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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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文學-洛東江 |
영어의미역 | Busan Literature and the Nakdong River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최원준 |
[부산 문학에 비춰진 낙동강]
우리는 흔히 낙동강(洛東江)을 민족의 젖줄이라 부른다. 강원도 태백산 줄기에서 발원하여 부산 명지, 하단포에 이르기까지 늠실늠실 유장하게 흐르며 많은 생명들을 잉태하고 살찌우기에 그렇다. 낙동강의 풍부한 수원으로 다양한 ‘강 것’들을 기르고, 비옥한 토지에서 풍성한 ‘먹거리’들을 생산해 사람들을 먹인다.
물줄기 곳곳에 마을을 만들고 너른 평야를 통해 오곡백과 풍요로운 곡창 지대를 들여앉혔다. 여러 나루와 장(場)에는 백화 만물(百貨萬物)이 넘쳐나고, 그 물자들로 사람들의 도시를 키워 냈다. 이렇듯 넉넉하고 풍성하여 ‘어머니’ 같이 자애로운 강이 바로 낙동강이다.
그러나 정작 낙동강 사람들의 삶은 곤고했다. 넉넉하고 풍성한 ‘어머니의 강’ 이면에는 잦은 홍수와 강의 범람 등 사납고 거친 자연재해가 도사리고 있었고, 강을 통한 외부 세력의 침략으로 수많은 약탈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래서 낙동강의 면면한 흐름 속에는 ‘자연재해’와 ‘전쟁’, ‘침략’과 ‘수탈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이렇게 부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낙동강 유역의 사람들은 꿋꿋하게 이 강에 터를 잡고 끈질긴 삶을 이어 왔다.
현대에 와서는 산업화 과정에서의 오염원 유입과 낙동강 정비 사업 등 인위적인 토목 사업 등으로 인해 낙동강은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낙동강의 흐름을 후세들에게 맑고 푸르게 전해 주기 위한 문화 예술인들의 수많은 노력들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도 낙동강은 민족 역사의 희로애락을 떠안고 유구히 흘러왔고, 결국 그 역사의 흐름이 우리 민족의 구구절절했던 삶과 오버랩 되기에 낙동강은 우리 민족을 대변하는 민족의 강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의 낙동강은 부산 문인들에게도 여러 성격으로 비춰졌다. ‘유장 천 삼 백리’의 도도한 흐름의 장대함, 비옥한 토지의 풍요한 젖줄이 되어 주는 ‘대지의 어머니’ 등으로 묘사되는 반면, 모든 것을 쓸어 가는 냉혹한 약탈자의 모습으로도 변이된다. 또한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맞물려 민족의 영광과 고난의 역사를 대변해 주는 매개물로 치환되기도 한다.
[한시에서 그려지는 낙동강]
문학 속 낙동강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다. 철마다 얼굴을 바꾸는 자연환경과 수많은 지리적 여건, 물길 따라 정착한 낙동강 사람들의 삶과 지역적 정서, 일제 강점기부터 6·25 전쟁, 근대화 과정의 역사적 사건 등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오롯이 담아 흘렀던 강이기에 그러하겠다.
낙동강은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그 유역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시대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오래 전부터 인간에게 끊임없이 내어 주는 넉넉한 젖줄이자 삶터였다. 강역에서 소금을 만들고, 오리 사냥과 고기잡이로 생업을 꾸려 갔던 것이다. 이러한 낙동강의 역동적인 삶을 옛 사람들도 주옥같은 시편으로 남기고 있다.
노지오염만곡우(鹵地熬鹽萬斛優)[염전에서 굽는 소금 만 섬이 넉넉하니]
일연강반상강주(一秊强半上江舟)[일 년의 거의 반은 배 타고 살아가네].
- [이학규(李學逵)[1770~1835]의 시 「금관기속시(金官紀俗詩)」 중에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과 녹산동의 강가 마을들은 낙동강의 완만한 흐름으로 하중도가 잘 형성되어 있었다. 때문에 바다와 맞닿은 명지도(鳴旨島) 등 하중도에는 깨끗한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 산업이 널리 발달했다. 특히 가마솥에서 구운 명지 소금은 맛도 좋고 품질도 최상품이라, 낙동강 하구의 생산품 중에서도 귀하고 중요한 특산품이었다. ‘소금 만 섬’에 ‘일 년의 거의 반’을 배로 부릴 정도로 생산량이 많았던 것이다.
층명호묘출원하(層溟澔淼出圓荷)[구비진 바다 가득히, 둥근 연잎처럼 솟은 곳]
사십부연십백가(四十釜煙十百家)[마흔 개의 소금가마 연기에 수백 집이 먹고 살아 가네].
