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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 서계소 회계 외도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638
한자 東萊府書契所會計外都錄
영어의미역 Accounting Record for Seogyeso in Dongnae-bu
이칭/별칭 『서계소 회계 외도록』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동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편자 동래부 서계소
권책 1책 28장
규격 43.4×23.8㎝
권수제 서계소회계외도록(書契所會計外都錄)
편찬 시기/일시 1797~1854년연표보기 - 편찬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599
간행처 동래부 서계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정의]

1797~1854년 동래부 서계소가 대일 공무역 등에 사용된 공목, 공작미, 기와의 출납을 적은 회계 장부.

[형태/서지]

『동래부 서계소 회계 외도록(東萊府書契所會計外都錄)』은 1책 28장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43.4×23.8㎝이다. 표지 명칭은 ‘서계소 회계 외도록(書契所會計外都錄)’이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청구 기호 규 18123].

[구성/내용]

기재 방식은 공목, 공작미, 지와[기와]의 세 물품별로 기재하였다, 공목은 경신년인 1800년(순조 즉위)부터 갑인년인 1854년(철종 5), 공작미는 정사년인 1797년(정조 21)부터 갑인년, 기와는 무오년인 1798년(정조 22)부터 계축년인 1853년(철종 4)까지이다. 세 물품 모두 50~60년간의 기록으로, 시작과 끝의 시기가 거의 비슷하다.

장부는 1면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9등분하여, 오른쪽 상단부터 왼쪽 하단까지 연도별로 정리하였다. 회계 단위는 일정하지 않아, 1년에 6차례인 경우도 있으나, 1차례만 한 경우도 있다. 장부는 시기, 전재(前在), 가입(加入), 합(合), 하(下), 재(在)의 순서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정형화된 것이다. 때로는 이 외에 기부(記付)가 추가되거나, 기부만 기재된 경우도 있다. 이처럼 회계 단위별로 내용의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내용을 삭제했다는 의미로 동그라미 표시를 한 경우도 있다.

전재는 앞에서 남아 있던[이월된] 수량이고, 재는 남은[이월할] 수량이다. 그러므로 어떤 시기의 전재는 바로 앞 시기의 재와 수치가 일치한다. 가입은 추가로 서계소에 들어온 수치이다. 합은 전재와 가입을 합한 수치이다. 하는 왜관에 지급된 수치로, 차하[上下: 지급의 의미]로 기재된 경우도 있다. 재는 합에서 하를 제하고 남은 수량이다. 재는 다음 시기의 전재가 된다. 기부는 수량을 정리한 것으로 앞 시기의 재와 수치가 일치한다.

장부에는 상역(商譯)[일본어 통역관인 훈도와 별차]이 빌려간 것을 뜻하는 ‘상역대거(商譯貸去)’나 다시 받은 것을 뜻하는 ‘환봉(還捧)’ 등 수치의 출납 내용을 추가로 적어 놓은 것도 있다. 공목의 경우 가입액은 1805년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1811년경까지는 일반적으로 700동 이상을 가입하다가, 그 이후 665동 정도, 1833년 이후에는 648동 정도 가입하였다.

공작미의 경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① 1년간의 가입 수량은 대체로 매년 왜관에 지급하기로 약정한 액수와 동일하다. ② 왜관에 지급되는 수량은 약정액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③ 가입 횟수보다 지급 횟수가 더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지급을 연 1회 일괄 지급하는 것이 아니고 몇 차례 나누어 지급함으로써, 단기간의 비축이 가능하였다. ④ 공작미 비축액은 매년 4,000~5,000석 이상이었다.

기와는 신묘년인 1831년(순조 31) 3월에서 계사년인 1833년(순조 33) 7월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장부의 가입액에 “임진년[1832] 3월 번조(燔造)[구움]”라고 생산일이 적혀 있다. 왜관의 수리와 관련하여 조선 측에서 해마다 지급한 기와의 수량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50~60년 동안의 공목과 공작미 지급에 관한 구체적인 수량이 남아 있으므로, 두 품목의 수치 변화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1832년에 편찬된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 등과 비교하여, 19세기 공무역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19세기 전반 동래부의 공목이나 공무역 운영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1차 사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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