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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134
한자 書契所
영어음역 Seogyeso
영어의미역 Seogye Offic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부(전통 시대)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동철

[정의]

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 있던 동래부 소속의 서계 담당 기관.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국서(國書)와 서계(書契)라는 두 종류의 외교 문서가 교환되었다. 서계는 외교 실무 부서인 조선의 예조, 동래 부사, 부산 첨사와 일본의 대마 도주, 만송원(萬松院), 이정암(以酊庵) 등 사이에 교환된 문서이었다. 서계소(書契所)는 서계를 관장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서계소는 동래부 동헌인 충신당(忠信堂) 서쪽에 위치하였으나, 현재로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672년(현종 13)에 동래 부사 이하(李夏)가 건립하였고, 1712년(숙종 38)에 부사 이명준(李明浚)이 중창하였다. 부사 이하는 재임 기간[1672년 2월~1674년 6월]인 1672년에 서계소 건립 외에 접위청(接慰廳)의 중창, 지대고(支待庫)의 이건, 대동고의 첨조(添造) 등 여러 부속 기관[기구]을 증설하였다.

이하가 동래 부사로 부임할 때는 왜관의 이전 논의가 거의 정점에 달하였다. 1671년(현종 12) 왜관 이전 논의에서 일본 측이 내세운 명분은 조선 정부에서 작성한 회답 서계에 대한 문제이었다. 이관 차왜(差倭) 평성태(平成太)[츠에효고(津江兵庫)]가 앞장서 그해 9월 왜관을 난출(闌出)하여 동래부 관아를 불법 점거하였다. 동래 부사는 조정에서 내려보낸 서계를 일본 측이 원하는 대로 수정할 수 없는 입장이었으나, 동래부로 난출한 수백 명의 일본인에게 매일 음식을 제공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이하는 서계소를 단독으로 설립하여 서계 업무를 강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직 및 담당 직무]

서계소에 관한 기록은 1740년(영조 16)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 창고조에 수록되어 있다. 서계소 건물은 좌기청 5칸, 공목고 8칸, 호조고 5칸, 진상고 4칸, 대문 1칸이었다. 공목고 고자(庫子) 1명, 하전(下典) 7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1759년(영조 35)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 1832년(순조 32) 『동래부 읍지』, 1871년(고종 8) 『동래부 읍지』[사례 대개]에는 서계소 항목이 없고 공목고만 기재되어 있는데, 기구가 개편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권3 각항 요포식(各項料布式)에서는 “쌀과 콩은 부창(釜倉)에서 지급하고, 베[布]는 동래부 서계소에서 지급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이처럼 서계소는 대일 외교·무역과 관련하여 지급되는 공목(公木)[공무역에 쓰인 무명]을 관장하였다. 경상도 각 지역에서 동래부로 하납되는 공목은 대부분 서계소의 공목고에 수납되었다. 서계소는 공목만 아니라 공작미(公作米)[왜와의 공무역에서 목면과 교환해 준 쌀] 관련 업무도 맡고 있었다.

서계소 업무를 담당한 이서(吏胥)는 서계색(書契色)[서계 색리]이었는데, 공작미 색리를 겸하는 것이 관례이었다. 따라서 서계색이 대일 공무역 지급의 가장 중요한 품목인 공목과 공작미의 입고와 출납을 담당하였다. 한편 서계색은 동래부의 공목이나 공작미의 포흠(逋欠)[국가의 조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 혹은 이러한 미납으로 인한 결손액]에서 주도적인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관련 기록]

『동래부지』, 『동래부 읍지』, 『증정교린지』, 『서계소 보관록(書契所報關錄)』[동래부편,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청구 기호 규(奎) 18104-v.1-3, 3책], 『동래부 서계소 회계 외도록(東萊府書契所會計外都錄)』[동래부편,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규 18123, 1책 28장] 등에 관련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1904년(고종 41) 9월에 서계소 건물을 교사(校舍)로 하는 개양학교(開陽學校)가 개교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서계소는 조선 후기에 일본과의 외교·무역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던 동래부 부속의 대표적인 기관이다. 서계와 관련한 외교 업무, 공목·공작미 지급과 관련한 공무역 업무, 동래부 재정과 관련한 업무 등을 담당한 중요한 기구이었다. 동래부 서계소가 작성한 『서계소 보관록』이나 『동래부 서계소 회계 외도록』 등의 자료는 조선 후기 대일 외교사 및 무역사 연구에서 대표적인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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