- [허훈의 시 「명호염연(鳴湖鹽烟)」 중에서]
허훈(許薰)[1836~1907]은 ‘둥근 연잎’ 모양을 한 명지도[현 명지동]와 그곳에서 염전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 마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흔 개의 소금가마’에서 피어오르는 ‘소금가마 연기’는 명지도 마을의 독특한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지일가가사압귀(至日家家射鴨歸)[동지 되면 집집마다 오리 사냥 그만두니]
내주시후매전희(萊州市後賣全稀)[동래에선 동지장 지나면 전혀 사지 않는 때문이리]
이래흡유어장신(邇來恰有漁場信)[그래도 이 이후론 때마침 어장이 형성되어]
대구신상분외비(大口新嘗分外肥)[대구어의 새로운 맛 본래보다 더 살찌다네].
- [이학규의 시 「금관기속시」 중에서]
낙동강 포구에 오리가 많아 오리 사냥도 이 지역민들의 좋은 생계 수단이었는데, 이 오리의 수요지는 주로 동래였다. 왜인들이 오리 고기를 좋아하였으나 동지가 지나면 고기의 맛이 떨어진다 하여 매매가 중단되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는 대구가 진해만 쪽으로 모여드는 계절이라, 대구잡이로 또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도두정마환호공(渡頭停馬喚蒿工)[나루터에 말을 매고 사공을 부르니]
강녀조주불외풍(江女操舟不畏風)[아낙네가 바람 두려워 않고 배 저어 오네]
어포범장노엽외(漁浦帆檣蘆葉外)[어촌 포구 배의 돛대는 갈대 잎 밖으로 보이고]
주촌리락행화중(酒村籬落杏花中)[주막 촌 울타리가 살구꽃 속에 있네]
산배칠점성형열(山排七點星形列)[산은 일곱 점의 별 모양으로 벌여 섰고]
수작삼차자화동(水作三叉字畵同)[물은 셋으로 갈려 글자 획과 한 가지로구나]
각망봉래지불원(卻望蓬萊知不遠)[봉래가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알겠네]
취량동반해연공(鷲梁東畔海連空)[취량 동쪽 가로 바다가 하늘에 이어졌네].
- [신익황의 시 「칠점산(七點山)」 중에서]
많은 선비들과 시인 묵객들이 수려한 낙동강의 절경에 반해 강을 노래했다. 신익황(申益愰)[1672~1722]도 칠점산과 삼차수 주변의 아름다운 낙동강 풍광을 잘 그려 내고 있다. 낙동강의 한가로운 정취가 한껏 묻어나는 시편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 말을 매고 사공 아낙네의 배를 부르는데, 배 뒤로 멀리 살구꽃 핀 포구의 주막 촌이 정겹기만 하다. 나루터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감동진(甘同津)의 구포 나루였으리라.
[풍요롭고 자애로운 어머니]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산 줄기에서 기나 긴 물길을 연다. 물길은 새로운 큰 물줄기를 만들고 일천삼백 리를 도도히 흘러 생명의 젖줄이 된다. 때문에 낙동강은 마치 어머니 품 같이 푸근한 사랑으로, 어릴 적 떠나왔던 꿈의 고향으로 풍요롭고 자애롭게 다가온다.
낙동강 명지 포구 느린 물길 앞에 눕다./ 대마등 샛바람이 억새밭으로 서걱서걱/ 어두운 귀 하나 맑게 씻어내다/ 모래톱 사이 늙은 어선 두어 척/ 물길 거슬러 명지도로 돌아가다./ 포구는 여인처럼 그 허벅진 몸 열어/ 낙동강- 참 오래된 길손과 긴 잠을 청하다/ 부화한 숭어 새끼 떼는 찰박찰박~/ 글썽이는 물결에 제 몸들 부비고/ 종소리로 우는 명지 앞바다/ 깊은 밤 내내 젖몸살로 뒤척이다.
- [최원준의 시 「북망(北邙) -명지 포구」 전문]
포구 마을은 평온하고 풍요롭다. 하구에 몸을 눕힌 강은 생명의 기운으로 ‘젖몸살’을 앓고, 갓 부화한 ‘숭어 새끼 떼’를 ‘찰박찰박’ 키워 낸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어선’에게 길을 열어 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귀’를 연다. 자애롭고 포근한 어머니의 전형이다.
꼬리 긴 물살이 지나간다./ 흘러가는 소리를 먹고 사는/ 때묻은 바람이 지나가는 둔치/ 물너울에 옷깃을 적시고 있다./ 은구슬처럼 날아가는 물수제비/ 오래 된 마을에 피는 무지개를 본다./ 물수제비 뜨는 소리로 피는/ 오래된 마을 흠뻑 무지개에 뜬다.
- [유병근의 시 「호포에서」 중에서]
삼랑진 가는 낙동강변/ 강가에 늘어선 물버들의 파란 싹들이/ 강에다 연두색 풀물을 들이고 있다.// 얼음물에 속옷을 헹궈 내던 어머니의/ 손마디마다 풀물이 배어든다.// 유년의 삶이 봄 햇살을 타고 강물 위에/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정오// 오십 년 전 앵돌아져 간 그가/ 봄 한나절 푸른 물든/ 저 강을 보고 있을까.// 강물이 지난 상처를 끌어당겨/ 흐르고 있다.// 물안개 일 듯 강바닥에 드리운/ 겨울 그림자들이 푸른 하늘 속으로/ 속속 빨려들고 있다.
