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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116
한자 乙淑島環境運動家-
영어의미역 The joy of environmental activist in the Eulsuk Island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생활사)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욱

[부산 사람들에게도 낯설었던 사하와 관광 명소 을숙도]

“옛날의 사하(沙下) 하면, 뭐 부산의 오지(奧地)였죠. 옛날에는 시내에 나가는 부산 사람에게 신평(新平)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잘 모를 만큼 낯설었고요. 신평, 장림(長林), 다대포(多大浦), 하단(下端)이 전부 그랬습니다. 대부분이 모래무지 또는 갈대밭이었으니까 기술적으로 소득원이라고 해봐야 어업이나 농업이 다였고요.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인구도 적고, 생활 수준도 낮은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하에서 명소라고 할 만한 곳이 있다면 을숙도가 유명했습니다. 을숙도 하면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을숙도를 찾아왔어요. 거꾸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을숙도를 잘 모를 겁니다. 워낙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영화의 배경으로도 많이 등장했고요. 또 사진가들 역시 을숙도에 저녁 먹으러 와서 저녁노을 한 번 찍지 않으면 사진관에서 사진을 안 받아줄 정도로 유명세가 있었지요. 지금의 을숙도보다도 1980년대 이전의 을숙도가 더 사람들에게 명성이 높았습니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사무국장 김경철씨는 옛날의 을숙도가 더 유명세를 탔다고 회상했다.

[페놀 사태, 부산 시민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다]

1991년 3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두산전자의 페놀 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 수지 생산 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30톤의 페놀 원액이 옥계천을 거쳐 대구 상수원인 다사 취수장으로 흘러듦으로써 수돗물을 오염시켰다. 페놀 원액은 1991년 3월 14일 밤 10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약 8시간 동안이나 새어 나왔으나 발견하지 못하였고,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를 받은 다사 취수장 측에서는 원인을 규명하지도 않은 채 페놀 소독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염소를 다량 투입하여 사태를 악화시켰다. 다사 취수장을 오염시킨 페놀은 계속 낙동강을 타고 흘러 밀양·함안·칠서 수원지 등에서도 잇따라 검출되어 부산, 마산을 포함한 영남 전 지역이 페놀 파동에 휩쓸리게 되었다.

이 사고로 대구지방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 등 13명이 구속되었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 조치되는 등 환경 사고로는 유례없는 문책 인사가 뒤따랐다. 또 국회에서는 진상 조사 위원회가 열렸고, 각 시민 단체는 수돗물페놀오염대책시민단체협의회를 결성하였으며, 두산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기도 하였다. 두산전자는 조업 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페놀 사고가 단순한 과실일 뿐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20일 만에 조업 재개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1991년 4월 22일 페놀 탱크 송출 파이프의 이음새 부분이 파열되어 또다시 페놀 원액 2톤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일어남으로써 사태가 악화되어 국민들의 항의 시위가 확대되었다. 마침내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환경처장·차관이 인책·경질되는 결과까지 초래하였다.

“부산은 낙동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환경 운동에 있어 페놀 사태가 계기가 된 것이지요. 수질 오염, 즉 옛날 대구 위천 공단의 페놀 사건이요. 페놀 사태가 벌어지면서 물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심각해진 것이죠. 물론 부산의 환경 운동을 그 이전에도 했던 분들이 있었겠지만 본격적으로 계기가 된 것은 페놀 사태였어요. 이를 계기로 부산환경운동연합도 만들어졌고요. 그 다음에 인제 녹색연합이나 기타 환경 단체들이 태동한 것은 10여 년 되었어요. 우리 단체, 즉 습지와 새들의 친구도 만들어진지 12년 정도 되었고요. 낙동강 하구라는 지역적인 기반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환경 운동을 하려고 해도 어떤 거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낙동강 하구라는 환경 운동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체들도 많아요. 또 그 다음으로 낙동강 하구가 철새 도래지로 문화재 보호 구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한 운동들이 상당히 많았지요.

