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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358
한자 勞動夜學
영어의미역 Night School for Labor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홍

[정의]

1970년대 말~1980년대 중반 부산 지역에서 전개된 야학의 한 유형.

[개설]

노동 야학은 야학의 학생인 노동자의 계급적 각성과 현실 인식을 통해, 이들의 인격적 주체로서의 성장을 돕고 노동 현장의 활동가로 양성하기 위해 개설되었다. 따라서 시기나 지역에 따른 특수한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결과 구체적 전개 양상에서 지역별, 시기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부산에서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성당이나 교회를 빌어 시작되었고, 1980년대 중반에 활성화 되었다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노동자 교육의 필요성과 노동 현장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짐으로써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성격]

부산의 노동 야학은 형태적으로 생활 야학과 매우 유사했는데, 이는 당시 군부 독재의 시대 상황 하에서 공개적으로 노동 야학의 목적성을 지향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 노동 야학을 설립한 대학생[또는 대학 출신] 교사[‘강학’이라 불렀다]들이 노동 현장에 대한 이해, 실천적 경험, 현장과의 결합 조직이 취약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 야학은 노동 현실에 대한 강학들의 인식과 이해를 도와, 강학 출신이 노동 현장에 들어가는 준비 단계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초기에는 학생 운동의 연장선에서 전개되었던 야학 운동이 점차 노동 운동의 한 부분을 형성하게 되었다.

[양상]

부산의 대표적인 노동 야학으로는 성안교회야학, 가야성당야학, 만덕성당야학, 사상야학, YMCA야학, 당감야학, 청야야학, 우리교회야학 등이 있었으며, 검정고시 야학의 성격을 병행한 밀알야학도 있었다. 부산 지역 노동 야학의 양상은 학생 수가 10명 남짓 또는 20명 안팎의 소규모 수공업적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주로 신발, 섬유 산업 계통의 사업장에 종사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이 운영되었다.

초기 야학의 경우 노동자들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수학, 영어, 음악 등을 교육하였다. 차츰 작문, 역사, 사회, 상식, 음악 등의 교육을 통해 역사의식을 키우고 현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인식을 높였으며, 민중가요나 풍물놀이로 신명을 나누었다. 야학별로는 근로 기준법 과목이나 노동극, 풍물, 민중가요 부르기 등을 통해 본격적인 의식화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발전과 해소]

1980년대 중반 들어 부산 지역의 노동 야학은 이성화를 중심으로 단일 조직으로 통합되면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정식 명칭이나 공개적인 조직체를 표방한 적은 없지만 통합 노동 야학은 실질적으로 통일적인 조직 역량과 실천 역량을 갖추었다. 이를 통해 강학들의 학습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야학 내에서 현장 활동가를 발굴 양성하였으며, 현장 활동과 연계하여 현장에 대한 다양한 지원 활동도 전개하였다. 한편으로는 검정고시 야학과도 긴밀히 연계하면서 검정고시 야학 강학들의 학습을 지원하고, 검정고시 야학의 성격을 바꾸는 노력도 지속하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대기업 중공업 남성 노동자 중심의 거대한 노동 운동의 흐름이 형성되면서, 소규모 서클 단위에 기반을 둔 현장 조직이나 활동은 새로운 형태의 활동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개별 야학 단위의 소규모 노동자 교육이나 현장 지원에 주력하던 야학 운동은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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