- [이해웅의 시 「봄강」 전문]
한편 유병근, 이해웅의 시를 보면 낙동강은 대대손손 우리 민족이 살아왔던 곳이자 살아가야 할 곳이다. 이곳에는 ‘무지개가 뜨는 오래 된 마을’과 ‘속옷을 헹궈 내던 어머니’가 ‘지난 상처를 끌어당겨 흐르는’ 낙동강과 함께 길고 긴 역사로 흐른다. 대를 이어 가며 강변 마을에 살면서, 유년의 기억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살아 출렁이는 강물’로 평화롭게 흘러가는 것이다.
[꿈속 고향 같은 이상향]
낙동강 대저 방면 제방[강서구 대저 2동]에는 낙동강을 주제로 아름다운 우정을 시로 나눈 시비가 하나 서 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1920~1968]과 박목월(朴木月)[1916~1978}의 시편들이다. 강은 봄물 들면서부터 푸른 바람과 맑은 물길을 내내 흘려보내고, 해가 저물고 밤이 오면 나그네 하나 반가이 맞이하는 마을을 하나 따뜻하게 내어 준다.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은 강 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조지훈의 시 「완화삼」 전문]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의 시 「나그네」 전문]
박목월과 조지훈은 강 마을의 정한을 시로써 서로 화답하며 이상향을 노래했다. ‘물길 칠백 리’를 따라가다 보면 ‘나그네 긴소매’가 꽃잎에 젖고 저녁노을의 강 마을에는 술이 익는다. 그 길 따라 나그네는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구름에 달 가듯이’ 이상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과 함께 평화롭게 흘러온 강을 떠올리면, 마치 꿈속 같이 편안하고 한 폭 그림처럼 그윽하다. 마치 두고 온 고향 마을이나 풍요로운 이상향의 장소와 다름 아닌 것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변주]
낙동강의 그 깊고 은근한 흐름은 변치 않는 지고지순한 여인의 모습으로도 변환된다. 저물 무렵의 강을 지나며, 옛사랑을 못 잊어 ‘불에 덴 가슴’은 노을이 들고, 또 다시 그 가슴에 뜨겁게 ‘불’을 지피고 ‘피’를 지진다.
그해 가을의 강(江)이/ 필름을 감고 있다.// 차창이 바꾸어 찍는/ 몇 장 사진으로도/ 뜨거워라 불아 덴 가슴/ 갈피마다 노을이 든다.// 어디서 하늘이 밀려와/ 여기 이 江心을 태우는가.// 이제 안타까울 것도 없는/ 옛 낙형(烙刑)의 흔적 위에/ 누가 다시 불을 지피는가/ 단풍이 피를 지지는데.
- [김창근의 시 「물금을 지나며」 중에서]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는 이의 사랑하는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마디 말없이 사랑하다가 헤어지자는 말 한 마디 없이 송두리째 헤어지는/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비명 없이/ 찢어지기/ 강은 그렇습니다.
- [신진의 시 「강·헤어지는 사랑」 전문]
사랑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마음은 어느 수줍은 첫사랑의 여인이나 강심(江心)이나 다를 바 없다. 속으로만 앓아오다 결국은 사랑의 고백조차 못하고 ‘송두리째 헤어지는 사랑’을 시인은 절정의 아름다움이라 노래한다.
[대자연의 준엄한 심판자]
자애로운 ‘이상향의 고향’ 낙동강은, 한 번씩 대자연의 경외함을 잊지 말라는 듯 인간의 삶을 힘들게 옥죈다. 혹독하고 거친 분노의 화신으로 다가와 인간의 무지와 안일을 ‘자연의 재앙’으로 꾸짖는 준엄한 심판자로 묘사된다. 그리하여 경배의 제단을 쌓게 하거나 제상(祭床)을 올리게 한다.
하늘 밖에서/ 강물이 타고 있다.// 개를 잡아/ 제사를 올리면/ 3일 만에/ 하늘로 부활하는 강물// 밤이/ 먹물을 풀어/ 높은 것 낮은 것 다 지워버려도/ 하늘 끝으로 이어지는/ 우리들의 숨줄이야 어쩌리// 말라붙은 물줄기를 따라/ 낙동강은/ 한 타래 순대국으로 끓고 있다.