따지고 보면, 제가 2005년부터 환경 운동에 뛰어든 계기도 단순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배경이 낙동강 하구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을숙도 하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사실 하구둑이 들어서면서 인제 문제가 발생했어요. 만약 어린 시절 낙동강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고 하면 이곳에 있지 않겠지요. 우리 단체가 낙동강 하구에 명지 대교가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어요. 그런 계기가 저를 이쪽에 끌어들인 것이죠. 사실 어렸을 때 제가 뭐 도시 안에서만 생활했다면 여기 없을 거예요. 낙동강 하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더듬어보면 ‘아, 이렇게 흘러가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어요. 제가 이 단체에서 생활한 지 오래는 되지 않았습니다. 2005년부터 했지요. 그 이전에는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했고요. 물론 이 단체에서 전임 실무자[사무국장]로 일하게 된 것은 여기에 계시던 분들과 학교 선후배들과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고, 이전부터 계속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낙동강 하구의 가치와 명지 대교 건설 반대 운동]

“낙동강 하구는 현재 거의 대부분 사라졌어요. 제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래요. 제가 생각하는 낙동강 하구는 70~80% 정도가 없어졌습니다. 대부분이 매립되었고 개발 과정에서 다 사라졌어요. 만약에 예전, 즉 적어도 1980년대 초반까지의 하구 모습만 남아 있다면 아마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을 겁니다. 그만큼 우수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었고, 자연환경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거지요. 그런데 인제 하구둑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이 되었는데, 신평·장림 사이에 있는 그 넓은 갈대밭도 다 매립이 되었어요. 쓰레기 매립지로요. 무지개 마을 옆에 큰 갯벌이 있었는데, 그것도 공단이 생겨서 다 메꾸어져 버렸고요. 거기 넘어 가면 뭐 녹산 공단, 신항만 등 아름답던 명지까지도 전부 다 매립이 되어 버렸지요. 거기다 도심 쪽으로 보면 엄궁, 사상 그 쪽도 전부 매립이 다 되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낙동강 하구가 가지고 있었던 고유의 아름다움은 사라졌지요. 이젠 사람들이 손을 댈 수 없는 안의 갯벌 쪽 일부만 섬과 같이 남아 있어요. 이제 연안 쪽은 다 매립되거나 아니면 인공적으로 축소를 했지요. 예전 같으면, 해가 뜨면 새가 하늘이 시커멓게 보일 만큼 많았으니까. 그 만큼 많았기 때문에 1966년에 철새 도래지로 지정이 되었겠지요.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라는 것은 그 만큼 새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인정을 받은 거겠지요. 그런데 이제 실질적으로 인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의 기치 아래, 계속 공단들을 만들면서 1980년대 초에 신평 공단과 장림 공단이 만들어졌는데, 그게 낙동강 하구 개발의 시초예요. 그게 만들어지고 낙동강 하구둑이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인제 하구가 파괴되었어요. 실질적으로 하구가 가진 가치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 것은 명지 대교가 가설되면서 그와 관련해 우리 단체가 활동을 하면서 이끌어낸 부분이 커요. 그 전에는 옛날 어른들 말을 들으면 을숙도 모래톱이 좋고, 술 마시기 좋고, 아름답고 이런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했지, 하구가 가진 가치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명지 대교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1990년대에 넘어오면서 습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돼요. 그 전에는 습지를 늪, 썩은 곳, 사람이 개발해야 할 곳으로 인식했지요. 우리가 습지의 가치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 것은 1990년대로 넘어온 뒤, 그것도 1990년대 말부터예요. 그래서 그전까지 사실은 관광이라든지 아니면 우리 먹거리라든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제공해 주는지를 인식하지 못했어요. 그 전에는 우리가 먹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죠. 우리는 쉽게 쌀을 구해 밥을 지어 먹잖아요. 도시에 있는 학생들은 농사를 지어 쌀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니까, 그냥 시장에서 바로 사오니까 언제든지 사먹으면 된다고 생각하지요. 만약에 이런 것들이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은 못해요. 자연이 훼손되면 어떻게 될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거죠. 그런 가치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90년대 후반부터예요.

