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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963
한자 沙川面
영어의미역 Sacheon-m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사하구|서구|중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장동표

[정의]

조선 시대 부산 지역에 설치된 지방 통치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사천면(沙川面)은 조선 시대 지방 통치 체제의 정비를 통해 중앙 집권화가 추구되고, 면리제(面里制)를 통해 국가의 군현 하부 촌락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동래부의 사회 경제적 사정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천을 거듭하였다. 19세기에 사상면(沙上面)과 사하면(沙下面)으로 분리되면서 폐지되었다.

[관련 기록]

동래부 사천면에 관한 대표적인 자료는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동래부지(東萊府誌)』의 각면 각리 원근 정도(各面各里遠近程道)조와 19세기 전반에 간행된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의 방리(坊里)조의 읍면에 대한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

[내용]

사천면은 조선 후기 동래부 산하 행정 구역의 하나이었다. 『동래부지』에 의하면 조선 후기 동래부의 행정 구획은 읍내면(邑內面), 동면(東面), 남촌면(南村面), 동평면(東平面), 사천면, 서면(西面), 북면(北面) 등 7개 면과 각 면 아래 모두 22개 동 79개 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래부의 면 이름은 읍내면을 중심으로 동·서·남·북면으로 나뉘었으며, 동리 명은 자연 마을이 아닌 행정동과 이명으로 되어 있었다.

사천면은 크게는 상단(上端)과 하단(下端)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천면 상단 지역은 관문(官門)에서 21리 거리에 위치한 주례리(周禮里), 관문에서 22리 거리에 위치한 모라리(毛羅里), 관문에서 32리 거리에 위치한 괘내리(掛乃里), 관문에서 34리 거리에 위치한 덕포리(德浦里), 관문에서 35리 거리에 위치한 장문리(場門里), 관문에서 38리 거리에 위치한 엄광리(嚴光里) 등 6개 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단 지역은 관문에서 31리 거리에 위치한 신초량리(新草梁里), 관문에서 36리 거리에 위치한 대치리(大峙里), 관문에서 36리 거리에 위치한 목장리(牧場里), 관문에서 42리 거리에 위치한 감천리(甘川里), 관문에서 44리 거리에 위치한 독지리(禿旨里), 관문에서 45리 거리에 위치한 장림리(長林里), 관문에서 45리 거리에 위치한 서평리(西平里), 관문에서 50리 거리에 위치한 다대리(多大里), 관문에서 32리 거리에 위치한 구초량리(舊草梁里) 등 9개 리로 상단과 하단 지역 모두 15개 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변천]

사천면『동래부 사례(東萊府事例)』[1868, 고종 5]에 부산면(釜山面)의 신설과 함께 상단은 사상면으로, 하단은 사하면으로 분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부산면은 종래 동평면부산 성내리, 범천1리, 범천2리, 좌자천1리, 좌자천2리, 도모포리, 해정리 등을 떼어 신설되었다. 사천면은 대개 지금의 부산광역시 북구 모라동, 덕포동, 괘법동, 주례동 일대와 장림동다대동을 포함하는 사하구 전 지역, 서구중구의 전 지역에 해당한다. 조선 후기 당시의 위치를 보면 동쪽은 동평면, 북쪽은 양산군에 접하고, 서쪽과 남쪽은 낙동강과 바다에 면해 있었다.

[의의와 평가]

사천면의 자료는 조선 후기 부산 지역사와 면리제의 변천을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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