- [박현서의 시 「낙동강·46 -제상(祭床)」 전문]
하늘이 가물어 인간의 세상에는 ‘강물이 타고’ 있다. ‘한 타래 순대국으로 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젖줄처럼 강물이 불어나기를 기원하며 ‘개를 잡아 제사’를 올린다. 강을 기대 사는 사람들에게는 ‘물줄기’가 ‘숨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유월 어느 날/ 낙동강 홍수 끝나고// 강변 모래톱에/ 꽃고무신 한 짝이/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네.// 아무도 모르리/ 강 건너 뱃사공 집 어린 소녀가/ 홍수에 떠밀려 죽어간 줄을// [중략]// 유월 어느 날/ 낙동강 홍수 끝나고// 강변 모래톱에/ 빈 물새 알 하나가/ 물결에 밀리고 있었네.// 아무도 모르리/ 어미 물새 슬피 울며 갈밭을/ 헤매다가 헤매다가 날아간 줄을.
-[이달희의 시 「홍수 끝나고 -낙동강·6」 중에서]
가뭄 뒤에는 또 홍수가 마을을 휩쓴다. 이렇듯 강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제물을 삼는다. 그것이 ‘뱃사공 집 어린 소녀’이든, ‘강변 모래톱에 빈 물새 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홍수는 인간이 강을 개발하면서부터 시작된 자연의 선전 포고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의 이기에 파국으로 맞서다.]
이러한 강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무분별한 산업화와 난개발은 강을 ‘경외의 대상’에서 ‘이기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물길을 막아 물을 가두고, 낙동강 주변마다 공단이 들어선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많은 지류에서는 공단 폐수와 생활 하수를 낙동강으로 끊임없이 쏟아낸다. 하여 낙동강 주변 생태계는 숨이 막혀 ‘기침’을 하거나 아예 ‘흐르지 않는 강’이 되어 갔다. 강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밤마다 강물은 기침을 한다./ 새들도 밤새도록 기침을 한다./ 작은 섬들도 따라 기침을 한다.
-[박철석의 시 「을숙도에서·2」 전문]
수만 년을 흘러서/ 오늘 이 하구(河口)에 다다른 너의 긴 여로는/ 죽음과 고뇌와 번민으로 시름하여/ 너의 말간 얼굴은/ 어느덧 타 버렸다.// 잃어버린 꿈과 같이/ 가슴에 흐느적거리는 슬픔을 안은 여인같이/ 너의 끊임없는 흐름을 멈추게 한 상채기/ 전신에 진창을 뒤집어씌우고/ 흐를 수 없게 먹물을 뿌린 사악한 손들/ 그것은 영혼을 뱉아 버린/ 마음이 가난한 백성들의 소행이었다.// 옛날에 흐르던 강은 멎고/ 지금은 남루한 삶의 찌꺼기/ 파멸한 삶의 목소리만 아우성친다.
- [김규태의 시 「흐르지 않는 강(江)」 전문]
새들은 더 이상 날아들지 않을 것이다./ 섬에서 불어오는 갈대바람과/ 어머니 살속 같은 모래벌에 유년을 부비며 커온/ 이곳 장림동(長林洞)의 아이들까지도/ 까마득히 잊게 될 것이다./ 태초에 새들이 살았고/ 새들 따라 정처 없이 떠나온 사람들/ 언제부턴가 땅을 일구며 살아 왔다는 것도/ 끝내는 잊게 될 것이다./ 어제의 새들이 어디론가 떠나가/ 오늘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 [최영철의 시 「을숙도 근처」 전문]
인간의 오만한 자연 훼손은 결국 인간의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새들’과 ‘새들 따라 정처 없이 떠나온 사람들’도 ‘떠나가 돌아오지 않는’ 죽음의 강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어머니의 살속 같은’ 강이 우리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죽음의 늪’으로 변해 감을 경고하고 있다.