그래서 낙동강 하구만 본다면, 옛날에는 그냥 버려진 땅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무조건 개발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매립이 성행한 거죠. 그리고 그때는 환경 운동을 할 수 있는 토대가 없었어요. 단체도 없고. 그러니까 정부가 하는 대로 막 가는 거죠. 그냥, 브레이크가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처음 브레이크가 걸린 게 명지 대교죠. 다리 하나 놓으려고 했더니 시민들이 막 반대하고, 문화재 보존이다, 습지 보존이다 하고 일어난 거예요. 반대하니까 둘러갈 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 단체하고 녹색연합하고 몇 군데에서 소송으로 간 거죠. 그 소송이 이어지면서 하구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거죠. 예전에는 그냥 새 많이 오는 곳, 갈대가 있는 곳 정도로 알았어요. 거기에 담겨져 있는 가치를 실질적으로 끄집어내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이렇게 중요한 곳이다 하고 깨우치는 계기는 명지 대교라고 봐야 되겠죠. 명지 대교 소송을 통해서요.

명지 대교는 사실 건립되지 말았어야 할 다리인데……. 도시 계획이라는 게 1년, 2년을 바라보고 수립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제 장기 계획에 따라 부산의 외곽 순환 도로 차원에서 만들어졌어요. 계획이 되었던 거죠. 그게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이 사업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나오게 되지요. 그게 신항만과도 다 연결이 되어 계획이 되지요. 북항과 신항을 연결해 동선을 만드는 차원에서요. 본격적으로 명지 대교를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지역이 사실 보면, 지나가는 지역이 낙동강 하구뿐만 아니고 연결되는 동선이 북항에서부터 남항 대교 다음에 천마 터널, 명지 대교, 신항 이렇게 연결이 되거든요. 그래서 명지 대교가 들어서는 명분이 바로 그런, 어떤 동선 위에 이 다리가 있어야 된다는 명분을 내세운 거지요. 그런데 이 지역이 문화재 보호 구역이고 또 습지 보호 구역이란 말이지요. 그러고 환경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란 말이에요. 하여튼 그 지역은 5개의 법으로 보호되는 지역이에요. 그 지역에 다리를 놓다 보니까 허가 사항이 많지요. 문화재청의 허가도 받아야 되고요. 습지 보호 구역이니까 환경부의 허가도 받아야 되고. 이런 여러 가지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 보니까 상당히 지지부진하게 간 거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지역에 다리를 놓는다는 계획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죠. 습지 보호 구역에 다리를 건설하는 건 우리나라에서 명지 대교가 처음이거든요. 그 전에 사례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환경 가치와 개발이 본격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지요. 그것이 차츰차츰 진행되면서 노선이 나오게 되고, 본격적으로 2000년대 초반이 되어 절차를 밟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2000년도에 만들어지게 되고요. 만들어지면서 명지 대교 반대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어요. 그 시기에 여러 단체들도 그 안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부산환경운동연합, 부산녹색연합 등 여러 단체들이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 안에서 이제 어떤 단체는 대안 노선, 즉 다른 곳으로 둘러가야 하는 것을 주장하기도 하고, 우리 단체와 녹색연합의 경우에는 명지 대교를 놓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요. 차라리 낙동강 하구둑에 있는 다리를 더 확장해서 사용하든지 아니면 다른 대안 노선을 검토하든지 해야지 이곳을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지요. 그러면서 합의가 나온 것이 뭐냐 하면, 400m 우회하는 다리예요. 이 안은 부산시하고 우리 단체하고, 녹색연합은 빠진 가운데 합의가 되었어요. 부산환경운동연합이랑 몇 군데하고. 그래서 이 합의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부산시는 밀어붙였지요. 그래서 공사가 착공이 됩니다. 원 노선에서 위로 둥글게 최대 400m 올라가는 둥근 형태의 회전 반경을 가지는, 그런 노선으로 확정이 되고 공사에 들어가죠. 그런데 그것을 이제 우리 단체와 몇몇 단체들이 받아들일 수 없어서 소송으로 간 겁니다. 공사 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2005년도부터 소송이 진행된 거죠. 그래서 2006년도 3월 초에 1심 판결에서 패소를 합니다. 다시 저희들이 항소를 해서 고등법원에서……. 그해 2006년 11월까지죠. 아마, 소송이 또 진행되었죠. 여기서 다시 패소하게 되고. 다시 상고해서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2007년 2, 3월에 기각되어 재판은 일단락됩니다.

