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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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德洞南平文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Mandeog Jung-ri Nampyeong Moon 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중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이성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개설]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신라 말기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에서 고려 건국 공신으로 남평 개국백으로 봉해졌던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한다. 만덕 문중의 계파는 의안공파(毅安公派)로, 고려 후기 역사적 발자취를 남긴 문익점(文益漸)이 선조이다.
[명칭 유래]
북구 만덕동은 고려 시대 절터로서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된 만덕사지(萬德寺址)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 지명으로 전해진다. 자연 마을인 상리 마을, 중리 마을, 하리 마을, 사기[절터] 마을 가운데 만덕동의 중심이 되는 본 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남평 문씨가 현 북구 만덕동에 자리 잡은 것은 18세기 전반이다. 조선 전기 문익점의 손자 문평조가 동래 지방에 정착하였는데, 의안공파는 1682년(숙종 8) 기장군 철마면 용천리에서 태어난 문석창(文錫昌)이 결혼 후 분가하여 만덕동에 자리 잡은 후 벼슬길을 마다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정착한 문중이다.
[자연 환경]
만덕동 중리 마을은 마을 서쪽을 가로막은 주지봉과 남쪽으로 함박봉을 배산(背山)으로 조선 시대 서면이나 부산 나들이를 가기 위해 초읍 쪽으로 넘어가던 불태령[부태 고개] 고갯길이 있다. 중리 마을 앞으로 금정산성 남문에서 흘러내리는 만덕천이 있고, 하천 주변에 전답지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뒷산 쪽으로 물이 없어 주로 밭을 일구어 밭농사를 많이 하던 마을이었다.
[현황]
북구 만덕동은 1975년대 남해 고속 도로가 개통된 이후 2013년 현재는 아파트 등 대규모 주택 단지로 변모하였다. 중리 마을도 1980년 주공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는 등 환경적인 변화로 남평 문씨는 현재 9가구만 살고 있다. 문중 재실은 북구 만덕 2동에 있으며, 문중 제향을 올릴 때는 외지에 나가 있는 문중 출신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께 제례를 올리면서 큰 잔치가 벌어진다.
만덕 문중의 인물로 입향조의 4세손인 문치권[1799~1862]이 천하장사로 유명하였다. 당시 만덕 고갯길과 부태 고갯길에 도둑떼가 출몰하여 행인의 물품을 털어 가거나 밤길에 마을에 나타나 도둑질을 하며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문 장사에게 한번 혼이 나서 도망간 이후 만덕 일대에는 얼씬도 못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실존 인물인 문 장사에 대한 전설이 전하여 온다. 만덕천 차밭골 장사 바위에 발자국이 남아 있는데, 이는 문 장사가 여기에서 만덕 당산 나무 옆 청석 바위까지 단숨에 뛰어내릴 때 생겨난 발자국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