[낙동강 보호에 목소리를 높이다]
이에 낙동강을 걱정하는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대한민국 최초의 순수한 민간 환경 단체인 낙동강보존회를 출범시킨다. 여기에서 특기할 부분은 「낙동강보존회 선언문」이다. 낙동강보존회에 의하면 「낙동강보존회 선언문」은 “환경 선언문으로는 대한민국 최초의 것이고, 1990년대에 들어와 활발하게 일어난 수많은 환경 운동의 정신적 정초가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낙동강은 천연(天然)의 빛과 숨소리를 잃어가고 있다./ 푸른 하늘과 구름이 맑게 투영되던 강심(江心)은 이제 흐려져, 그 하늘빛과 그 구름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 수려한 강변과 모래톱은 남루하여 강은 애타게 신음하고 있다. 푸르른 강물에 독(毒)한 갖가지 폐수를 버리는 저 자연 파괴의 손길 때문에 어족(魚簇)들은 병들어 가고, 새들은 오염된 강구(江口)의 모래톱에서 사라져 가는 먹이를 찾아 방황하고 있다. 빛과 푸름과 생기(生氣)와 숨소리를 잃어가는 낙동강을 살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고유한 임무요, 권리이다./ [중략]/ 한번 잃어버린 생태계는 복원되지 않으며, 어떤 대가(代價)로서도 보상받을 수 없다. 자연의 평형이 깨뜨려지고 생태계(生態系)가 허물어진 곳에서는 조수(鳥獸)는 살 수 없으며, 조수가 살 수 없는 황폐한 환경에서는 우리 인간(人間)도 살아갈 수 없음은 자명(自明)한 일이다./ 자연 보호는 바로 인간의 보호임을 소리 높여 외치며, 다음과 같이 공동의 확신을 선언한다./ 낙동강은 우리 고장의 식수원(食水原)이기 때문에 당대(當代)와 후대(後代)들의 생존환경 확보를 위해서 최대한 보전(保全)되어야 한다./ 낙동강은 물, 토양, 대기(大氣), 어패, 조수류(鳥獸類)와 자연 생태계의 중요한 표본 종을 수용하고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寶庫)이므로 수질 오염, 대기 오염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낙동강의 환경은 그 환경의 자정(自淨) 능력을 초과할 정도로 고농의 유독(有毒) 물질이 방출 투기되어서는 안 되며, 그로 말미암아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해독을 가져와서도 안 된다. 따라서 이러한 해독 작용, 오염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정당한 투쟁은 반드시 지지를 받아야 한다./ [중략]/ 낙동강은 유구한 흐름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 고대 문화(古代文化)의 발상지이자 영남 문화권(領南文化圈)을 잉태한 중심적 입지 환경이므로 문화사적(文化史的) 견지에서도 보전(保全) 발굴되어야 하며, 미래의 영남 문화권 개발을 위해서도 환경 생태계는 지켜져야 한다.
- [낙동강보존회 「낙동강보존회 선언문」 중에서]
이러한 문화 예술인들과 지식인들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은 강을 막아 하구언을 만들고 4대강 정비 사업이라는 미명하에 강을 뒤엎고 보를 세우는 등, 계속해서 강의 숨길을 조여 대고 있다. 이에 문학인들은 우리 생명의 모태, 어머니 ‘낙동강’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큰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산을 구비 돌아/ 들판을 가로질러/ 유장하리니 산하의 앞길.// 뜻밖에 가로질러/ 앞길 자르며 만나게 된 것들/ 반 자연의 제방 또 제방/ 인공의 제방.// [중략]// 목이 콱콱 막힌다./ 긴 터널 지나며/ 시궁창 땟국에 얼죽음이 된다./ 자유에 도달하기 전/ 앞서 찾아온 사지마비.// [중략]// 흐르는 것은/ 불모의 노래/ 그마저 잃어버린/ 우리들 미래의 꿈의 뼈 부스러기/ 그 부스러기의 흐느적거리는 흐름.// 하구언 안에서 허우적이며 맴돈다./ 유치장에 갇혀/ 폐수 마시고 죽은/ 물의 영혼이 차곡차곡 쌓인다./ 가라앉아 원혼으로 쌓인다.
- [강남주의 시 「흐르지 못하는 강」 중에서]
장강(長江)의 쓰러지는 앞 물결을/ 뒷 물결이 추스르는 따뜻함도/ 이제는 덧없는 일이다.// 속절없이 하구언에 갇혀서/ 통곡 한번 못하고 썩어만 가는/ 저 눈물의 흰 뼈를 보라.// 을숙도를 갈아엎는 진홍의 노을 속에/ 철새들은 떼 지어 높이 날지만/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도 않는/ 저 녹슨 풍경을.
- [이상개의 시 「낙동강 1」 중에서]
가만 두어라 가만가만 두어라/ 한없이 부드럽고 질긴 곡선 속에도/ 먹줄을 놓고 한 획으로 내리그은/ 준엄한 말씀의 뼈가 있다 누가 거역 하겠는가/ 바람의 길과 물의 길은 사람의 길과는 달라/ 막거나 자를 수도 없는 천명이니/ 그 천명의 심줄 앞에 누가 삽질 하는가/ 갇힌 물은 물이 아니므로 흘러야 하고/ 떠나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다는 거/ 강은 인간을 살리나 인간은 강을 살릴 수 없다는 거/ 눈 있고 귀 있는 자(者 )들어 보라/ 낙동강 금모래 은모래 우는 소리/ 살아서 서럽고 외로운 우리 어머니/ 어찌 살고 어찌 살고 다리 뻗고/ 북가슴 치며 우는 소리.
- [박정애의 시 「낙동강·1」 중에서]
그리하여 시인은 낙동강을 위해 모두가 화해하자고 한다. ‘호흡 곤란으로 뒤척이는 낙동강’에게 ‘네 피’와 ‘내 피’로 ‘수혈’을 하자고 한다. 사람과 자연이, 정부와 국민이, 상류 사람과 하류 사람이, 낙동강과 더불어 다 함께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호흡 곤란으로 뒤척이는 낙동강에/ 네 피와 내 피를 조금씩 덜어/ 수혈을 하자.// 푸른 날개를 달고 기슭에 무, 배추, 벼, 보리, 밀 우리들의 양식을 기르고/ 을숙도에 새들을 불러 모으고/ 밤이면 별들에게 속삭일 수 있을 때까지/ 푸른 피를 나누어 주자.// 눈 뜬 그대는/ 낙동강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가.