이 재판이 우리나라 환경 소송에서 굉장히 중요한 재판입니다. 사실, 어떤 의미가 있냐 하면은 그전에는 낙동강 하구 안에, 을숙도에 주인이 없잖아요. 땅 주인이 바로 국가잖아요. 국가가 자기 땅에서 국책 사업을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냐고요. 우리가 민사 소송에서 이야기하는 당사자 자격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느 곳에서 환경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 외지인이 ‘그곳에 공사를 하지 마시오!’ 하면서 재판을 걸면, 재판부에서는 ‘너는 그 지역에서 사업을 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느냐? 너의 땅이 있느냐, 없느냐’. 해당하지 않으면 무슨 민사 소송을 제기하느냐는 거죠. 공사를 금지해 달라고 하는 것은 내가 무슨 권익을 침해당하기 때문에 소송을 하잖아요. 그런데 권익을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왜 소송을 하느냐 해서 당사자 적격이 없다고 소송 자체가 안 되었어요. 그런데 모든 국책 사업이 개인의 사유지에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죠. 국가의 소유니까. 그래서 그 전까지 모든 환경 소송에서 전부 패소했어요. 그러니까 당사자 적격이 안 되니까 아예 소송이 성립 자체가 안 된 거죠. 그런데 명지 대교 소송 2심 법원이 처음으로 당사자 적격을 인정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환경 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비록 거주는 하지 않지만 권익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환경 소송에서 처음으로 당사자 적격이 인정된 케이스예요. 그래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었잖아요? 그것 역시 명지 대교 소송이 없었으면 할 수 없는 소송이죠. 왜냐면 당사자 적격이 안 되니까요. 다행이도 명지 대교 소송에서 판례로 당사자 적격으로 인정을 해줬기 때문에 이 사업에 대해서 소송을 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로 환경 소송에서 당사자 적격을 인정받은 케이스로 봐야 돼요.”

[습지 보전 전문 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를 만들다]

습지 보전 전문 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회원들 가운데는 유달리 교사가 많다. 1995년에 전국적으로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이 만들어지는데, 이 모임의 부산 지부 모임인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부산 교사모임’의 회원들이 명지 대교 건설 반대 운동을 경험하면서 습지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육하기 위한 전문 단체로 2000년 10월 8일에 창립한 것이 ‘습지와 새들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 단체를 만드는 데 가장 기여를 한 사람은 대명여자고등학교 교사인 박중록이다. 낙동강 하구의 표본 조사, 철새 조사에서부터 단체 운영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부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박중록과 함께 현재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홍정욱, 천성광도 창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든든한 대들보 역할을 해왔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어려웠던 시기부터 현재까지 재정 후원을 해준 회원들이었다. 정부 혹은 지방 자치 단체로부터 특별한 지원금이나 세금 혜택 등이 없었기에 회원들의 십시일반, 정성이 담긴 후원 회비를 모아 활동을 해왔다. 모든 회원들이 참석하는 총회에서는 사업 승인과 같은 큰 틀의 그림을 그리고, 실제 세부적인 단체 운영과 활동에 관해서는 운영 위원회에서 의결하는 형태로 지금도 운영이 되고 있다. 현재 운영 위원은 총 11명이다. 그러면 ‘습지와 새들의 친구’는 낙동강 하구를 중심으로 어떠한 활동들을 해왔을까?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조류 조사, 인식 증진, 보전 운동이 중심 활동입니다. 우선 우리가 보존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근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 근거가 되는 것이 조류 조사 활동이죠. 우리가 매월 실시하고 있어요. 2002년 말부터 지금까지 매월 낙동강 하구를 조사하고 있어요. 조류 탐사에는 총 7개의 팀이 동원이 됩니다. 구성원은 교사와 회사원 등 비교적 다양한 편인데, 새를 관찰한다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몇 년 동안 보조 조사원으로 활동을 한 이후에 어느 정도 동정 능력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특정 지역의 담당을 맡게 됩니다. 그 다음에 아이들의 인식 증진이 상당히 중요해요. 어릴 때부터 이런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이죠. 그래서 매년 어린이 생태 체험 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요. 또 보존 운동 같은 경우에는 명지 대교 소송에서부터 둔치 정비 사업이라든지, 4대강 사업 그 다음에 문화재 보호 구역 축소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대응 활동, 최근에는 에코 델타 시티와 같은 낙동강 하구에서 벌어지는 현안 사업들에 대해서 하구를 지키는 운동을 해오고 있어요.

