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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연구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7480
한자 聲樂硏究所
영어의미역 Voice Institute
분야 문화·교육/교육,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 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원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연구소
설립자 김동춘
설립 시기/일시 1943년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성악연구소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 6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에 있었던 부산 지역 최초의 성악 연구소.

[설립 목적]

일제 강점기 음악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성악과 음악 이론 등을 가르침으로써 지역의 전문 성악가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성악연구소는 김동춘(金東春)에 의하여 1943년, 지금의 신창동 대각사(大覺寺)[당시 일본인의 동본원사(東本願寺)] 안에 있는 유치원에 세워졌다. 1943년은 부산에 교습 활동이 활발히 시작되는 때로, 김학성(金鶴成)에 의해 개소된 바이올린연구소, 일본인 우츠노미야[宇都官辛三]가 운영한 피아노연구소, 그리고 김동춘의 성악연구소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김동춘은 함경북도 북청 태생으로 일본 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한 성악가로서 성악연구소를 해방 이후까지 운영하였다. 김동춘은 열정적으로 문하생들을 지도하였는데, 김동춘의 문하생으로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인물로는 노영덕(盧永德)[바리톤]이 있다. 해방 이후까지는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언제 문을 닫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동춘은 1943년에 성악연구소의 문을 열면서 독창, 중창 등의 연주 활동을 활발히 하였으며, 금수현(金水賢)과 함께 일제 강점기 부산 성악 음악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성악연구소는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의 전문 성악가를 길러내는데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김동춘은 그와 마찬가지로 일본 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한 금수현과 함께 성악연구소를 중심으로 당시 부산의 성악 음악계를 이끌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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