- [강영환의 시 「낙동강에 수혈을 하자」 중에서]
[수탈이 악순환 되는 질곡의 장소]
예부터 낙동강은 물자의 주요 운송로였다. 구비마다 마을과 나루가 만들어졌고, 크고 작은 장과 객주가 들어섰다. 이 지리적 요충지를 침략자들은 그들의 약탈의 전진 기지화 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이들의 수탈에 견디지 못한 양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유랑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내 사랑의 강!/ 낙동강아!/ 칠백 리 굽이굽이 흐르는 네 품속에서/ 우리들의 살림살이는 시작되었다./ [중략]/ 초조와 불안과 공포가/ 나흘 낮 사흘 밤/ 우리들의 앞가슴을 차고 뜯고/ 울대처럼 선 왼 산맥의 침묵이 깨어질 때/ 뻣뻣한 대지를/ 고슴도치처럼 한 손에 휘어잡고 메어친/ 꽝하는 너의 최후의 선인은/ 우리들의 절망 바로 그것이었다./ [중략]/ 아! 그리운 내 사랑의 강!/ 낙동강아!/ 너는 왜 말이 없느냐/ 너의 슬픔은 무어며/ 너의 기쁨은 무어냐.
김용호(金容浩)[1912~1973]는 1938년 『사해공론(四海公論)』에 197행으로 된 장시 「낙동강」을 발표했다. 일제의 수탈을 못 견디고 유랑의 길을 떠나는 민족의 참상과 애환을, 민족의 강 낙동강을 배경으로 노래한 것이다.
“우리 조마이섬 사람들은 지 땅이 없는 사람들이요. 와 처음부터 없기싸 없었겠소마는 죄다 뺏기고 말았지요. 옛적부터 이 고장 사람들이 젖줄같이 믿어 오는 낙동강물이 맨들어 준 우리 조마이섬은…….” 건우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개탄조로 나왔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 자기 것들이라 믿어 오던 땅이, 자기들이 겨우 철들락 말락할 무렵에 별안간 왜놈의 동척 명의로 둔갑을 했더란 것이다……. 건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다시 국회 의원, 다음은 하천 부지의 매립 허가를 얻은 유력자……. 이런 식으로 소유자가 둔갑되어간 사연들을 죽 들먹거리더니, “이 꼴이 대고 보니 선조 때부터 둑을 맨들고 물과 싸와가며 살아온 우리들은 대관절 우찌 대능기요?”
부산이 낳은 한국리얼리즘 문학의 거장,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1908~1996]은 그의 소설 「모래톱 이야기」에서 ‘조마이섬’이라는 낙동강 하중도 마을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기구한 삶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상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강의 범람으로 만들어진 모래톱에서, 자손 대대 낙동강과 싸워가며 일궈낸 자신들의 땅이, 그들과 무관한 사람들에 의해 소유가 바뀌어 가는 모습에서, 낙동강 사람들의 신산했던 삶과 질곡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들판 끝 마을/ 죽어서 묻힐 묘지 설 땅이 없다./ 무가 빠져나간 무밭과/ 배추가 빠져나간 배추밭/ 위로 모래가 뿌옇게 일어서고 있었다./ 얼지 않는 강물이 차갑게 밤 속으로 흘러갔다./ 마른 삼다발이 뒤꼍에서 부스럭대며/ 지난여름의 무성함을 이야기하고/ 명례는 강가에서 늘/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다.
- [이유경의 시 「명례(明禮)에서」 중에서]
그리하여 정작 강 주변의 땅에는 낙동강 사람들이 묻힐 곳조차 없다. ‘지난여름의 무성함’만 안타까이 읊조리며, ‘모래가 뿌옇게 일어서’는 ‘강가에서 늘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면면히 이어지는 낙동강 사람들의 끈질긴 삶]
이렇게 예고 없는 자연재해와 외부인들의 수탈, 산업화에 의한 강의 오염 속에서도 낙동강 사람들은 낙동강에 기대어 끊임없이 낙동강과 관계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 가고 있다. 혹독한 환경의 삶터에서도 툭툭 털며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 여봐란 듯이 생업을 준비하고 또 낙동강 물길을 묵묵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어둠 찍어 올린다./ 창날보다/ 질긴 손가락./ 낙동강(洛東江) 칠백 리(七百里)/ 친친 감기는/ 그 끝/ 물방울/ 가락지보다 빛나고 있다./ 철새 한 마리/ 물방울 사이의/ 햇살을 쪼다가/ 끝내/ 건너편 바다로/ 날아간다.
- [양왕용 「재첩잡이 여인- 하단사람들·7」 전문]
물에 물살이 부딪쳐 이루는 작은 그늘에 숭어가 썩고 몰리는 일웅등 첫물까지 파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이응벽이 삭고 다시 사람들이 일어서고 하는.