또 조류 조사 같은 경우에는 10년 동안 지속해왔기 때문에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죠. 그래서 이러한 데이터가 축적되면 활용이 넓어지는 것이죠. 우리가 한두 해 조사해 가지고는 예측하기 힘들고, 방향성을 말하기 어렵지만, 10년 이상의 자료가 있기 때문에 과거 10년의 자료를 토대로 해서 지금 현재 어떻게 되어 가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된다, 이런 대안 제시가 가능한 범위까지 와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 다음에 조직적으로 보면 실질적으로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하나의 단체로서 작은 편이에요. 사실 회비를 내는 회원 해봐야 350명 정도 밖에 안 되거든요. 또 전국적인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습지 보전 전문 단체이기 때문에 가지는 위상은 있어요. 또 조류 조사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이제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 무시할 수는 없는 거죠. 근거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지방에 있는 작은 단체이지만 전국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 토대를 지난 10년 동안 다져온 거죠. 그것이 보전 운동, 조류 조사로 일관된 이 활동들이 인정받고 있는 거죠. 그 일환으로 저희들이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으로부터 교보 환경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불편함의 수용과 지속 가능한 사회]

“우리의 환경 가치에 대한 인식은 많이 전환되었어요. 그렇지만 또 따지고 보면 많이 전환된 것도 사실 아니에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편리함을 많이 추구하잖아요. 우리가 환경의 가치를 중요시한다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 환경 가치를 진정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거든요. 에너지도 그렇고. 또 자연환경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것들이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환경 가치가 지켜지는 것이죠. 어떤 습지가 있는데, 빨리 지나가려면 다리를 놓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습지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하면 둘러서 갈 수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율배반적이지요. 빨리 가고 싶은 거예요. 환경도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빨리 가고 싶다는 것이죠. 그 다음에 에너지도 마찬가지예요. 에너지를 적게 쓰자고 하면 불편하잖아요. 에너지를 문제라고는 생각하지요. 원자력? 문제인데. 그렇지만 어떻게 하느냐? 내가 쓰는 전기는 또 줄이고 싶지 않은 것이죠. 편리하게 살고 싶은 거죠. 이게 지금 현재 상충되어 있는 그런 상태라고 봐야 되는 거예요. 요즘 나오는 탈핵이라든지 탈원전도 마찬가지로 에너지 문제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모두 인식의 공유는 많이 하고 있지요.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도 핵 발전소가 폭발하면 큰일 나겠구나. 그런 인식은 가지고 있지만 당장 ‘당신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줄이시오’라고 하면 거부감이 생기는 거예요. 그 다음에 에너지 비용을 좀 높여야 되겠다고 하면 그것도 거부한단 말이죠. 그런데 원전이 이게 뭔가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은 다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대개 지금은 상충되는 지점에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무조건 편리함만 추구했어요. 개발 시대에는 빨리 가야 되고, 편리해야 되고요. 그렇지만 거기에서 조금 완화된 면은 있지요. 지금은 환경 가치를 조금 생각하다 보니까. 