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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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詩 |
영어의미역 | Poem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손남훈 |
[정의]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 시인들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한 감흥이나 사상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 장르.
[일제 강점기 부산의 시[1920년~1945년]]
부산은 개항 이후 제국주의 침탈의 관문으로 일찍부터 일제가 대륙 지배의 거점으로 설정한 곳이다. 따라서 지배와 저항이 복잡하게 얽혀든 곳이라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초기 부산 지역 시인들의 작품 또한 근대적 열망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여러 각도로 복합적으로 얽힌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1920년대에는 아직 근대적 의미에서 ‘시인’ 혹은 ‘시단’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부산 출신으로만 한정해 본다면, 동래군 복천동 출신 박차정(朴次貞)[1910~1944]이 『일신』 2호[1928년]에 「개구리 소래」를, 동래군 북면 출신의 김정한(金廷漢)[1908~1996]이 아직 등단하기 전 「뒷집할머니」, 「벼짜는 아가씨」[『조선 시단』 1930년 1월호]를 발표한 정도가 눈에 띈다. 1937년 『생리(生理)』지(誌)의 발간은 일제 강점기 부산의 유일한 시 동인 활동이었다. 유치환(柳致環)[1908~1967]의 주도로 창간된 이 동인지는 유치상(柳致祥), 장응두(張應斗)[1913~1972], 최상규(崔上圭), 박영포(朴永浦)[1913~1939], 염주용(廉周用)[1891~1953] 등이 가담했다.
[해방기 부산의 시[1945년~1950년]]
해방 이후 부산은 일본인의 철수 기지였고, 귀환 동포들이 귀국하는 항구였다. 당시 문인들은 당시의 좌우 대립에 휩쓸려 제대로 된 문단 활동을 하지 못했다. 6.25 전쟁 전 경남여자중학교에 있던 오영수(吳永壽)[1914~1979]가 『백민(白民)』에 시를 발표하면서 나왔고, 손동인(孫東仁)이 『문예(文藝)』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염주용은 6·25 전쟁 전 『문예 신문』을 발간하여 젊은 시인과 고등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마산 출신 김수돈(金洙敦)[1917∼1966]은 해방 이후 부산에서 발간된 최초의 개인 시집 『소연가(召燕歌)』를 1947년 2월에 발간했다.
[6.25 전쟁기 부산의 시[1951~1953]]
6.25 전쟁 당시 부산은 1950년 8월 18일부터 임시 수도가 되었다. 전쟁의 발발로 수많은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면서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의 문인들이 들어왔고, 『문예』지 전시판이 부산에서 발간되었다. 피란 온 문인들은 종군 문인단을 조직하여 피란 문단이 성립되었으며, 광복동 ‘밀다원’을 중심으로 문학적 교류가 활발했다.
[1950년대 부산의 시]
환도 이후 부산 문단은 많은 시인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송영택, 박철석, 박재호, 조영서, 김규태, 정공채, 조순, 강춘장, 조유로, 한찬식, 이보우, 강상구, 이유경, 박태, 서림환, 임수생 등이 그들이다. 이외에도 1960~1970년대 부산 시단의 대표적 시인으로 자리매김할 이형기가 진주농림고등학교 시절 추천 완료했으며, 허만하 역시 당시 대구에 거주하였으나 시단에 데뷔했다.
이 시기 시인들은 『국제 신문』, 『부산 일보』, 『민주 신보』, 『자유 민보』 등에서 근무하며 시를 썼고, 문총 부산지부, 문인구락부, 부산문필가협회 등을 조직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다. 또한 동인 활동도 활발하여 『신작품(新作品)』, 『운석(殞石)』, 『시문(詩門)』, 『시조(詩潮)』, 『현대 문학(現代文學)』, 『Geiger』, 『한글 문학』 등이 발간되었고, 시 전문지를 지향한 『시연구(詩硏究)』, 종합 문예지 『신조 문학(新潮文學)』과 『신군상(新群像)』지가 만들어졌다.
[1960년대 부산의 시]
1960년대 접어들면서 부산 문단은 본격적으로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부산 문단을 형성했다. 1962년 한국문인협회 경남지부가 발행한 『문협』은 부산 문단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64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산지부가 『예총』과 『부산 문예』를 발간했다. 1966년에는 월간지 『문학 시대』가 창간된다. 1967년에는 『부산 문학』이 『문협』을 이어받아 기관지로서의 생명을 이어갔다.