- [박태일의 시 「명지 물끝·1」 중에서]
장어발이 통발 멀리 드문드문 갈잎이 되받아 주는 청둥오리 울음소리 마지막 찌 끝에 몸을 얹고.
- [박태일의 시 「명지 물끝·5」 중에서]
어디선가 날려 오는 연기 속에 소금기가 가득하니/ 이 인근이 옛날 소금 많이 만들던 명지도가 아니던가/ 소금가마 솥단지마다 흰 연기 물씬물씬 났다더니/ 새떼가 까르륵 웃고 지나간다.
- [조해훈의 시 「명지에서」 중에서]
낙동강 사람들은 낙동강의 물길 속에서 재첩을 캐고, 소금을 굽고, 파를 키우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낙동강의 그 유장하고 넉넉함을 배워서일까? 그들의 삶은 끊이지 않는 낙동강의 흐름처럼 질기게 이어져 가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과 낙동강]
일제 강점기에서 겨우 해방되고 난 이후, 곧이어 우리 민족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맞게 된다. 남과 북이 낙동강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치열한 전투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강물 위로 우리 겨레의 젊은이들이 꽃잎처럼 흩어져 흘러갔고, 강물은 내도록 붉은 피비린내로 점철되었다.
낙동강 푸른 물줄기 굽이 흘러 칠백 리/ 고요한 찬 밤은 짙어 가는데/ 달빛 어린 강물은 정회를 자아낸다.// 오랑캐들의 더운 피로 물들었던 이 강물/ 코 찌르는 피비린내 가시기도 전에/ 내 다시 강을 지켜/ 이지러진 달빛 아래 보초를 섰다.// 강이여 말하라/ 이 겨레의 슬픈 운명을/ 아 비장한 내 노래야/ 흘러 흘러 내리어라/ 저 강물 물결 타고.
김용호의 「낙동강」이 일제 침략의 산증인이라면, 양명문의 「낙동강」은 동족상잔인 6·25 전쟁을 견뎌낸 강이다. 두 작품 다 붉은 피로 얼룩진 낙동강의 슬픈 현대사를 노래했다. 그 핍박과 침탈의 역사가 우리 기억에 남듯, 낙동강 골골의 물길 위에도 각(刻)을 새기듯 깊게 패어 있는 것이다.
나룻배는 끊어지고/ 강나루에는 고무다리가 놓였다고 했다.// 그 고무다리 위로/ 검은 안경을 쓴 흑인 병사들이/ 무서운 탱크를 몰고 줄지어 건너갔다./ 누나 등에 업혀 움츠린 채 바라보던/ 낯 선 그 풍경!// 아재도 사촌 형도 전쟁에 가고 없고/ 강물은 점점 붉어지고 있다고 했다.// [중략]// 신작로 큰 길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울리며/ 어디론가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고// 잠들기 전까지 삐이 이십구 소리가/ 지붕 위에서 웅웅거리며 맴돌고 있었다.// 붉디붉게 흘러넘치는 강물을 건너/ 붉은 황칠을 한 귀신들이 꿈속으로/ 무시무시하게 헤집고 들어왔다.
- [이달희의 시 「고무다리 -낙동강·17」 중에서]
이달희의 시에서는 어린 유년 시절의 전쟁을 생생하게 목격한 내용을 진술하고 있다. 낙동강 다리가 끊어진 후 고무다리로 흑인 병사가 탱크를 몰고 낙동강을 건너고, B-29 폭격기는 지붕 위로 웅웅거리던 유년 시절의 공포는, 꿈마다 흘러넘치는 강물을 건너는 ‘붉은 황칠을 한 귀신’을 만나게 된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밤마다 악몽을 꾸곤 했을까?
[다시 돌아와 쉬는 안식의 강]
이렇듯 수많은 희로애락의 역정을 흐르고 흘러 낙동강은 바다 앞 하구에 몸을 누인다. 넉넉한 품성으로 편안하고 풍요한 저녁을 맞는다. 사람과 물이 함께하고, 노동과 휴식이 같이하며, 화합의 물길을 이루고 고난과 핍박의 역사를 흘려보낸다. 그리고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함께 평화롭고 안락한 잠을 청한다.
모든 이들이 물로 되돌아오는/ 저녁 강가/ 나는 물이 되어/ 물과 더불어/ 돌아오는 모든 이들을 기다린다.// 더디게 어둠이 발목사이로 고이고,/ 속죄의 귀가를 서두르는/ 우리의 그리운 사람들은/ 저녁 안개처럼 다가온다./ 아무도 올 수 없는 황량한 벌판을 지나/ 강가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삽질을 거두어/ 강에 씻고/ 그 강(江)은/ 그들과 함께 붉게 물이 든다.// 머리카락마다 배어있는 고난도/ 물따라 흘러가고/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운 사람은/ 물따라 되돌아온다.// 모든 이들이 휴식을 취하는/ 깊은 어둠의 강가/ 나는 어둠이 되어/ 물과 더불어/ 잠들어 있는 그들 곁에 누워 잠을 잔다.