그 다음에 환경 가치를 지켜야 할 노력들이 가세되다 보니까 함부로 관에서든 어디든 개발 자체를 할 수는 없죠. 물론 그래도 하는 것은 하겠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쉽게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이 부딪치는 지점에 현재 와 있다고 봐요. 그래서 우리가 환경 선진국에 비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떨어지지만 그나마 조금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삶,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속 가능한 사회와 삶은 무엇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문제까지는 생각을 안 한다는 거죠. 그냥 우리가 뭐 이렇게 잘 살다 보면 지속 가능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지속 가능한 삶을 이야기하려면 환경 가치를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것도 저는 전환 지점에 와 있다는 거죠. ‘와, 이거 생각하면 우리 자녀들 때에는 망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지요.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겠나?’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보는 거지요. 전환기, 환경의 전환기예요. 생태적 가치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삶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가운데에서 지금은 잘 살자고 이야기를 하지, 지속 가능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지요. 단어만 있어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런 중요한 시기에, 포인트에 와 있기 때문에 이런 어떤 것들이 우리 한 사람이 운동한다거나 단체가 운동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결국 정책적으로 이런 것들이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해요. 생태 가치를 좀 더 정책적으로 더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나라가 가야 되는데, 아직도 모든 제도라든지 법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것을 뒷받침해 주지 않는 것이 문제지요. 특히 이제 법 같은 경우에는, 환경 소송의 경우에는 굉장히 불리하지요. 환경 소송 같은 경우에는 헌법에도 환경 가치에 대해서 명시를 해놓고 있는데, 그 하위의 법에서 이것을 구체화시키지 않다 보니까 소송의 문제에 있어서도 항상 환경은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어요. 정책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지금 몇 퍼센트 성장을 해야 된다. 잘 먹고, 잘 살아야 된다는 논리로 가다 보니까 말은 환경 가치를 내세우는데, 정책적으로는 환경 가치는 항상 후순위지요. 4대강 사업만 하더라도 진행이 된다는 말이지요. 환경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환경부가 나서야 되는데, 또 환경부도 들러리를 서 버린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것들이 최근 한 5년 사이에 계속 벌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그 문제는 역시 가치를 좀 더 인식시키는, 그래서 전환기를 넘어설 수 있는 그런 게 필요해요. 우리가 참 전환기를 넘어서기 힘들잖아요? 우리가 고개를 헐떡거리면서 오르다가도 막상 넘어서면 편한데,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고개를 올라가는 시기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것이 좀 더 진행되면, 우리가 탈원전이라든지 아니면 환경 가치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인정이 이뤄진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환경 선진국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거예요. 그 전환기는 앞으로 한 10년 정도 우리가 생각해야 하겠지요.”

