경상남도 총지부 결성식이 개최되었다. 경상남도 19개 군 대표와 부산의 동맹원 등 1,000여 명이 참가한 결성식에서 권복해는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위원장으로 홍순남, 위원으로 노남교·최복순·최금남 등이 선출되었다. 이후 권복해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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