- [최원준의 시 「저물 무렵」 전문]
강은 생명의 탯줄이자 모태이다. 거친 물 돌이로 흐르다 전쟁의 붉은 피를 적시고, 질곡의 현실에 목 놓아 꺼이꺼이 울다가도 술 익는 하구 마을에 와서는 한없이 풍요롭고 자애로워진다. 그리고 ‘어머니 품’ 같은 바다와 합치면서 아름다운 흐름의 최후를 맞이한다. ‘비로소 자기를 완성’ 하는 것이다.
서걱이는 갈숲에 떨어지는/ 가을 햇살처럼/ 강의 최후는/ 부드럽고 해맑고 침착하다.// 두려워 말라, 흐름이여/ 너는 어머니 품에 돌아가리니/ 일곱 가지 슬픔의 어머니.// 죽음을 매개로 한 조용한 전신(轉身)./ 강은 바다의 일부가 되어/ 비로소 자기를 완성한다.
- [허만하의 시 「낙동강 하구에서」 중에서]
강을 향해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우리의 심장에서 낙동강의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서로 소통하며 흐르는 낙동강의 그 유장한 물길의 소리가…….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을 흔들며 비비는 소리가, 몸이 젖는 것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비늘 비비는 소리가…….//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물길의 소리가.
- [강은교의 시 「물길의 소리」 중에서]
[면면히 이어온 민족의 젖줄]
낙동강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영욕의 세월을 함께 안고 흐르고 있다. 때문에 낙동강의 길고 긴 물길의 여정은 끝이 없다. 궁극에는 빛나고 영광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면면히 이어온 민족의 터전을 노래하며 희망찬 미래를 강에 풀어놓는 것이다.
보아라 가야 신라 빛나는 역사/ 흐른 듯 잠겨 있는 기나긴 강물/ 잊지 말라 예서 자란 사나이들아/ 이 강물 네 혈관에 피가 된 줄을/ 오! 낙동강 낙동강// 끊임없이 흐르는 전통의 낙동강/ 산 돌아 들을 누벼 일천 삼백 리/ 구비구비 여흘여흘 이 강 위에서/ 조국을 구하려는 정의의 칼로/ 반역의 무리들을 무찔렀나니/ 오! 낙동강 낙동강.
이은상(李殷相)[1903~1982]은 민족의 빛나는 역사와 함께 유장히 흐르던 낙동강을 ‘사나이’들의 ‘혈관에 피’로 묘사하며, 낙동강을 ‘애국 애족’의 발원지로 노래하고 있다.
유치환은 「겨레의 어머니여, 낙동강이여!」를 발표하여 낙동강을 ‘겨레의 어머니’로 비유하며 애절한 낙동강의 사랑을 읊었다.
태백산 두메에 낙화한 진달래꽃잎이/ 흘러흘러 삼랑(三浪)의 여울목을 떠 내릴 적은/ 기름진 옛 가락(駕洛) 백리벌에/ 노고지리 노래도 저물은 때이라네./ ‘나일’이여, ‘유프라테스’여, ‘갠지스’여,/ ‘황하’여/ 그리고 동방의 조그만한 어머니, 낙동이여./ 저 천지 개안(開眼)의 아득한 비로 삼날부터/ 하늘과 땅을 갈라 흘러 멎음 없는 너희는/ 진실로 인류의 거룩한 예지(叡智)의 젖줄./ [중략]/ 겨레의 어머니여/ 낙동강이여/ 낙동강의 어진 흐름이여/ 차라리 너는 순탄하고 가난한 겨레와 더불어/ 그 애달픈 삶을 바닥하고/ [중략]/ 아아, 너는 진실로 겨레의 크낙한 어머니/ 낙동의 가람이여/ 영원한 겨레의 젖줄이여/ 사랑이여, 노래여.
- [유치환(柳致環)[1908~1967]의 시 「겨레의 어머니여, 낙동강이여!」 중에서]
나일강과 유프라테스, 갠지스, 황하 등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와 낙동강을 동일 선상에 놓음으로써 ‘인류의 거룩한 예지의 젖줄’로 찬양하고, 민족의 영원하고 유구한 발전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낙동강! 우리 민족과 함께 ‘진실로 겨레의 크낙한 어머니’로 흘러온 장강. 그 유장하고 끝없는 흐름의 역사는, 실로 우리 부산의 창대한 미래를 꿈꾸게 한다. 낙동강이 끝까지 흘러 바다로 흘러들 듯, 낙동강에 기대어 사는 부산 사람들도 그 ‘낙동강의 어진 흐름’을 좇아, 끝까지 흐르고 흐를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인생의 큰 바다로 흘러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