[녹색 성장과 녹색 운동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러니까 정부와 기업에서 대표적으로 가장 잘못한 게 녹색 성장, 녹색 사업이에요. ‘녹색’을 표방한 성장은 될 수가 없고요, ‘녹색’을 표방한 사업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 둘은 서로 맞물릴 수가 없는 단어들이지요. 사업과 녹색, 성장과 녹색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져야 할 말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 하나가 ‘친환경’이라는 겁니다. 친환경은 무얼 친환경이라고 하나요?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도대체 친환경이 뭡니까?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친환경 도량 건설, 도대체 어떻게 만들면 친환경입니까? 녹색 성장이나 친환경이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는데, 무조건 좋다는 겁니다. ‘친환경’만 들어가면 나쁜 사업도 좋은 사업이 되어 버려요. 이 둘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녹색은 녹색이고, 성장은 성장이죠. 단지 이제 우리는 저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살아간다는 각오가 필요한 거죠. 그래서 우리에게 녹색의 가치가 필요한 거죠. 우리가 옛날 고성장 시대에는 뭐가 없으면 죽어요. 그런데 저성장 시대에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우선 먹어야 살잖아요. 여기에 녹색이 필요하죠.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겠다면 녹색은 없는 겁니다. 생태 가치의 구현은 성장을 저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정부가 말하는 녹색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구호지요. 환경 단체에서 이야기하는 ‘녹색’은 가치의 보존이지요. 우리가 자연환경 자체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치를 보존하는 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이야기할 때 돈으로 환산을 하잖아요? 그것도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 자체가 가지는 가치성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돈으로 환산하다 보면, 계량하다 보면 항상 양보를 해야 합니다. 계량화라는 도구를 갖다 대면 사람들은 어떻게 인식을 하느냐? ‘이곳은 좋은 곳이니, 물들여서는 안 돼’라고 생각하던 사람도 계량화하면 그 가운데 50 정도는 양보하자. 이렇게 나온다는 거죠. 그것이 항상 문제가 돼요. 우리가 가치의 인정을 너무 계량화해서는 안 되겠다. 정부와 시민 단체는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성장을 이야기할 때, 시민 단체는 녹색을 통해 균형을 맞추는 거죠. 지금은 녹색도 성장도 모두 정부가 하려고 하잖아요. 그리고 시민 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면 이 사람들은 원래 반대를 위해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다. 생명에 ‘대안’이 있나요? 생명의 대안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항상 대안을 내어놓으라고 해요. NGO는 대안을 내어놓는 단체가 아닙니다. 가치를 지키는 단체가 NGO지요. 그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을 인정해야 파트너가 되는 거죠. 계량화된 것은 대안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가치의 문제에서는 대안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시민 단체에게 대안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결국 지속 가능한 삶을 저해하는 것이죠.”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이 운동과 가치를 전할 수 있을까?]

“사실상 가장 중요한 문제죠. 우린 영리 단체가 아니잖아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생적으로 회원들을 많이 확보해서 회원들의 후원금이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를 해서 그래도 기본적으로 돈 걱정 없이 활동을 한다면 가장 훌륭한 시민 단체가 되겠지요. 돈에 속박이 되면 일단 속박된 자체가 뭡니까? 내가 특정 기업, 단체의 돈을 받았어요. 그러면 다음에 그와 관련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싸울 수 있느냐는 거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민 단체는 스스로 어떤 사업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후원 회원의 확보가 가장 중요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새로운 후배 활동가를 생각한다면 기본적인 생활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걸 위해서는 일반 시민들의 후원이 필요하지 특정 기업이나 관의 지원을 받게 된다면 결국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때로는 기업의 후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럴 때라도 단체보다는 시민이 혜택을 받는 영역에 사용해야겠죠. 특히 부산은 기부 문화에 굉장히 인색한 편인데, 이런 기부 문화가 좀 더 활성화된다면 시민 단체들이 훨씬 근원적인 부분에서 다양한 운동들을 지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후원 회원을 갑자기 늘리는 뾰족한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 단체의 경우, 아직 사단 법인이 아니라 사단 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을 올 해 할 거고, 그러고 나면 조금 더 늘어날 수 있겠죠.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나머지는 우리의 활동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늘여가는 것이죠.”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이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운동이란?]

“아무래도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재활용이죠. 사실 우리나라는 재활용을 상당히 잘하는 편입니다. 비교적 우리나라가 조금 약한 부분이 물입니다. 우리나라는 개발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물과 관련된 것이거든요. 댐 건설이나 4대강 사업과 같은. 그런데 우리나라의 물 소비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아마도 유럽의 3~4배는 될 겁니다. 우리가 유럽만큼만 절약한다면 지금의 댐 가운데 절반은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도 물과 관련한 절약을 실천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자면 목욕탕이나 욕실에서 샤워할 때 물을 계속 틀어놓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 물을 잠그기만 해도 그것이 습관이 된다면 꽤 상당한 양을 아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한 셈이지요.”

[참고문헌]
  • 『한겨레 신문』(http://www.hani.co.kr)
  • 습지와 새들의 친구(http://wbk.kr)
  • 인터뷰(습지와 새들의 친구 사무국장 김경철, 201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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