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7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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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硏究所 |
영어의미역 | Violin Institute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2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원명 |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2가에 있었던 부산 지역 최초의 바이올린 교육 기관.
[설립 목적]
바이올린연구소는 일제 강점기에 음악가로서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바이올린과 음악 이론 등을 가르침으로써 부산 출신의 전문 음악인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43년 부산 음악계에서는 여러 교육 기관들이 발족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음악 분야의 교습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일본 또는 중국 등지에서 수학한 음악가에 의하여 현악, 성악, 피아노 등의 연구소 중심의 활동이 전개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학성(金鶴成)은 1941년 3월 일본 동양음악학교를 만학(晩學)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1943년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에 ‘바이올린의 집’이라는 간판으로 부산 최초의 교습소를 열어 음악에의 꿈을 키우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바이올린연구소로 개칭하였다. 김학성의 문하생들 가운데는 임만규[전 경북대학교 교수], 전성태[전 부산 MBC 초대 FM 부장], 김호현[전 부산시향 악장, 현 미국 거주] 등 바이올린 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있었다. 언제까지 운영되었는지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바이올린연구소에 대해 구체적인 활동은 찾아지지 않는다. 다만 바이올린연구소에서 양성된 김학성의 제자들이 부산현악합주단을 만들어서 활동하였다. 부산현악합주단은 해방 후 1947년에 최초로 조직된 부산관현악단을 만들 수 있는 모체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바이올린연구소는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음악가를 배출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당시 지역의 현악 음악계를 주도적으로 이끈 산실이었다. 특히 김학성의 제자들로 구성된 부산현악합주단은 해방 후 부산관현악단의 모체가 되었으며, 이러한 활동들은 한국인에 의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의 시대를 열어가게 되는 서막으로서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