1960년대 부산의 시단 역시 동인지 중심으로 꾸려졌다. 1962년 범시단적 성격의 『시기(詩旗)』가 나왔고, 1963년 종합 동인지 『일요 문학』이 모더니즘을 표방했다. 1964년 『계간 시문예』는 회원 구성이 전국적이었으나 1965년 『신어』는 순수한 부산의 시 동인지였다. 울산 시인이 주축을 이룬 『잉여촌』과 대학 재학생들이 간행한 종합 동인지 『간선』도 특기할 만하다.
1960년대에는 강상구, 이수익, 박태문, 박응석, 김영준, 임수생, 이상개, 김석규, 양왕용, 김용태, 김철 등이 등장하여 부산 시단을 풍성하게 하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1960년대 부산이 이영도, 고두동과 같은 시조 시인들의 활약으로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었다는 점이다. 전통 시 계열의 시인으로는 청마 유치환을 비롯하여 살매 김태홍, 이동섭, 박노석, 박재호, 최계락, 정영태, 이석, 박철석, 서림환, 박송죽, 이상개, 홍두표, 홍준오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앞장서 보여 준 시인은 조향이다. 그 밖에도 구연식, 조순, 이민영, 김규태, 허만하, 이수익, 박태문, 하연승, 조영서, 한찬식, 김영준, 임명수, 김철 등이 활약했다. 1960년대 리얼리즘 계열의 시는 드문 편이나 이형기가 전통 서정시를 쓰다 참여적 성향의 시를 쓰기 시작했고, 임수생, 박응석, 신소야, 손경하는 당대 사회 현실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섰다.
[1970년대 부산의 시]
1970년대 부산 시단은 많은 시인들이 등단하여 매우 풍성했다. 유병근, 김창근, 박지열, 김성식, 이달희, 강남주, 박송죽, 김인환, 배달순, 정순영, 황양미, 이해웅, 박윤기, 정대현, 박청륭, 최휘웅, 신진, 조남순, 하현식, 이승하, 이상호, 차한수, 임종성, 이문걸, 원광, 김수경, 임명수, 양은순, 진경옥, 이윤택 등이 그들이다.
1970년대에도 많은 동인지와 문예지가 있었다. 1972년 간행된 『시인들』은 격월간으로 발행되었으며, 부산시인협회 사화집 『남부의 시』가 1974년에 간행되었다. 같은 해 11월 25일에는 『시와 의식』이 있었고, 1976년에 창간된 『목마』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77년에는 『남부 문학』이 있었고, 학·예 계간지 『오늘의 문학』도 1977년에 나왔다. 1979년에는 『탈』이 창간되어 부산 문단을 풍성히 했다. 이 밖에도 부산 의대생들이 1970년에 만든 『회귀선』, 유명선의 『석초』[1974], 정비동의 『시로』[1975], 김의암·이은경·강정화 등의 『한국 여성시』[1977]가 있었다.
손경하, 이석, 한찬식, 이상개, 박송죽, 박지열, 김봉룡, 박응석, 김인환, 배달순, 정순영, 박윤기, 이문걸 등이 실존 문제를 탐구했고, 박재호, 이동섭, 유병근, 이달희, 신진, 김태홍, 원광, 강남주, 조남순, 조순, 이상호, 김수경, 진경옥 등은 전통 서정시의 경향을 보였다.
조향은 1970년대에도 과격한 모더니즘 시풍을 유지했으며, 구연식, 최휘웅, 허만하, 이수익, 양왕용, 박철석, 박청륭, 하현식, 차한수, 김영준, 이해웅, 임종성, 이승하 등의 시에서도 도시적 감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정영태, 한찬식, 임수생, 김석규, 박응석, 배달순, 김봉룡, 정상구, 김규태, 이형기, 박태문, 김철, 양왕용, 정대현, 이윤택, 김성식 등은 현실 지향적인 시풍을 보였다.
[1980년대 부산의 시]
1980년대에는 70년대 창간된 동인지 『남부의 시』, 무크지 『지평』, 『전망』 등이 1980년대 말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문예지가 생기기 전까지 부산 지역 시문학의 발표 매체였다. 1980년대 들어서 형성된 시 동인지는 『절대시』, 『열린시』, 『시와 자유』, 『시와 인간』 등이다. 『절대시』는 김성춘, 양왕용, 유병근, 진경옥, 박청룡, 하현식, 박현서, 최휘웅, 이은경 시인이 활동했다.
『열린시』에는 1980년대를 전후해 등단한 신인들이 중심이 되어 개성적인 목소리를 드러냈다. 여기에는 강영환, 이윤택, 엄국현, 박태일, 강유정이 속해 있었다. 중진 시인들이 참여한 『시와 자유』에는 김석규, 김영준, 박응석, 박태문, 이해웅, 임수생, 이형기, 김창근, 김철, 박상배, 이상개 등이 작품을 내었다. 한편, 『시와 인간』에는 류명선, 허철주, 최영철, 이갑재, 민병태, 박병출, 이창희, 김병화, 성기각, 조해훈, 동길산, 류명선, 최영철, 이창희, 허철주 등이 작품을 실었다.
강남주, 원광, 이문걸, 임명수, 신진, 조남순이 중심이 된 『목마』도 계속 활동했으며, 1979년에 결성되었던 『탈』은 이승하, 차한수, 조의홍, 김성식, 정대현, 황양미 등이 가담했다. 부산 여성 시인들은 1981년 동인지 『배토』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정영자, 김현숙, 진경옥, 조남순, 박송죽, 곽현숙이 처음 구성원이었고, 『부산 여류 문학』으로 개명한 뒤에는 윤정숙, 나영자, 박송죽, 이은경, 강정화, 탁영완, 홍정숙, 양은순, 강은교, 김미순, 조희순 등이 활동했다. 『모시올』 또한 김미순, 강정화, 박정애, 윤정숙, 탁영완, 권애숙 등 여성 시인들이 활동했던 동인지이다.
1980년대 초 언론 통폐합과 정기 간행물 폐간에 의해 문인들의 발표 지면은 여지없이 악화되었다. 이에 새롭게 모색된 활로가 무크지 출간이었다. 1983년 출발한 종합 문예지 『지평』은 점차 시를 중심으로 한 성격으로 변화해 갔는데 여기에는 하일, 조성래, 최규장, 최원준, 정순자, 신용길, 이응인, 이근대, 홍정숙 등이 개성적인 시를 선보였다. 『전망』 또한 종합 문예지로 출발했으나 정영태, 강경주, 이정주, 김세윤, 배광훈, 허의도, 최장현, 박진규, 김형술, 이규열, 송유미, 서정원, 동길산, 김경수, 민병관, 박진규, 김성환 등이 작품을 선보였다. 1980년대 후반 정기 간행물 『겨레 문학』, 『실상 문학』, 한국문인협회 기관지 『문학의 세계』가 간행되면서 동인지와 무크지의 위상은 크게 약화된다.
[1990년대 부산의 시]
1990년대 들어와서도 동인지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다. 『신서정시 그룹』[1990]은 강남주, 이몽희, 이병구, 배광훈, 정영태, 강경주, 김형술, 문정임, 임명수, 탁영완이 몸담았고, 『갈매기』[1992] 동인은 고은숙, 금철호, 김정순, 박재수, 안혜경, 최양희였으며, 『서정시 문학』[1992]에는 김성봉, 조희순, 최용민, 정남순, 김미순이 있었다. 『샘과 가람』[1993]은 김공수, 박삼도, 김정순, 김희영, 박기환, 배상호, 이성호, 강문숙이, 『시와 숲』[1994]에는 최창도, 윤홍조, 유신자, 김영옥, 전기웅, 오세희, 박윤규, 김명옥, 김상균, 이자영이 동참했다. 『평행시』[1994]에는 김숙희, 성수자, 오미연, 진명주, 강미정, 송인필 등 여성 시인들만 있었으며, 『행간』[1994]에는 이성희, 이규열, 김형술, 조성래가 있었고, 『시전달』[1994]에는 김성춘, 이승하, 조의홍, 한상학, 문영, 송유미, 이근대, 김욱경, 서정원, 윤경, 정이경, 문옥영, 정대영 등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정치 현실에 대한 꾸준한 문학 활동으로 주목받은 곳은 『부산․경남 젊은 시인회의』와 그 구성원들이 참여한 『5·7 문학협의회』이다. 요산 김정한 외 39인이 참여한 이 단체는 87년에 기관지 『문학과 실천』을 창간하여 문학인의 시대에 대한 실천적 대응 의지를 보여 주었다. 이 밖에도 앤솔로지 『남부의 시』, 기관지 『부산 문학』, 『문학 도시』, 『열린시』, 『시와 사상』, 『문학 지평』 등이 부산 지역 시문학에 기여했으며, 추점자, 변의수, 정의태, 박시향, 박상필, 권태원, 정웅규, 박성웅, 한정옥, 박권숙, 류선희, 서규정, 노혜경, 이영일, 김광자, 김선희 등이 1990년대에 시집을 발간하여 부산 시문학을 풍성하게 했다.
이 밖에 부산 가톨릭문인협회, 부산 크리스챤문인협회, 불교문인협회도 많은 시인들이 활동하는 무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